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검신이 된다 001화

0000

제 1화



1화



-아아, 우화등선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나의 무공을 남기지 못한 것이 한이로구나!

어디선가 노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울려 퍼졌다.

올해 12살이 된 어린아이 카르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백의 공간이었다.

그러자 위에서 또 흐릿하면서도 굵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이 있으면 우화등선에 실패하게 되니. 연자여, 그대는 이제 내 제자가 돼서 나의 모든 무공을 이으라.

위로 고개를 올리자 하얀 구름을 타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구, 구름을 타고 있어?’

구름을 타고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은 고위 마법사들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하얀 의복을 입고 있는 노인은 구름에 올라타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카르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마치 카르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노인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구름이 차츰 사라지더니 노인이 바닥으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어?!”

순간적으로 당황한 카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족히 5층 건물 높이에 있는 저곳에서 떨어졌다간 그대로 즉사할지도 몰랐다.

탓-

하지만 우려와 달리 노인은 깔끔하게 착지했고, 카르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저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니!’

노인이 갑자기 다리를 살짝 벌리고 손을 올리며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저건 뭐지?’

용병들이 사용하는 권법이 생각났지만, 그것과 다르게 노인의 자세는 어정쩡하고 허술해 보였다.

노인이 카르를 보더니 천천히 움직이면서 말했다.

“이것은 태극권이라 한다. 본도의 사문인 무당파의 기초지만 모든 것이라 해도 무방한 무술이다. 이를 깨달을 수만 있어도 능히 천하를 뒤흔들 수 있으리라.”

느릿하면서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노인의 움직임.

하지만 무술을 모르는 카르에겐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만 보일 뿐이었다.

카르는 지루하면서도 반복적인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말을 걸어 봤지만, 노인은 역시나 말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분이 흐르고, 태극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씩 펼쳐 본 노인은 다시 카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곳은 나의 염환과 환영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고통은 느낄 수 있되, 실제로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니 잘 따라와 주길 바란다.”

무공과 우화등선에 이어서 또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을 하는 노인.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카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할아버지,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노인은 그 말을 묵살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태극권 자세를 취하며 말없이 근접해 오는 그 모습은 카르에게 위압감을 실어 줬다.

당황한 카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 할아버지?”

코앞까지 다가온 노인은 카르의 복부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눈으로 보기엔 그 속도는 꽤 느렸고, 카르는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 몸을 틀려고 했다.

‘모, 몸이 안 움직여져?’

카르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였다.

손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몸이 제대로 안 움직여졌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카르의 느린 몸으론 노인의 공격을 피할 수 없는 거였다.

결국 노인의 손바닥이 카르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그 충격에 몸이 붕 뜨면서 뒤로 날아갔다.

“커헉!”

쿵!

바닥에 쓰러진 카르가 자신의 복부를 매만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켁! 켁!”

손바닥으로 맞았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고작 한 대 맞았는데도, 둔기로 여러 번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치를 맞은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막히고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그때 바닥에 그림자가 나타났고, 카르가 벌벌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서 무표정의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을 공격하려는 동작이었다.

위험을 직감한 카르가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 주세요!”

하지만 노인은 그것을 무시한 채 이내 손바닥을 내리쳤다.

콰악!

“커헉!”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지며 카르의 눈깔이 뒤집어졌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에 카르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도 노인의 태극권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퍼퍽!



* * *



“헉!”

누워 있던 카르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12평 남짓하는 내부, 몇 없는 가구와 낡은 모포를 덮고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

자신의 집이었다.

그제야 카르는 방금까지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꿈은 대체 뭐였지? 꿈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 잠깐, 중원? 무공?’

어제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던 단어가, 배우지 않았던 내용이 카르의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게 다 뭐야…….’

꿈속에서 노인이 말해 줬던 우화등선과 무공의 뜻은 물론 보지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용어들도 여럿 떠올랐다.

‘나…… 마족한테 저주라도 받은 거야?’

순간 겁이 덜컥 났다.

그냥 꿈이라고 넘기기엔 이상한 용어가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고, 노인에게 맞은 부위들이 미약하게 쑤시고 있었다.

그때 자고 있던 어머니가 연신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그 소리에 걱정이 된 카르가 생각을 관두고 어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카르의 가족이라곤 병이 든 어머니밖에 안 계셨다.

카르의 아버지는 용병이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아 계셨지만 몬스터와의 교전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탓에 카르의 어머니 혼자 집안일과 가장 일을 다 맡게 됐고.

혼자서 계속 무리하다 보니 얼마 못 가 병이 들고 마셨다.

병에 걸린 이후 어머니는 뼈만 남을 만큼 바짝 말랐고, 기침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돈을 모아 사제의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치료를 받고 두세 달 정도만 건강해졌다가 다시금 이렇게 병이 들고 말았다.

사제는 이미 몸이 노쇠하여 그렇다고 했다.

