하이마스터 (개정판)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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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강박관념의 청년



“후우.”

숨을 내쉬고 석궁을 들어 숨을 멈추었다.

숨을 멈추고 석궁의 방아쇠를 당기자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활대가 움직이며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팍!

나무에 그려진 과녁의 정중앙에 떡 하니 꽂힌다. 다시 석궁에 화살을 재고서 장전했다. 아직 가져온 석궁용 화살이 많이 남았다.

퉁! 팍! 퉁! 팍!

내 나이 스물셋.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강박관념이 심한 건지, 살짝 돌았는지, 언제나 ‘위험대비, 위험대비.’를 외치면서 이것저것 배웠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함정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법까지 다양하게도 배웠고 특히 내공과 기가 진짜로 있다고 믿으며 각종 중국의 권법들을 배우려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집 근처에 중국에서 직계로 전수받았다는 팔괘장의 고수가 차린 도장이 있었는데 그 도장에 다니면서 팔괘장을 배우는 한편 킥복싱 도장에 다니면서 킥복싱도 배웠다.

거기다가 밧줄 묶는 법이라던가 자기 손으로 몇 가지 재료를 이용해 간단히 석궁 만드는 법까지 익히고 다니던, 나는 일종의 맛 간 놈이다.

솔직히, 그런 걸 배운 건 내가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분단국가고, 막말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내가 아나?

군대도 전역했다. 군대는 짜증 나는 곳이었지만, 여러 가지 배운 점이 많기도 했다.

그런 똘아이 같은 생각 때문에 이런 거 저런 거 배웠다.

그리고 사실 그런 거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도 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면 판타지를 쓰는 글쟁이가 되거나 도장을 차릴 계획이었다.

사실 내가 판타지 광이기도 하지. 판타지 글쟁이도 꽤 재미나 보였다. 아니면 내 일신의 실력을 이용한 경비 회사 쪽 일을 알아보던가.

여하튼 그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일 뿐이다. 지금은 막 군대를 제대한 참이라 대학교는 아직 휴학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은 집안에 먼지만 쌓여가던 이 석궁 녀석을 꺼내서 기름칠하고 오랜만에 쏴 보고하면서 서바이벌 놀이를 위해서 혼자서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쏘는 것인지 빡빡한 감이 있군그래.

찍찍.

기름 좀 칠하고, 다시 석궁을 들었다. 한참 동안 석궁을 쏘고 화살이 반쯤 남았을 때 석궁과 화살을 잘 챙겨서 등에 메었다.

“그래도 활 쏘는 솜씨는 안 줄었군.”

그거 하나는 다행이야.

척. 처척.

식물 줄기를 모아다가 꼬아서 간단한 덫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시험했다.

군대 들어가 있는 동안 잊어버릴까 봐 걱정했는데 전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군.

“후우.”

하지만 이런 게 실생활에서는 쓸모는 없겠지. 취직은 어떻게 한다? 대학이 끝나 봐야 알겠지만, 대학과 전공을 봐서는 그렇게 크게 돈 되는 곳으로 가지는 못하겠지?

“이래저래 한숨만 나오는구나.”

태백산맥의 거의 꼭대기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맥의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산중을 내려다봤다. 산중을 내려다보다가 가방에서 냄비와 쌀을 꺼내어 간단하게 밥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제정신은 아니로군.”

혼자서 이런 데 와서 이러고 노는 걸 보면 확실히 나 자신은 약간 맛이 갔다. 괴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런 성격으로 취직해서 잘 생활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그래도 대학은 그럭저럭 좋은 대학 나왔고, 전공도 그럭저럭 좋은 곳 나왔으니 취직 자체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문제는 조직 생활이겠지. 군대에서도 사고를 조금 많이 쳤었으니까.

보글보글.

밥이 다 된 듯해서 뚜껑을 열어 밥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이 끓는 동안 식은 밥을 들고, 라면을 반찬 삼아 먹었다.

