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마스터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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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단삼, 대지에 서다



강호에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지.


-강호야사 제갈곡-




몸이 아프다. 정신이 어지럽다. 토할 것 같다. 그런 기분 속에서 단삼은 눈을 떴다.

“아…….”

단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달이 3개다.

환각을 보는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단삼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단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혼절했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를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단삼은 참아내고 몸을 일으켜 대지 위에 섰다.

몸이 비틀 흔들렸지만 단삼은 일어서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 상태를 천천히 관조했다.

“이거…….”

몸은 엉망이다. 폐가 일그러져 있고, 심장도 반쯤은 뭉개져 있어서 잘 움직이지 않아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었다.

단전은 완전히 박살났고, 근육도 뒤틀리고 끊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죽지도 않고, 혼절하지도 않은 채로 일어서서 대지 위에 선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단삼은 쓰게 웃으며 고통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다시금 천천히 땅에 드러누웠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고통과 아픔을 토해낸다.

그런 상태로 단삼은 천천히 누워 조용히 대지에게 말을 걸었다.

“힘을 빌려 줘.”

대지는 단삼의 말에 반응하듯 잘게 떨리며 그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미 천지교류의 경지에 오른 단삼이었기 때문에, 온몸이 부서졌다고는 해도 죽지만 않는다면 천지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여 육신을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아…….”

단삼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정말 엉망이다. 몸이 너무 엉망이라 강대한 기운을 쏟아 부어도 제대로 치유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단삼의 능력이라고 해도 이런 몸을 고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다. 우선 몸만 제대로 된다면 공력이야 언제든지 모아들일 수 있기에 단삼은 공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천지자연이 자신과 함께하는 한 공력이 부족할 일은 없다. 단삼은 그렇게 천천히 몸을 치료했다.

단삼은 먹지 않아도 살 수가 있다. 다만 먹지 않으면 몸의 치료가 더뎌지는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당장 움직일 수 없기에 단삼은 그저 대지에 묻혀서 몸을 치료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3개라! 자신은 이계에 들어선 것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몸은 엉망이지만 감각은 아직 죽지 않았다. 덕분에 더 아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단삼은 쓰게 웃었다.

“하아? 하쿰 다쿠라?”

“흠! 제쿠라스…….”

“겔키 다쿠라?”

“덴툼! 단다마자!”

다가오는 기척은 2명이다. 그들의 기척은 단삼으로서도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사람과 흡사하지만, 왠지 사람이라기보다는 바위와 불꽃을 떠올리게 한다.

단삼은 그런 2명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입을 열 기력도 없었다.

두 기척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결국 단삼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기어코 그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맨 처음부터 단삼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단삼은 그저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지와 한 몸처럼 동화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씻고 봐도 땅에 누운 단삼을 그냥 맨 땅과 다를 바 없이 여기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교류를 이용한 궁극의 은형술(隱形術)이다.

단삼은 중원에서 자신이 살았던 도시를 이 은형술을 이용해서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생각이 이어지며 단삼은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영이가 걱정 많이 할 텐데……. 화련이는 어찌하고 있을까? 유 할아버지께서는 정정하시겠지? 하와 재영이는 어찌하고 있을꼬? 한이가 잘해줘야 할 터인데. 매령이가 외로움을 잘 타는데 어쩌지?

“덴툼! 마타 다카즈!”

“오! 마타 다카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천지교류가 흩어져 버렸다. 본래라면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을 테지만, 몸의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서 만인지체(萬忍之體)인 단삼으로서도 정신이 혼란을 겪자 저절로 천지교류가 끊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두 기척은 단삼을 찾아냈다.

단삼은 두 기척의 느낌이 불과 바위를 닮아 순후하고 정양하여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그저 모른 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들킨 것을 어쩌랴? 다시 숨어버리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둘은 뭐라고 모르는 말로 떠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단삼을 보고는 다시금 크게 떠들더니 그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북슬북슬.

단삼은 둘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근육을 지닌 노인들이었는데, 턱수염이 마치 칡뿌리처럼 북슬북슬하게 자라나 있어서 대단히 야성적으로 보였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그리고 어떻게 불과 바위의 힘을 품 안에 가지고 있는 걸까?

생김새는 척 봐도 중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서역인에 가까웠다. 갈색 눈동자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들은 피부가 하얗고 주름이 졌다.

강인한 인상의 둘을 보며 단삼은 이 땅에도 무공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등에 멘 철 상자 같은 데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드디어 들것을 완성하고는 단삼의 몸을 조심조심 옮겼다.

아, 치료해주려나 보다.

단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두 노인은 단삼을 데리고 숲을 가로지르더니 처음 보는 이색적인 거대한 성벽에 도착했다.