평생 무리하지 않고, 잘 먹고 쉬어야 한다고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카르의 집안 형편에 그런 것은 턱없이 불가능했다.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돈을 모아 월마다 최하급 포션 사 드리는 게 고작이었다.

카르가 어머니의 앙상한 손을 붙잡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그 손은 카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엄마…… 제가 꼭 유명한 용병이 돼서 병을 고쳐 드릴게요.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를 간호하던 카르는 방금 전의 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꿈 내용이 괴상했고 이상한 지식이 남아 잠시 당황했었지만,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 * *



카르가 걸레를 이용해 용병단 내부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바닥에 광채가 나도록. 이마에서 땀이 뻘뻘 흐르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그러자 용병 일을 끝마치고 들어온 용병들이 카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 꼬맹이. 오늘도 열심히 청소하고 있네?”

용병들을 본 카르가 바닥 닦는 걸 멈추더니 웃으면서 인사했다.

“앗. 아저씨들 오셨어요?”

이곳은 카르의 아버지가 생전에 몸담았던 용병단이었다.

B급 용병들 중에서 단연 활약이 뛰어났으며, 현재 용병단장인 아스르와 둘도 없는 친구였었다.

덕분에 스스로 용병단장에 오른 뒤로 아스르가 직접 카르의 딱한 사정을 돌봐 주었고, 허드렛일이나마 거들며 생활비를 벌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그러면서 저절로 인상이 험악한 용병들과도 많이 친해진 카르였다.

“요놈 땀나는 거 봐라. 좀 농땡이도 피워 가면서 살살 해라. 그러다 죽어도 난 모른다.”

“헤헤. 몬스터와 싸우는 아저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표정을 유지하는 카르가 기특한지, 용병들이 험상궃은 얼굴로나마 웃어 보였다.

타악.

한 용병이 느닷없이 자신의 검을 나무 탁자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조금 힘들기야 하겠지만 내 검 좀 손질해 둬라.”

그 뒤로 다른 용병들도 각자 투박하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내 옷도 좀 이따 갖다줄 테니 좀 빨아 주고.”

“내 방 청소 좀 해 둬라! 요즘 벌레까지 꼬여서 아주 미치겠다고!”

용병단장이 카르에게 내준 일은 용병들이 더럽히는 용병단 건물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뿐이었다.

용병들의 숙소나 무기 손질 같은 경우는 용병 개인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들의 부탁이라면 들어드려야죠!”

카르는 자신이 할 일이 아님에도 밝게 웃으면서 승낙했다.

그러면서 걸레를 내려놓고 양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다.”

카르에게 부탁을 한 용병들은 각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쿠퍼를 꺼내서 손 위에다 올려 줬다.

매번 용병들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대신에 돈을 받는 카르였다.

카르가 받은 쿠퍼를 급히 가죽 주머니에 넣더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안에 다 끝내 놓도록 할게요!”

용병들은 몸을 움직이거나 힘쓰는 걸 무척 좋아했지만, 청소 같은 건 엄청 질색했다.

또한 마음먹고 청소를 해 봐야 물건과 바닥에 먼지가 그대로 있었다.

그렇기에 용병들은 돈을 주면서까지 카르에게 잡일을 부탁했다.

카르는 일을 시킨 용병들이 감탄할 정도로 깔끔히 일을 끝내 놓기 때문이다.

“짜식, 빠릿빠릿해서 좋다니까. 그럼 고생해라.”

용병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걸 확인한 카르가 품에 있던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부탁받은 일을 까먹지 않기 위해 메모할 생각이었다.

“헤르 아저씨는 방청소, 카지 아저씨는 빨래…….”

보통 서민들은 글을 쓸 줄 몰랐다.

문자를 외우는 건 꽤나 복잡했고, 실상 쓸 일도 없었기에 귀족 계층이 아니면 배우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카르가 글을 쓸 줄 아는 것은 용병단에서 아스르 다음으로 유일하게 글을 쓸 줄 아는 포라트라는 용병에게 가르침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얇은 책과 가죽 주머니를 들고 있는 중년 남자가 1층으로 내려왔다.

카르가 본능적으로 메모를 뒤로 숨기고 고개를 돌렸다.

“엇?”

중년 남자를 본 카르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아스르 단장님!”

중년 남자의 정체는 카르에게 일자리를 내준 용병단장 아스르였다.

아스르가 딱딱한 얼굴로 카르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용병들 일까지 도와주니 네가 고생이 많구나. 힘들지는 않느냐?”

“힘들기야 해요. 하지만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인걸요.”

“그래. 사내라면 힘들어도 꾹 참고 해내야 한다. 허드렛일도 좋지만 그래도 검술 수련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네 아버지처럼 훌륭한 용병이 되려면 말이다.”

“물론이죠!”

아스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고 있던 책을 휙 던져 줬다.

“받아라.”

그것을 받은 카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스르를 바라보았다.

“이건……?”

절대 검신이 된다

 

지은이 : 우선

제작일 : 2018.02.2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장은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013-9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