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를 한다는 건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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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Prologue



세상에 정의는 없었다.

열여덟 살 때였다.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나의 아버지가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날부터 나는 연쇄 살인마의 아들이 되었다.

나는 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한정된 작은 현실 도피였을 뿐.

세상은 그런 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세상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유명해졌다.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어딜 가든 연쇄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고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배척했다.

그런 세상은 나와 남은 내 가족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2019년 8월 16일.

세상은 진짜 지옥으로 변했다.

게임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 지구를 침공했고, 우리는 괴물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19년 8월 17일.

‘시련자’라 불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킬이라는 비상식적인 힘으로 괴물들을 유린했다.

그들은 단숨에 영웅이 되었고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광은 얼마 가지 못했다.

1년 차에 전 지구의 50%에 해당하는 인류가 죽었으며 시련자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2년 차에는 또다시 남은 인류의 50%가 죽었으며 나의 남은 가족도 모두 죽었고, 남은 시련자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3년 차에는 인류의 반격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악마들의 습격으로 지구에 남은 인류의 숫자는 고작해야 천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4년 차에는 생산 시설들은 물론, 인류가 만든 문명의 이기가 대부분 사라졌다.

그때, 살아남았던 인류는 십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5년 차가 되었을 때 지구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지구에서 살아남아 숨 쉬고 있던 ‘인간’은 단둘이었다.

일반인이었던 나와, 신들조차 괴물이라 부르는 영웅 정지혁,

기적이었다.

고작해야 일반인에 불과했던 내가 여태껏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이도야…… 네가 시련자가 되었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지혁의 넋두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자리해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낯간지럽게 뭡니까 그게.”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무리였나 보다.

씁쓸한 내 표정이, 형님의 맑은 눈동자에 비춰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씁쓸했다.

지구에 재앙이 닥치기 전날인 2019년 8월 15일.

정확히 전 세계에서 총, 1만 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실종되었다.

눈앞에 있는 형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나는 형님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실종되었던 1만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시련 후보자’가 되었고 튜토리얼을 겪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시련자의 자격을 획득했다.

그렇게 해서 3천 명의 시련자가 탄생한 것이다.

내가 들은 형님의 이야기는 동화책보다 훨씬 잔인했고, 훨씬 흥미로웠다.


시련자의 자격을 획득한 과정과 그 이후에 일어난 본격적인 시련, 통칭 Episode라 불리는 수많은 시나리오의 이야기.

Episode #1부터, 오직, 형님만이 도달했고 형님만이 클리어했던 #99까지.

그리고 형님마저 클리어하지 못한 최종 시나리오 Episode #100.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처절하고 암울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


나는 시련자가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세상을 원망했다.

대체 왜 나는 시련자가 되지 못했던 거지?

내가 뭐가 부족했기에?

시련자도 아니었던 내가 이렇게 세상의 끝까지 살아남았는데. 대체 나는 왜?


후회하고 원망해 봐야 남는 것은 없었다.

나와 형님은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쿠구구궁-.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름, 넓이, 부피,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물론, 그냥 생각 자체가 무의미했다.

“아무리 판타지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대기가 따갑다.

지표면이 박살 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달 정도의 크기일까.

아니, 그보다 큰 것 같다.

나와 형님은, 이 순간 확실한 죽음을 직감했다.

“형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식-.

“그래, 너도 고생 많았다.”

대화는 불필요했다.

이어질 이야기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앙-.

그게 끝이었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세상은 그게 끝이었다.

암전된 세상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띠링!


[당신은 시련 후보자입니다.]

[Tutorial #1을 시작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Chapter 1



흙냄새 비스무리한 게 코를 훅 찌른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바닥을 짚었다.

질퍽하다.

질퍽한 흙을 짚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었다.

내 키의 10배는 족히 넘을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벌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감이 확 사라질 정도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보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와 빼빼 말랐지만 인상이 굉장히 좋은 남자, 그리고 내 또래로 보이는 평범한 여성, 총 3명이 나를 바라본다.

……이 사람들은 뭐지?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자네 혹시 기억나는 게 있는가?”

수염이 덥수룩한…… 그냥 남자1이라고 하자.

남자 1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옆에 있던 인상이 좋은 남자……. 얘는 남자2라고 하자.

남자2가 끼어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퀘스트창이라고 한번 말해 보세요.”

퀘스트창?