높다란 성벽은 바위와 금속으로 만들었고, 그 주위로는 해자가 파여져 물이 흐르고 있는 모습은 이색적인 데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험난한 숲 속에 이런 거대한 성벽이 있다니?

그렇게 놀라는데 두 노인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거대한 성문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그것은 도개교라는 것으로 중원에는 없는 것이다.

단삼은 신기한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저 거대한 철제 문짝이 다리로 변하는 과정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도르래와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구조물이다. 마치 제갈세가의 기관진식과 비슷하지만, 미시적인 것이 아닌 거시적인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단삼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두 작달막한 키에 근육질의 노인들은 단삼을 데리고 그 성채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도개교가 올라간다. 그것을 보며 단삼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성채와 도개교의 구조가 상당히 궁금했다.

그렇게 궁금해 하던 자신을 발견하고 단삼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천생 일꾼이었다. 이렇게 다 죽을 듯한 상황에서 도개교의 구조를 궁금해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나?

노인들이 단삼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성채 안쪽으로 대충 1천 정도의 기척이 느껴졌다. 1천 명의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슬쩍 돌려 성채 안에 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모두 돌과 금속을 이용해 만든 튼튼한 건물들로, 그 구조와 건축양식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단삼은 그것을 보며 호오, 하고 평가를 내렸다. 집의 방향으로 환풍에 대해서 생각하고, 집의 높이와 구조로 균형과 튼튼함을 평가했다.

과연 단삼은 천생 장인이었다.

“하쿰! 헤루라 파탄!”

“흠, 헤루라 파타쿠 마타라?”

그런데 보니까 모두가 작달막한 키를 가진 게 아닌가? 거기다가 또 다른 특징이라면 대단히 두꺼운 근육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부가!

허, 이런 사람이 다 있었나?

단삼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작달막한 키를 가진 근육질의 사람들은 전부 불과 바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는 백련교나 사혈교, 만사문처럼 특별한 무공을 익히는 집단이라도 되나? 하지만 이들은 단전이 없는데?

하기야 특별한 무공은 단전이 굳이 필요 없다. 단삼 자신도 단전을 안 쓰는데 남이 안 쓰다고 이상할 거야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라?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단삼은 잠깐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 세계는 천지자연의 기운이 엄청나게 강대했던 까닭이다.

중원에서 생활할 적에도 이런 거대한 기운을 느낀 적이 없다. 이렇게 천지자연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라니?

그러고 보니 달도 3개였다. 그렇다면 여기는 정말 이계(異界)라고 결론을 내렸다. 단삼은 비록 주술을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주술 중에는 그림자의 술법으로 요계(妖界)를 가거나, 수경을 통해서 환계(幻界)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달이 3개인 세계라? 그런 곳에 대한 이야기는 단삼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작달막한 키를 가진 사람들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소리를 지르더니 단삼을 데리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큰 건물로 들어가서는 하나의 방으로 데려가 단삼을 눕히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침대가 단삼에게 약간 작았다.

작달막한 키를 가진 그들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떠들더니 침대를 분해해서는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단삼이 처음 보는 천으로 된 이불을 가져와 깔자 그제야 그가 누울 만한 침대가 되었다.

단삼을 그곳에다가 눕히고서 그들은 뭐라고 떠들며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고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단삼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왠지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단 감정을 느끼며 백련교주를 생각했다.

“아아… 형제의 선물이구나.”

최후의 싸움. 이계로 통할 만한 그 엄청난 폭발에서 단삼이 살아남은 것은 최후의 순간 백련교주의 덕분이었다.

조금만 더 같이 했었다면…

친구로서 지냈었다면…

형제로서 같이 생을 보내었다면…

더 즐거웠을 터인데…….

그 잔잔한 마음의 파문을 즐거이 만끽하며 단삼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왠지 안심이 된다. 여기저기 망치 두드리는 소리로 시끄럽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향에 온 듯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허허, 망치 소리에도 잘도 자는구나.’


오래전 하늘로 올라간 스승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삼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 *



단삼은 작달막하고 굵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 석 달이나 지냈다. 그들은 투박한 몸과는 달리 매우 세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노동신공의 화후를 거의 6성 정도 익혀야지만 가질 수 있는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듯했다.

3개월 동안 단삼은 천지자연의 기운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오행지기를 끌어들여 오행신단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단삼이 익힌 절세신공인 노동신공은 극에 이르면 단전이나 내단 따위는 필요가 없는 선인지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은 죽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한 몸을 하고 있으니, 몸의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오행신단을 만들어야 했다.

제 1화



단삼,

대지에 서다



강호에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지.


