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창으로 스타강사 001화

0000

제 1화



1화



“자, 여기서 함수 f(x)의 값을 구하려면…….”

“y값을 이 식에 대입해서…….”

초록색 칠판에 수학 공식들을 이리저리 적어 내고 있는 한 남자.

띠리리링.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교실문밖으로 뛰어나간다.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교실.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책상에 앉은 그의 앞에는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시험지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걸 언제 다 채점해……. 토요일인 오늘도 자정을 넘기겠구나.”

몇 시간 동안 계속된 채점을 끝내고 짐을 챙기러 교무실로 갔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뭔가……. 쓸쓸하네.’

그는 마지막으로 교무실의 불을 끄고 퇴근했다.

학원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불었다.

4월 말의 봄바람은 황사 탓에 흙냄새가 났다.

“오늘도 막차 퇴근인가. 아……. 술 당긴다.”

학원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겨우 막차를 잡아탄 그는 사람이 없어 널널한 버스에 올랐다.

‘맥주나 하나 사서 들어갈까. 지금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았더라.’

캔맥주 한 캔이라는 사치를 자신이 부려도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덜컹거리는 버스 안.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든 그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이야, 구민아. 마침 잘됐다. 오늘 시간 되냐?”

-되니까 전화했지, 인마. 어디, 오늘도 한잔해?

“콜! 완전 콜이지!”

-그건 그렇고, 정동아. 오늘 재원이도 시간 된다는데 한번 불러 볼까?

“걔가? 매일 고객 만나느라 바쁘다더니 용케 된다네. 불러, 불러. 오랜만에 삼총사가 다 모이겠구먼.”

정정동. 이제 스물하고도 일곱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의 학원 강사이다.

그가 재직 중인 윈스턴 수학 학원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 체인의 본점이다.

서울시 에서만 총 7곳의 지점이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정동의 직장이 윈스턴 학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한다.

“너 그러면 돈 엄청 잘 벌겠네?”

정동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나 3년째 하숙집 살아.”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그래. 나 만년 고1부 담당이고, 고3은커녕 고2도 못 올라가. 돈이 없어서 김밥 한 줄도 제대로 못 사 먹고, 자판기 커피도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뽑아. 그래도 인서울 4년제 대학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다 스카이네? 서울대, 욘대, 교대 아니면 대학교도 아니라는 건가? 나도 돈 좀 벌어 보면 안 되냐고.’

물론 윈스턴 종합 학원의 강사들이 모두 정동처럼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잘나가는 일타강사들은 학원 강의와 인터넷 강의를 동시에 하며 월 2000은 우습게 벌어 간다.

그러나 그런 강사들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강사들 중 하위 30%는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로 벌 뿐이다.

“나도 빨리 고1부를 벗어나서 고3부나 재수부로 가야 할 텐데……. 언제까지 이런 데서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건지.”

현재 정동이 소속되어 있는 고1부와, 잘나가는 강사들만 모여 있다는 고3부와 재수부는 벌어들이는 수입 자체가 달랐다.

지금 정동의 수입으로는 하숙집의 집세와 당장의 식비를 해결하기도 빠듯한 상황이었다.

정동은 사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출하게 강의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범 of 평범인 정동이 고3부에 진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내 나이가 이제 스물일곱인가.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집세는 계속 오르고……. 진짜 비트코인에라도 투자해야 되나.”

수입은 그대로인데 써야 할 돈과 한숨은 늘어만 간다.

그렇게 푸념에 푸념을 거듭하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학원에서 버스로 5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허름한 달동네.

말이 좋아 달동네지, 실상은 서울 외곽의 판자촌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단골집인 한 실내 포장마차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단골인 정동을 알아봐 주시는 사장님을 지나,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는 구석 테이블로 향한다.

“아이고, 강사님 오셨습니까. 어찌 가르침은 잘되시는지요.”

“아 예, 예. 우리 정 매니저님도 보필하시는 아이돌느님들 관리는 잘되시는지요.”

“말도 마라. 토 나온다, 야!”

테이블에 앉아 있던 친구의 이름은 정구민.

우리나라 3대 연예 기획사 중 하나인 YZ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로 근무 중인 정동의 15년 지기 불알친구다.

“야, 그건 그렇고 자리가 하나 빈다? 재원이는 아직 안 왔어?”

