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절학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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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혼자의 중얼거림



혼자서 중얼거리면 미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히죽거리면

누가 봐도 미쳐 보이는 것은 당연한 법.

그러니 혼자서 중얼거리는 버릇을 가지지 말라.



-미친 마법사 매드 제라트의 충고 아닌 충고-



우연한 계기였다. 그래, 정말로 우연한 계기였다. 너무나도 우연한 계기로 나는 전류탑을 공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전류탑, 아니 송전탑인가? 그것들은 대부분 산꼭대기에 있고, 대부분의 자재들을 사람이 들고 올라가서 만들거나 수리한다. 당연히 더럽게 힘들고 또 위험하지만, 돈이 된다.

우연한 계기로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고, 한 달간 일을 다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느 날.

구름이 많이 꼈던 그날. 송전탑에 번개가 내리쳤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그 여파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잃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었냐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혼자였다. 그것도 웬 이상한 동굴 안에 혼자 있었다. 아아, 그래. 그 빌어먹을 동굴.

만무공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놨다는 그 빌어먹을 동굴.

그렇다. 나는 어이없게도… 과거의 중국으로 시간 이동을 한 것이다.



* * *



하늘은 맑고 눈은 빙글빙글 돌아간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살지 못했던 나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곤 했었다.

내 나이 열다섯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돌아가셨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가 되어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었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고, 못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공부? 그것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먹고살기도 바빴고,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것이 내 일과였으니까.

원래 빈익빈 부익부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먹고살기도 바쁜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어?

휴식의 달콤한 시간을 쪼개서 공부할 정도로 지독하지는 못하다. 개중에는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지만, 나는 그렇게 재능도, 독심도 강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냥 보통 사람보다 아주 약간 독한 면이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돈을 벌어 살아가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이 자리에 있다. 바로 과거의 중국에 말이다.

고등학교때 유일한 취미가 있었다면,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이다. 힘든 현실에 찌든 나에게 있어 작은 즐거움이랄까.

잠을 못 자게 하는 선생의 수업 시간에는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겨 책을 꺼내어 들고 몰래몰래 보곤 했다.

아아, 참 재미있었지. 실제로 판타지 소설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줄은 전혀 몰랐지만. 번개 맞고 차원 이동해서 다른 세계, 혹은 과거의 중국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언제나 무협을 보면서 왜 하필이면 과거의 중국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일본도 있고, 한국의 과거인 고려나 조선 시대도 있다.

그리고 아예 저 멀리 유럽의 과거로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십자군 전쟁이라던지 하는 때 말이다.

아, 물론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이 다른 나라 역사 외우기도 귀찮고, 보는 독자들도 괜히 ‘새롭다!’라는 미명 하에 머리 아픈 내용을 보기 싫어하는, 즉 수요와 공급의 결과로 그렇게 같은 내용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거기에다가 대여점이라는 특성이 그것을 더욱더 부채질했음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보고 있었던 나에게 소설과 같은 패턴의 운명이 닥치게 된 것이다.

뭐랄까, 무지막지하게 기묘한 기분이다. 어떻게 기묘하냐 하면, 안면이 가려운 것 같으면서도 조금 아픈 것 같고 동시에 웃고 싶은데 울고 싶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도 딱 한 가지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빌어먹을 기연.

으아! 정말 그것 하나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번개에 맞아 시공간 이동을 한 내가 깨어난 곳은 이름 모를 동굴!

그 동굴은 내가 시공간 이동이 될 것을 미리 예견했다는 만무공이라는 영감탱이가 만든 동굴이었다.

일명 만무지동이라는 그 동굴에서 나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3년이나 보내어야 했다.

맨 처음에 행해진 것은 지식 이전의 관으로, 진법에 의해 그가 미리 준비한 지식을 내 머릿속에 강제로 쑤셔 넣는 것이었다.

그 내용이란, 언어에서부터 여러 가지 약초나 무기에 대한 지식과 같은 전반적인 여러 사항들이었는데, 그것을 전해 받는 동안 나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이빨이 뽑히는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덕분에 따로 중국어와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긴 하지만, 나한테 그 고통을 다시 맛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군대에 다시 입영해서 2년 더 썩으라는 소리와 같은 소리라고 간주하고 죽을 때까지 패줄 거다.

군대 2년 재입영이라고! 다시 들어가래! 그거랑 똑같은 소리란 말이다!

여하튼 간에 그런 다음에 여러 가지 관문을 거쳤는데, 하나같이 무식하면서도 효과적이고 욕 나오는 관문들이었다.

덕분에 흔히 소설에 나오는 울트라 캡숑 절라 최고… 축약해서 먼치킨적인 힘을 손에 넣은 나는…

“이렇게 대필 서생이나 하고 있지. 에휴!”

내가 엄청나게 강해져서 도저히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래도 현대인이다.

사람 죽이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학교에서 싸움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어떤 찌질한 일진 녀석이 만날 잠만 처자는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가 붙어서 싸운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잠만 자던 게 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내가 무지막지 강하니 애들 좀 패서 돈 좀 벌어보자… 라는 깡패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건실하고도 건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바로 나의 목적이자 내 삶의 스타일이다.

아, 영어 자꾸 쓰면 안 되는데. 외국인이라고는 겨우 인도인이나 한국인 정도인 지금 이곳에서 영어를 써도 알아듣는 사람도 없으니, 빨리 고쳐야지.