산 정상에서 먹는 라면과 밥이 또 맛이 끝내준다.

그렇게 생각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뭔가가 터진 듯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이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군부대는 산간지방에 있으니까 상식이라고 할 만하다.

후루룩.

라면 면발을 씹어 삼키고, 밥을 한 숟가락 떴다. 그리고 물을 삼키자 배가 부르며 포만감이 차올랐다.

먹은 것들을 치우고, 옆에 친 텐트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누웠다. 어차피 어떤 사건인지 관심 따위는 조금도 없다.

군부대에 사고가 생기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어느 부대에서는 총기 오발이, 어느 부대에서는 관리를 게을리해 불발탄이 폭발하는 일도 있다.

누워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다시금 쾅 하고 큰 폭음이 들린다. 몇 차례 큰 폭음이 들리자 슬슬 신경이 쓰인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게…… 뭐야?”

맨 처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곳에서부터 새파란 원형의 빛 덩어리 같은 것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쾅쾅 소리가 나면서 파란빛 덩어리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다가 기분이 불쾌해졌다.

대단히 위험스러운 그런 껄끄러운 기분이 확 들었다. 바로 텐트로 달려가 석궁과 화살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새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생존투쟁



“이런 제길! 저 돼지머리 새끼들이!”

이를 갈며 빨리 뛰었다. 정말 빌어먹을이다.

내 위험대비, 유비무환의 자세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거였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아니었단 말이다!

제기랄!

“취에에엑!”

저 빌어먹을 놈들! 오늘따라 유난히 왜 저 지랄이야!

이 개떡 같은 세계에 떨어진 지 벌써 석 달째.

그 이유 모를 파란 빛에 휩싸이게 되고, 빛이 사라진 후에 나는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전혀 다른 장소라는 걸 깨달았다.

멋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맨 처음에는 까딱하다가 죽을 뻔했고.

진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던 개 같은 몬스터 새끼들이 튀어나와서 나를 죽이려들 때는 온몸이 떨려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배운 통밥이 있어 살아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려고 발악 중!

이런 젠장! 소설 보면 기연이고 뭐고 팍팍 나오던데 나는 뭐, 아무것도 안 주는 건가!

아무런 능력 없이 어쩌란 거냐!

“퀘에에엑!”

뒤에서 돼지머리를 한 근육 괴물 새끼들이 무뎌 보이지만 묵직한 도끼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어떻게 내 냄새를 맡은 거지?

“젠장! 젠장!”

본래 운동과 팔괘장의 수련, 거기다가 킥복싱을 배우고 단련하기를 좋아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곳에 온 첫날에 죽었을 거다.

욕을 해대면서 달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저 미친 돼지 새끼들의 수는 총 셋. 한 마리도 내가 감당하기 버겁다.

하지만 내 영역까지 가면 죽일 수 있지. 문제는 어떻게 시간을 버느냐이다. 저 돼지 괴물들은 나보다 체력이 더 좋고 달리기도 더 잘하니까.

내가 비록 각종 수련을 해 왔다지만 현대인이라서 매일매일 뜀박질하며 사냥하며 먹고사는 괴물과 내 체력을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거나 먹어!”

들고 있던 돌을 날카롭게 간 조각을 뒤로 몸을 살짝 돌리면서 휙 하고 던졌다. 이 세계에 와서 깨달은 점은 적들은 모두 무지막지한 괴물이니 되도록 원거리 공격을 하라는 거였다.

언제인가 한번은 내 격투 실력을 믿고 저 돼지 괴물 중 좀 키가 작은 녀석 하나와 싸우다가 죽을 뻔했다.

내 팔괘장이 그리 높지는 않아도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기는 했는데도 녀석의 무지막지한 힘에 대책 없이 밀렸으니까.

어린 녀석이었는데도 그 주먹이 쇠망치 같아 엄청나게 아팠다.