-강호야사 제갈곡-




몸이 아프다. 정신이 어지럽다. 토할 것 같다. 그런 기분 속에서 단삼은 눈을 떴다.

“아…….”

단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달이 3개다.

환각을 보는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단삼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단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혼절했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를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단삼은 참아내고 몸을 일으켜 대지 위에 섰다.

몸이 비틀 흔들렸지만 단삼은 일어서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 상태를 천천히 관조했다.

“이거…….”

몸은 엉망이다. 폐가 일그러져 있고, 심장도 반쯤은 뭉개져 있어서 잘 움직이지 않아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었다.

단전은 완전히 박살났고, 근육도 뒤틀리고 끊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죽지도 않고, 혼절하지도 않은 채로 일어서서 대지 위에 선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단삼은 쓰게 웃으며 고통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다시금 천천히 땅에 드러누웠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고통과 아픔을 토해낸다.

그런 상태로 단삼은 천천히 누워 조용히 대지에게 말을 걸었다.

“힘을 빌려 줘.”

대지는 단삼의 말에 반응하듯 잘게 떨리며 그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미 천지교류의 경지에 오른 단삼이었기 때문에, 온몸이 부서졌다고는 해도 죽지만 않는다면 천지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여 육신을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아…….”

단삼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정말 엉망이다. 몸이 너무 엉망이라 강대한 기운을 쏟아 부어도 제대로 치유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단삼의 능력이라고 해도 이런 몸을 고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다. 우선 몸만 제대로 된다면 공력이야 언제든지 모아들일 수 있기에 단삼은 공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천지자연이 자신과 함께하는 한 공력이 부족할 일은 없다. 단삼은 그렇게 천천히 몸을 치료했다.

단삼은 먹지 않아도 살 수가 있다. 다만 먹지 않으면 몸의 치료가 더뎌지는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당장 움직일 수 없기에 단삼은 그저 대지에 묻혀서 몸을 치료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3개라! 자신은 이계에 들어선 것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몸은 엉망이지만 감각은 아직 죽지 않았다. 덕분에 더 아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단삼은 쓰게 웃었다.

“하아? 하쿰 다쿠라?”

“흠! 제쿠라스…….”

“겔키 다쿠라?”

“덴툼! 단다마자!”

다가오는 기척은 2명이다. 그들의 기척은 단삼으로서도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사람과 흡사하지만, 왠지 사람이라기보다는 바위와 불꽃을 떠올리게 한다.

단삼은 그런 2명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입을 열 기력도 없었다.

두 기척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결국 단삼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기어코 그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맨 처음부터 단삼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단삼은 그저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지와 한 몸처럼 동화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씻고 봐도 땅에 누운 단삼을 그냥 맨 땅과 다를 바 없이 여기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교류를 이용한 궁극의 은형술(隱形術)이다.

단삼은 중원에서 자신이 살았던 도시를 이 은형술을 이용해서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생각이 이어지며 단삼은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영이가 걱정 많이 할 텐데……. 화련이는 어찌하고 있을까? 유 할아버지께서는 정정하시겠지? 하와 재영이는 어찌하고 있을꼬? 한이가 잘해줘야 할 터인데. 매령이가 외로움을 잘 타는데 어쩌지?

“덴툼! 마타 다카즈!”

“오! 마타 다카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천지교류가 흩어져 버렸다. 본래라면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을 테지만, 몸의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서 만인지체(萬忍之體)인 단삼으로서도 정신이 혼란을 겪자 저절로 천지교류가 끊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두 기척은 단삼을 찾아냈다.

단삼은 두 기척의 느낌이 불과 바위를 닮아 순후하고 정양하여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그저 모른 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들킨 것을 어쩌랴? 다시 숨어버리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둘은 뭐라고 모르는 말로 떠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단삼을 보고는 다시금 크게 떠들더니 그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북슬북슬.

단삼은 둘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근육을 지닌 노인들이었는데, 턱수염이 마치 칡뿌리처럼 북슬북슬하게 자라나 있어서 대단히 야성적으로 보였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그리고 어떻게 불과 바위의 힘을 품 안에 가지고 있는 걸까?

생김새는 척 봐도 중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서역인에 가까웠다. 갈색 눈동자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들은 피부가 하얗고 주름이 졌다.

강인한 인상의 둘을 보며 단삼은 이 땅에도 무공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등에 멘 철 상자 같은 데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드디어 들것을 완성하고는 단삼의 몸을 조심조심 옮겼다.

아, 치료해주려나 보다.

단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두 노인은 단삼을 데리고 숲을 가로지르더니 처음 보는 이색적인 거대한 성벽에 도착했다.