“아까 왔는데, 고객한테 전화 왔다면서 잠깐 나갔다.”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재원은 구민과 대학교에서 만났고, 구민의 소개로 정동과도 알게 되었다.

서로 성향이 비슷했던 세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먹고살기에 바쁜 지금도 세 사람은 한 달에 2, 3번씩은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자. 이모! 여기 반반이랑 오백 세 개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치킨과 시원한 맥주가 놓였다.

‘마……. 맛있겠다!’

침을 꿀꺽 삼킨 정동은 다리부터 하나 잡고 뜯었다.

양심이 있는 거냐는 구민의 핀잔을 한 귀로 흘리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요즘 네 그룹은 잘돼 가? 간간히 티비에 나오기는 하던데.”

구민이 배정 받은 신인 걸그룹 ‘플라워즈’는 여자 멤버 6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다.

그러나 확 떠오른 것도, 훅 가라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 새끼가 보자마자 일 이야기야……. 뭐, 그럭저럭 연명은 하고 있는 처지지. 수입에서 유지비를 빼면 딱 0이더라. 그런 너는? 강사 일은 어때?”

“잘돼 가겠냐……. 애들 성적 보니까 이번에도 승급은 아예 글렀더라. 왜 내가 가르치는 애들은 공부를 항상 못하는지.”

구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냥 심플하게 네 강의가 별로여서 그런 게 아닐까, 친구야.”

“호오, 그래서 이번 신곡 성적이 어떻다고?”

“……술이나 먹자.”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디스전이 끝나 갈 무렵,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재원이 돌아왔다.

“요! 정동 왔네. 요즘 학원 일은 잘돼 가냐?”

정동은 조금 짜증난 표정으로 화답했다.

“만나는 놈들마다 그 소리냐? 너는 돈도 잘 버는 놈이 나 놀리냐?”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동과는 달리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재원의 수입은 그런 대로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투자한 땅이 잘되는 바람에 차도 한 대 뽑았단다.

‘겨우 몇 달 못 봤다고 이 녀석이 영 어색하네. 여유도 있어 보이고……. 나와는 삶의 질이 다르겠지.’

두 사람은 그런 재원이 조금은 부러웠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친구야. 그건 그렇고 방금 전화한 고객 있잖아. 세상에 진상도 이런 개진상이 없어요. 웬 아줌마 한 명이 그제 찾아와서는 요 앞에 상가를 산다는 거야. 10억이라니까 알겠대. 조만간 입금한다기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구나! 했더니 방금 뭐라는 줄 아냐?”

재원이 들려주는 진상 손님 이야기는 결코 두 사람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세상은 넓고, 정신 나간 사람은 차고 넘쳤다.

‘진짜 이놈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면 대박이 날 텐데 말이야.’

재원이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1억만 깎아 줄 수는 없느냔다. 1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 아줌마 때문에 상가 주인한테 장난하느냐면서 더블로 깨지고, 그건 안 된다니까 또 진상을 떨고……. 머리 아파서 폰 꺼 버렸잖아.”

“와아아…….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냐.”

항상 이런 식이었다.

세 사람의 대화 주제는 각자의 직업에 대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계속되는 푸념뿐이었다

이번에는 구민이 입을 열었다.

“야, 그런 걸로 힘들다고 하면 나는 뭐가 되냐. 우리 플라워즈 멤버 중에 한 명이 방송 중에 프로그램 MC 뒷담화 까다가 걸린 거 알아? 그거 때문에 힘들게 얻은 패널 자리 바로 뺏기고 그룹 공중분해 될 뻔했잖아. 진짜 웃긴 건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기사 한줄 안 나더라.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민 또한 자신이 담당하는 걸그룹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멤버 한 명 한 명 스케줄 관리를 하랴, 행사 따라다니랴, 식단 챙기랴…….

며칠 못 본 사이에 다크서클이 눈에 띌 정도로 짙어진 친구가 정동은 내심 안쓰러웠다.

‘그래, 매니저가 어디 쉬운 직업이냐? 예능에 나오는 매니저 인터뷰 보면 아주 극한 직업이 따로 없던데. 뭐……. 그래도 나보다 안정적인 직장이니까.’