그 후로 내가 체득한 것은 바로 현대 지구의 진리였다.

거리를 제압한 놈이 세계를 지배한다.

현대 병기의 대표적인 무기는 총인데, 탄환을 쏘아 원거리에서 적을 살상하는 녀석이다. 원거리 무기인 총이 등장하면서, 세계는 점차 빠르게 변해가고, 칼과 갑옷 같은 근거리 무기는 사라졌었지.

바로 원거리만이 살길.

그래서 나는 이런 돌조각을 단검처럼 갈아서 들고 다닌다.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이곳에 떨어질 때 가지고 온 석궁도 지금 내 등에 매달려 달랑거리지만 지금 이걸 꺼내서 장전할 시간이 없다.

쐐엑 하고 석단검이 날아간다.

푸욱!

쾌에에엑!

“좋아!”

나는 쾌재를 부르면서 계속 달렸다.

한 놈의 어깨에 내가 던진, 돌로 만든 비수가 제대로 박혔다.

석 달간 죽어라 연습해서 단번에 한 놈을 아웃시킨 거다. 저 정도 부상이면 나를 쫓아올 생각은 못 하겠지!

“취에에엑! 우르카 나타! 췌에에엑! 우르카 나타!”

“이 돼지 새끼들아, 대체 뭐라고 씹어대는 거냐!”

악을 질러 응수해 주고 계속 달리자 숨이 가슴까지 찼다.

이곳에서의 삼 개월.

수련을 게을리하기는커녕 매일매일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살다 보니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체력을 손에 넣었지만, 저 돼지 새끼들하고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저놈들은 야생으로 지금까지 저러고 살았고, 나는 그래도 학교도 다니고 먹고살려고 취직 준비도 해야 했으니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제기랄!

소설 같은 거 보면 떨어질 때 무슨 드래곤 하트라느니 내공심법이라느니 하는 기연이 잘도 있던데 나는 뭐 하나도 없는 건가!

“우르카 나타! 취에에엑!”

“우르카 나타가 대체 뭐냐!”

다시금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돌로 만든 비수를 ‘홱’ 하고 던졌다.

돌 비수가 쉐엑 하고는 날아갔으나 이번에는 맞지 않았다.

미친 돼지 녀석이 들고 있던 돌도끼 같은 거로 내 돌 비수를 막아낸 거다!

저런 미친 돼지!

“좋아! 이 미친 돼지! 내가 반드시 네놈의 멱을 따버리겠다! 하악! 하악!”

이런 젠장! 숨이 너무 차서 폐가 찢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도착했다.

여기는 내 영역. 너 이 미친 돼지 녀석, 이제 그만 죽을 시간이다!

쾅!

나는 달리면서 나무 중 하나를 후려쳤다.

내가 만들어 놓은 트랩이 설치된 나무다. 바로 너같이 나를 죽기 살기로 쫓아 오는 미친 돼지를 잡으려고 만들어 놓은 거지.

쇄에에엑!

나뭇가지 위에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빠르게 몸을 앞으로 내던져 땅을 굴렀다.

퍼억!

“퀘에에에엑!”

큰 타격음이 들리고 돼지가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크키키킥!”

몸을 일으켜 보니 쫓아오던 두 마리 돼지 중 앞서 오던 돼지 녀석이 내가 설치한 덫에 완전히 꿰뚫려 피를 흘리고 있다.

나무를 후려갈기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나무창이 원심력을 가지고 날아가도록 만들어 놓은 거다.

그 덫에 한 놈이 완전히 걸려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 놈이 살아 있었다. 녀석은 앞서 달리던 돼지의 뒤쪽에 있어서 멀쩡했다.

하지만 앞에 달리던 놈이 덫에 당해서 피를 토하자 당황한 듯 나를 향해 달려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를 보더니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이마스터


지은이 : 사탄님

제작일 : 2019.07.19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유리

표지 : 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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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4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