뜬금없이 갑자기 뭔 개소리야?

“자느라 못 들으신 것 같은데. 그냥 제 말대로 한 번만 해 보세요.”

이상하다.

퀘스트창이라면 분명 ‘시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던 길잡이일 텐데…….

“……‘퀘스트창’이요?”

말하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으니까.


-

[Tutorial #1]

[당신은 10001번째 시련 후보자입니다.]

[‘정글’에 서식하는 고블린 무리를 처치하십시오.]

[고블린 0/50]

[고블린 족장 0/1]

[보상 : 시련자 자격 획득, (500코인)]

[제한 시간 : 없음]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하지만 적을 알기 전에 자신부터 알아야겠죠?

‘상태창’을 외쳐 보세요.

-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운석에 맞기 전 무언가를 들었던 것 같다.

당황스럽다.

아니, 당황을 넘어 경악스럽다.

대체 이게 뭐지?

아니. 뭔지는 알고 있다.

내가 시련 후보자라고?

10001번째?

내가 알기로 시련 후보자는 총 1만 명이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죽었을 텐데?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남자2가 여유롭게 손짓했다.

마치 상태창을 외쳐 보라는 것 같은 손짓이다.

정신이 분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짧게 심호흡하고는 상태창을 외쳤다.


[이름 : 이도]

[칭호 : (?)]

[스킬 : (?)]

[능력치]

[힘 : LV 2]

[민첩 LV 3]

[지능 LV 2]

[체력 LV 3]


당황을 넘어 경악스럽다.

지금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우선…… 상황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 우리는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저는…… 제가 왜……. 여기에…….”

남자2를 시작으로 남자1 여자1이 혼잣말처럼 한마디씩 내뱉는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짝짝!

남자2가 박수를 치더니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그가 나름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단 서로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는 서울 서부지검 형사 2부, 한태식 검사입니다.”

입고 있는 정장이 말끔하고 그 중간에 명찰 같은 걸 달고 있어서 공무원인 줄 알았는데…… 검사였구나.

아 생각해 보니 검사도 공무원이구나.

그렇게 한태식 검사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검사셨어? 큰일 하실 양반이었네. 난 박철중이라고 하네. 웹툰 작가지.”

“전 김예원이에요. 대학생이구요.”

그들의 소개를 들으며 내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세 명 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지금, 아니…… 오늘이 며칠입니까?”

뜬금없는 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몰린다.

“……8월 15일입니다. 확실해요.”

한태식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대체 뭘까.

나는 회귀를 한 걸까?

아니면 미래를 본 걸까.

그것도 아니면 죽기 직전 환각을 보고 있는 걸까.

다시 상태창을 살폈다.

[당신은 10001번째 시련 후보자입니다.]

모르겠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복잡한 머릿속에도 주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용히 고개를 들자 세 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했었지?

자기소개 하자고 했었나?

그런데,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저들의 시선과 몸짓으로 보아 내가 누군지, 내가 뭐 하던 놈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도입니다. 군인……이 아니라 백수구요.”

내 말에,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진다.

“이도……? 정지혁? 8체급 제패한? ……연쇄 살…… 헐?”

박철중의 넋두리 같은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참 오랜만이네. 이 엿 같은 분위기.

지옥이 된 지구에서 나는 시련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희망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건, 혹은 죽을 것이라고 확실시되던 상황에서도 나는 항상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니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런 엿 같은 시선들이 아닌 동경과 부러움이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자 그때 한태식 검사가 여유롭게 손짓하며 말했다.

“일단…… 서로 퀘스트창이랑 상태창 확인하셨죠?”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걸까.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엔 설득성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현실이고 우리는 어떤 일에 휘말린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침착성이라니.

검사라더니, 어떤 상황에서건 침착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라도 있는 걸까.

“서로에 대해 조금 알아 가야 할 것 같은데. 서로 가지고 있는 ‘스킬’을 공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모두의 눈에 ‘경계심’이 서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패를 오픈하자는 저 말이 달갑게 다가올 수는 없을 것이리라.

분명, 내가 들었던 ‘튜토리얼’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아니. 매우 똑같다.

그렇게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지려던 그때, 한태식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는 [진실 혹은 거짓 Lv1]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확인해 보니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회귀를 한다는 건 


지은이 : 넉울히

제작일 : 2019.05.2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주희

표지 : 고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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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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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61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