아아, 여하튼 간에 그래서 나는 만무공이 준 지식을 이용해 약초를 가져다 팔기도 하고, 나무꾼 노릇도 하고, 객잔의 점소이도 해보고 하다가 대필 서생을 하기로 했다.

표국의 표사라던가, 그런 걸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건 결국 다른 ‘사람’과 싸워야만 하고, 어떤 때는 ‘생명’을 걸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나는 먼치킨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싸움에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상대겠지만.

여하튼 나는 사람 때리는 것도 싫고, 사람 죽이는 일은 더더욱 싫다. 그래서 나는 대필 서생이 되었다.

약초꾼과 나무꾼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는 대필 서생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번다는 이유도 있지만, 강호인과의 조우 확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약초 찾는답시고 심산유곡을 헤매고 다니면 분명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춘약에 중독된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던가, 쫓기는 사람이라던가, 혹은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게 될 확률이 높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미 시공간 이동까지 했는데 뭔 일이 일어난들 이상하랴?

그래서 대필 서생을 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쌈박하냐? 힘없는 서생 나부랭이이니 강호의 싸움에 휘말릴 필요도 없거니와 돈도 잘 벌리고, 가끔 글 선생을 해주는 일종의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다.

내 꿈은 어렸을 적부터 안빈낙도가 꿈이었으니, 이 일은 내 성격에 아주 딱 알맞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다가 만무공 영감이 남긴 지식 이전의 관에서 얻은 지식에는 사서삼경에서 도덕경과 같은 도가 경전도 있고, 동시에 불경들도 다수 존재해서 대필 서생과 글 선생 일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동굴에서 3년. 동굴에서 나와서 1년을 지냈다. 7개월간은 세상 돌아가는 꼴도 좀 보고, 약초랑 나무를 가져다 파는 한편 사냥꾼 노릇도 했다.

만무공 영감탱이는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는지 그런 쪽 관련 지식도 지식 이전 관에서 나에게 쑤셔 넣었던 것이다.

그런 잡다한 것까지 쑤셔 넣으니 그렇게 아프지!

아무튼 그래서 나는 3개월 전부터 대필 서생 노릇을 시작했다. 이곳 여가 서점에서 일하면서 말이다.

여가 서점의 주인은 여가장의 장주인 여포심이라는 자로, 그 몸이 무지막지하게 커서 마치 한국에서 한창 떠오르던 격투가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머리가 2개는 더 크던 그 선수보다 큰 덩치의 거구! 자기 말로는 삼국시대의 거력패왕인 여포의 후손이라나?

여하튼 간에 그래서 그의 이름도 여포심이란다. 여포를 잊지 말라는 마음이라나?

그런 그에게는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무식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가 서점을 열었단다. 자신도 이용하고 동시에 이익도 남기기 위해서.

그런데 이 도시에서 이 여가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이란 게 이 시대에서는 조금 비싼 정도가 아니라 일반인은 구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종이가 얼마나 비싼데!

보통 가난한 아이들이 글을 배울 때 흙바닥에 글씨를 써서 배우는 것을 생각하면, 종이가 얼마나 비싼지 능히 짐작이 가리라.

그래서 사실 이 여가 서점을 이용하는 자들은 대부분 여가장의 식솔들이다. 여포심이라는 장주는 어렸을 적에 맨몸 하나로 일어선 자로, 흔히 말하는 강호인으로 강호에서도 꽤나 강한 자로 알려진 자란다.

그는 머리도 비상하여 재테크에 능했는데, 특히 부동산업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아! 땅 투기여! 한국에서도 땅 투기가 최고라고 하지 않던가.

그는 부동산업의 귀재로서 상당한 부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땅 투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무림인들이 객잔이나 기루, 혹은 표국이나 기타 영업망에 의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비하면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팔대세가라 불리는 자들의 경우, 한 지역의 대지주로서 그 지역의 곡물 산출로 부를 얻는 지역 토호들과 같은 형식으로 부를 늘린단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객잔과 부가가치 산업, 즉 2차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그 부의 힘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문파들, 즉 소림이라던가 무당 같은 불가와 도가, 그리고 거지 집단들은 속가제자를 두어 그들의 재정적 원조를 통해 운영된다.

‘머시기 장로의 속가제자인 강 아무개의 연 거시기 표국이 이번 달에 얼마 얼마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식이다.

사파는 어떠냐?

그들은 전형적인 조폭으로, 기업과 같은 형태를 띠고서 그들 영역 내에 있는 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을 압박하여 자릿세, 보호세, 통행세 등을 걷는다.

자릿세를 받는 녀석들은 주로 상가에 둥지를 튼 녀석들이고, 통행세를 받는 놈들은 수적이나 산적들이 있겠다.

보호세를 받는 놈들은 주로 인구가 많은 도시에 기생하는 녀석들로, 조금 큰 조직의 경우가 이에 속했다. 거기다가 제3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인들이 있었다. 흔히 소설에 나오는 3대 상가라던가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자리한 지역에 따라 성향이 다른데,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정경 유착이다.

정경 유착이 뭐냐? 한국에도 있지 않은가!

재계의 인사들과 국회의원, 혹은 고위급 공무원이 떡값을 얼마 줬다더라 하는 등의 일들!

신공절학 


지은이 : 성상영

제작일 : 2018.07.0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배성림

표지 : 장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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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36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