높다란 성벽은 바위와 금속으로 만들었고, 그 주위로는 해자가 파여져 물이 흐르고 있는 모습은 이색적인 데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험난한 숲 속에 이런 거대한 성벽이 있다니?

그렇게 놀라는데 두 노인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거대한 성문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그것은 도개교라는 것으로 중원에는 없는 것이다.

단삼은 신기한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저 거대한 철제 문짝이 다리로 변하는 과정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도르래와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구조물이다. 마치 제갈세가의 기관진식과 비슷하지만, 미시적인 것이 아닌 거시적인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단삼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두 작달막한 키에 근육질의 노인들은 단삼을 데리고 그 성채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도개교가 올라간다. 그것을 보며 단삼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성채와 도개교의 구조가 상당히 궁금했다.

그렇게 궁금해 하던 자신을 발견하고 단삼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천생 일꾼이었다. 이렇게 다 죽을 듯한 상황에서 도개교의 구조를 궁금해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나?

노인들이 단삼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성채 안쪽으로 대충 1천 정도의 기척이 느껴졌다. 1천 명의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슬쩍 돌려 성채 안에 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모두 돌과 금속을 이용해 만든 튼튼한 건물들로, 그 구조와 건축양식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단삼은 그것을 보며 호오, 하고 평가를 내렸다. 집의 방향으로 환풍에 대해서 생각하고, 집의 높이와 구조로 균형과 튼튼함을 평가했다.

과연 단삼은 천생 장인이었다.

“하쿰! 헤루라 파탄!”

“흠, 헤루라 파타쿠 마타라?”

그런데 보니까 모두가 작달막한 키를 가진 게 아닌가? 거기다가 또 다른 특징이라면 대단히 두꺼운 근육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부가!

허, 이런 사람이 다 있었나?

단삼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작달막한 키를 가진 근육질의 사람들은 전부 불과 바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는 백련교나 사혈교, 만사문처럼 특별한 무공을 익히는 집단이라도 되나? 하지만 이들은 단전이 없는데?

하기야 특별한 무공은 단전이 굳이 필요 없다. 단삼 자신도 단전을 안 쓰는데 남이 안 쓰다고 이상할 거야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라?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단삼은 잠깐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 세계는 천지자연의 기운이 엄청나게 강대했던 까닭이다.

중원에서 생활할 적에도 이런 거대한 기운을 느낀 적이 없다. 이렇게 천지자연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라니?

그러고 보니 달도 3개였다. 그렇다면 여기는 정말 이계(異界)라고 결론을 내렸다. 단삼은 비록 주술을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주술 중에는 그림자의 술법으로 요계(妖界)를 가거나, 수경을 통해서 환계(幻界)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달이 3개인 세계라? 그런 곳에 대한 이야기는 단삼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작달막한 키를 가진 사람들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소리를 지르더니 단삼을 데리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큰 건물로 들어가서는 하나의 방으로 데려가 단삼을 눕히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침대가 단삼에게 약간 작았다.

작달막한 키를 가진 그들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떠들더니 침대를 분해해서는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단삼이 처음 보는 천으로 된 이불을 가져와 깔자 그제야 그가 누울 만한 침대가 되었다.

단삼을 그곳에다가 눕히고서 그들은 뭐라고 떠들며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고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단삼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왠지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단 감정을 느끼며 백련교주를 생각했다.

“아아… 형제의 선물이구나.”

최후의 싸움. 이계로 통할 만한 그 엄청난 폭발에서 단삼이 살아남은 것은 최후의 순간 백련교주의 덕분이었다.

조금만 더 같이 했었다면…

친구로서 지냈었다면…

형제로서 같이 생을 보내었다면…

더 즐거웠을 터인데…….

그 잔잔한 마음의 파문을 즐거이 만끽하며 단삼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왠지 안심이 된다. 여기저기 망치 두드리는 소리로 시끄럽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향에 온 듯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허허, 망치 소리에도 잘도 자는구나.’


오래전 하늘로 올라간 스승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삼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 *



단삼은 작달막하고 굵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 석 달이나 지냈다. 그들은 투박한 몸과는 달리 매우 세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노동신공의 화후를 거의 6성 정도 익혀야지만 가질 수 있는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듯했다.

3개월 동안 단삼은 천지자연의 기운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오행지기를 끌어들여 오행신단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단삼이 익힌 절세신공인 노동신공은 극에 이르면 단전이나 내단 따위는 필요가 없는 선인지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은 죽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한 몸을 하고 있으니, 몸의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오행신단을 만들어야 했다.

워크마스터


지은이 : 성상영

제작일 : 2018.10.25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임준현

표지 : 장은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305-63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