자신이 구민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당사자인 정동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야, 그래도 너희는 내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너희는 그래도 집에 살잖아. 나는 방에 산다고! 그것도 방음도 안 되고 다 허물어져 가는.”

정동이 휙 던진 말에 한탄섞인 소리를 내뱉던 두 사람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정동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한 듯 커졌다.

“나는 매일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해. 게다가 중간고사 시즌인 요즘은 채점하랴 보강하랴 휴일도 없이 일한다고. 내가 돈이 부족해서 3년을 피우던 담배도 끊었어! 그런데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기만 하고. 오늘 친 모의고사 보니까 이번에도 고3부나 재수부 이동은 물 건너갔더라. 너희는 저축이라도 조금씩 하지, 나는 어떡하냐…….”

구민이는 일이 힘들기는 해도 회사가 그래도 대형 기획사이다 보니 평균적인 수입은 벌 수 있었다.

재원은 역시 작기는 해도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먹고살 만한 편이었고.

그러나 정동만은 달랐다.

휴일도 반납하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일하지만, 몇 년째 진급은 꿈도 못 꾸는 상황.

‘젠장……. 얘들 앞에서 이게 뭐야. 내가 고3부로 진급만 했어도 술도 사고 할 텐데.’

이미 학원에서도 딱 중간인 강사로 이미지가 굳어진 지 오래이다.

정동의 진심이 담긴 푸념으로 인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5년 지기 친구의 내공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모! 여기 소주 2병 추가요!!”

곧 테이블에 놓인 차가운 소주를 정동의 잔에 넘치도록 따르는 구민의 뒤로 재원이 결정타를 먹였다.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술값 내가 낼 테니까 더 마셔! 안주도 더 시키고.”

“진짜지? 나 오늘 미친 듯이 달린다?”

“암, 진짜지. 이 장재원이 쏠 테니까 끝까지 달리자고!”

다행히 금세 기분이 풀어진 정동은 2차로 노래방까지 가서 친구들과의 회포를 진하게 풀었다.

노래방 비는 구민이 냈지만, 정동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나란 놈은 허구한 날 친구들한테 얻어먹기만 하냐. 돈 많이 벌어서 친구들한테 술 한번 거하게 사고 싶은데.

초능력이라도 생기면 참 좋으련만. 왜, 요즘 게임처럼 학생들 능력치도 보이고 막…….’

그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2차로 간 노래방에서 나와서 3차로 당구장을 가네 마네 하던 무렵부터 전혀 기억이 없었다.



* * *



“으으……. 뭐야……. 아침? 집에 온 건가.”

겨우 옆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2시였다.

“아……. 속 쓰려라. 어제 너무 달렸어. 고작 3차로 필름이 끊어지다니. 나도 늙은 건가? 게다가 머리도 아프고.”

고작 휴대폰을 쳐다봤을 뿐인데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왔다.

해장용으로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싶어 방문으로 고개를 돌린 정동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야?”

[학생 목록

윈스턴 종합 학원 강남 본점, 1-7반

조은화

김길수

차은탁

…….]

반투명한 홀로그램 같은 화면이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 이름이잖아? 알코올이 뇌에 혁신적으로 침투한 건가. 어디 보자, 은화랑 길수랑……. 있을 이름은 다 있네.”

정동이 은화의 이름을 말한 그때였다.

“이건 또 뭐야??”

[학생명 : 조은화

암기력 : 28/100

이해력 : 33/100

독해력 : 25/100

연산력 : 31/100

수리력 : 26/100

현재 상태 : 지루함, 의구심, 회의감

특기 : 속독, 창의성, 높은 집중력

총평 : 문과에 큰 적성을 보입니다. 이과에 취약합니다.

글을 읽고 파악, 해석, 모방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 보는 공부법을 추천합니다.

추천 진로 : 소설가, 문학 평론가, 외교관]

‘이제는 하다 하다 능력치 화면까지 나오는 건가? 이런 증상의 정신병이 있다고는 못 들어 봤는데. 설마…….’

그때, 정동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맞아……. 분명 내가 어제 학생들의 능력치가 보이는 초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이거라고?”

혹시나 해서 찬물로 세수를 했지만 눈앞의 화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비로소 정동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상태창으로 스타강사

 

지은이 : 등심몬

제작일 : 2018.10.1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임준현

표지 : QM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305-6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