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1화 푸드트럭 나가신다 (1)
“이럴 줄 알았으면 환생마법을 연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하긴 전생의 나에게 투덜거려 봤자 뭐 달라지는 것도 없다만.”
김인성은 병원 침대에 앉은 채로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다리뼈가 부러지고, 전신 타박상은 기본인 상태로 조금 전에 수술실에서 나온 상태였다.
회사 퇴직 후 푸드트럭 창업을 준비하며 메뉴 개발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이 꼴이 되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목격자도 많고,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도 자신의 과실을 100% 인정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덕분에 나중에 병원치료비에 합의금까지 넉넉히 타낼 수 있게 된 점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결과 김인성에게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전생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건 김인성으로서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윤회전생이 실제로 있다니…… 기절하겠군.’
김인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자각하게 된 기억을 더듬었다.
첫 번째 전생은 세간에서 판타지 세상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용의 존재와 정령과 마법이 현존하는 세계.
그는 그곳에서 대마법사라고 부르는 존재들 중 하나였다.
미하엘 파르나시오라는 이름을 가졌던 첫 번째 생.
당시 미하엘은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차원 이동과 부활마법의 연구에 힘을 쏟았다.
마법을 사용할 때 그 힘이 통과되는 타 차원의 세계에는 자신들을 만든 신들이 존재하며 죽은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고(古)문서에 적힌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하엘은 연구 끝에 마법이 발동할 때 생기는 마법 입자를 발견했다.
마법 입자의 생성과 증폭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단계에 이른 미하엘은 누구도 구현하지 못한 차원 이동 마법의 기초공식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타 차원을 열려면 대량의 마법 입자가 필요했고 이를 최대치로 올리던 미하엘.
하지만 마법 입자의 증폭과정 중 마나 주입의 실패로 마법 입자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직접 마나를 주입하던 미하엘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터져버린 마법 입자가 미하엘의 영혼에 엉겨 붙는 바람에 불완전한 환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환생을 하되 아기 때부터 기억과 인격을 전승받는 게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이 성인이 된 스무 살에 되살아난다.
전생의 인격과 자아는 전승되지 못하고, 기억과 정보만 전승되었다.
미하엘은 강호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정철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두 번째 삶을 살게 된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정철의 나이가 열일곱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사파 출신의 강호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아가 되어 세상을 떠돌던 정철은 무팔기(武八技)를 창안한 스승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무팔기는 손과 발,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한 여덟 개의 신체 부위를 이용한 격투술이다.
스승은 동남쪽에 위치한 시암국 출신의 무인(武人)이었다.
그는 본래 용병으로 어려서부터 전쟁기술을 익혔으며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겪었다.
중국에서 용병생활을 청산한 그는 자신의 실전경험과 강호의 무술까지 익히며 무팔기라는 무술을 창안한 것이었다.
그러다 고아가 된 정철을 만나게 되고 그를 가엽게 여겨 자신의 밑에 두며 무술을 알려준 것이었다.
이 또한 제법 큰 기연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변은 정철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발생했다.
대마법사였던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것이다.
이후 정철은 전생의 마법 지식을 이용하여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단련했다.
필연적으로, 정철은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게 되며 수많은 강호인들을 쓰러트렸다.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정철은 천마(天魔)라 불리게 된다.
무공과 마법을 같이 사용하니 강호에 그를 이길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은 기억 때문에 악(惡)을 미워하는 그는 악인을 보면 전부 죽이는 행보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잘못도 용서치 않았던 정철은 결국 강호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렇게 강호인들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정철.
결국 그는 소림사의 권법가이자 천하삼존(天下三尊) 중 한 명인 신승이 이끄는 백팔나한진과 혈전을 벌였다.
소림사가 위치한 숭산(嵩山)에서 삼일동안 벌어진 치열한 전투.
백팔나한진이라 불리는 승군들은 정철에 의해 흔적을 찾을 수 없게끔 으깨어졌고 부서졌다.
결국 이들의 수장인 신승이 마지막 방법으로 정철과 동귀어진을 함으로써 전투는 종결을 맞이했다.
이것이 정철의 두 번째 삶.
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서 깨우친 그의 세 번째 삶은 몹시도 평범했다.
“이런 걸 할 수 있으니 그냥 개꿈이라고 할 수도 없고…….”
김인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전생을 자각함으로써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끼던 중이다.
바로 기(氣). 혹은 마나라고 부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김인성의 손바닥 위에서 조그마하게 흔들거렸다.
김인성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병원의 하얀색 천장이 보인다.
교통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몸은 욱신거리며, 기분은 몹시 복잡했다.
전생의 기억이 사실인 것은 김인성 스스로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그일 뿐이다.
환생 마법이 반만 적용된 덕분에 전생의 일은 정보로서만 작용한다.
무자비했던 정철이 아닌 평범한 김인성일 뿐인 것이다.
“차라리 회사 다닐 적에 자각 좀 하지. 사고당한 뒤에 알면 어쩌라는 거야?”
현재 그의 나이는 이제 29살.
정철이었던 두 번째 생(生)이었던 것과 달리 9년이나 늦게 전생을 자각한 셈이다.
세 번째 생을 사는 김인성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에 학교 잘 다니고,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했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김인성은 중소기업의 건설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졸업 후 바로 취직이 된 것에 기뻐한 김인성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회사는 숨이 조여 오는듯한 업무량, 강압적인 수직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가득했다.
남들도 이만큼 하니 너 또한 그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
불만을 제기하는 이는 사회성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노예구조.
일주일 기준으로 기본 야근이 4일, 업무량이 많으면 주말에도 나와 일을 했다.
간혹 직장상사의 이유 없는 호출로 주말에 출근한 적도 종종 있었다.
어느 때는 새벽 4시에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겨우 탄 채 집에 돌아와 다시 오전 9시까지 출근하기도 했다.
그런 피폐한 생활을 2년간 하다 보니 어느덧 김인성의 나이는 28살.
새로운 신년을 맞이한 그 날 김인성은 퇴직서를 제출했다.
푸드트럭 창업을 생각한 것은 회사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집안이 어려웠던 김인성의 중학교 시절.
이른 새벽에 출근하여 늦은 저녁에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김인성은 중학교 때부터 종종 요리를 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본 어린 여동생이 맛있다며 웃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 김인성.
이후 대학생활을 하며 자취를 할 때도 저녁 식사만큼은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었다.
종종 자취방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요리 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리 동영상을 통해 직접 요거트를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김인성.
발효 도구와 우유, 유산균 음료만 있으면 되며 유제품을 좋아하지만 우유를 먹으면 속이 좋지 않았던 김인성에게 수제 요거트는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푸드트럭 창업을 생각하며 떠올린 메뉴가 수제 요거트와 커피였다.
퇴사한 김인성은 푸드트럭을 준비하며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자신의 사업을 준비하는 김인성의 심정은 매우 절박했다.
이전의 김인성은 요리를 자신의 인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일상 속에서 즐기는 작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의 즐거움이 밥벌이가 되자 상황이 매우 진지해진 것이다.
앞서 푸드트럭을 한 창업자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상권분석을 했다.
요거트와 커피의 경우도 더욱 전문성을 갖추고자 디저트 학원과 커피 학원을 전전하며 관련 지식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긴 김인성은 마침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년창업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푸드트럭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그러던 찰나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지 않았고 장애가 남지 않았으니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공과 마법이라니?
그간의 노력과 고생들이 단번에 부정되는 그런 기분이다.
“복권 당첨은 차라리 기쁘기라도 하겠는데, 이건 참 뭔가 싶네…….”
김인성은 복잡한 기분을 날렸다. 어쨌든 행운이지 않나?
‘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까 무공은 확실히 사용 가능하고…… 마법도 가능하다고 하면, 돈 버는 건 크게 어려울 건 없긴 하네.’
사실 김인성은 푸드트럭을 준비하는 와중에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실업률은 고공행진.
취업률은 바닥.
요식업 창업한 사람의 70% 이상은 3년 사이에 폐업한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다.
피가 마르지 않는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이 없어져 버렸다.
마법과 무공. 이걸 사용하는 것에 따라서는 이 현대 사회에서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으니까.
‘아냐. 그렇게 거창한 부귀영화까지는 필요 없고.’
전생에는 참으로 엄청난 일들을 벌여왔다.
죽고 죽이는 그런 삶들,
지금의 김인성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기억이지만 너무도 뚜렷한 전생의 기억.
하지만 현생의 자아는 어엿한 소시민 아닌가?
전생처럼 큰 스케일의 일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김인성은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마법이나 무공을 가지고 있는 지금. 어떻게 하고 살아갈까?
‘그래. 적당히 능력을 써서, 적당히 먹고 살도록 해야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와서 영화의 히어로들처럼 될 것도 아니었다.
큰 문제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으로 소시민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던 와중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뛰어들어 왔다.
“오빠! 괜찮아? 교통사고라며! 사고 낸 놈은 어디 갔어? 아, 아니지. 수술 중이라더니. 수술 끝난 거야?”
“인지야! 잠깐만 릴렉스, 진정해.”
“아니 지금 릴렉스란 말이 나와?! 사고 낸 놈 어디 있어!”
김인성은 자신의 앞에서 부들거리는 여동생을 진정시키고자 진땀을 흘렸다.
여동생 김인지.
고등학교 배구부의 라이트 공격수로 활약하는 김인지는 일반남성보다 체격이 조금 더 큰 편이다.
운동선수답지 않게 작은 얼굴의 귀여운 외모는 같은 학교의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여고생이 아닌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파이터로 보일 정도였다.
자신의 손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여동생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상대방이 저 손에 따귀를 맞으면 귓밥이 튀어나올 거다.
“경찰하고 이야기했어, 교통사고 낸 사람이 과실도 모두 인정했고, 수술비나 다른 비용까지 다 낸다고 하더라.”
“그런 게 대수야!”
버럭! 하고 김인지가 소리쳤다.
5인 병실이라서,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돌아본다.
그제야 얼굴이 빨개진 김인지가 목소리를 줄였다.
“그래서 다친 데는 괜찮은 거야?”
“다리가 부러졌지만…… 오히려 깔끔하게 부러진 거라서 잘 붙을 거라고 했어.”
김인성이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자, 김인지는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때마침 연락을 받은 부모님도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 왔다.
“인성아!”
조금 전 여동생과 비슷한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부모님은 온갖 걱정을 하고, 김인성의 의연한 모습에 그나마 안심한 모습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담대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전생의 기억이 뭔가 영향을 끼치긴 한 것 같…… 아니. 확실히 영향을 줬어.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에 이런 분석을 하고 있을 리가 있나.’
자신이 생각해도 필요 이상으로 차분해진 것이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김인성은 부모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걱정시켜드려 죄송해요.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니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우리 아들이 멀쩡히 정신 차린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 천만다행이지 뭐니.”
부모님의 말씀에, 김인성은 아픈 몸이지만 두 분을 안심시켜야 했다.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자신을 신경 써준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천마님 요리하신다
지은이 : 문워킹
제작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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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 이가영
표지 : 고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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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65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