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못 막음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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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한강진.

근래 공격수 가뭄인 한국에 나타난 키 193cm, 몸무게 86kg의 초대형 공격수이다.

그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나간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고, 중학교 대회를 모조리 제패했다.

국내에서만 팀을 우승시켰냐 하면, 세계 유소년 선수권 U-13, U-17에서도 차례로 우승시켰다.

특히, 다른 대회도 아니고 피파 주관의 U-17은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대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대회는 그의 이름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그에게 군침을 흘리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물에 잡힌 물고기 떼처럼 대기했다.

하지만, 한강진은 이 중요한 시기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연습경기에서 상대 미드필더의 태클에 다리가 부러지고 만 것.

큰 수술을 받고, 1년이 넘는 재활을 했지만, 몸은 회복되지 못했다.

본디 181cm였던 키는, 그 사이 10cm가 넘게 부쩍 커버렸다. 그는 몸에 중심도 못 잡고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부모가 일찍 돌아가고 연금으로 연명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돈도 별로 없어, 재활 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유망주였어도 축구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에서 쓸만한 이들은 발에 치일 만큼 많다.

재활도 제대로 못 하고, 몸만 커져 버린 그를 데려갈 이는 아무 데도 없었다.

시간은 흘러, 아무것도 못 하고 몸만 커버린 그는 군대로 들어갔다.

축구인도 뭣도 아닌 그였기에 이것은 그의 축구 인생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2년이 흐르고, 강진이 제대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한강진의 스텟]

-옛날로 몸 상태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스텟과 몸 상태를 볼 수 있는 화면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미친 줄 알았다. 부상 때문에, 망한 인생에 대한 분노 때문에 보이는 환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고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던 부상 부위가 말끔히 치료된 것을 보고, 이것이 꿈이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상태 창을 보고 훈련을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는 자신의 모든 수치를 17세 시절로 되돌렸다.

부상 없는 신체 상태로 돌아와 2부 리그부터 다시 시작한 그는 놀라울 정도의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1년 후, 그는 K리그 팀에 불려갔고, 리그 3위와 득점왕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또 1년 후, 독일 명문 팀인 도르트문트에서 이적제안을 받고,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이적했다.

비록 연봉도 많지 않고, 받은 계약금과 연봉도 그동안 얻었던 빚을 갚는데 다 써버렸지만, 한강진은 자기가 드디어 해외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거기에 더해 그는 큰 화제를 일으키며 후반기만 뛰었는데도 12골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여기까지가 그의 축구 인생의 빛나는 3년. 상태 창으로부터 시작된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다.

바로 다음 시즌이 되자마자 그의 득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대팀이 그의 발놀림을 연구하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강진은 그라운드에서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행동했다.

그 신경질로 인해 퇴장이 잦아지고, 그에 대한 신뢰가 하락되었다. 그것은 악순환이었다. 결국, 강진은 벤치에 머물 때가 더 많아졌다.

이미 신체적으로 스텟은 더 올릴 게 없었다. 상태 창에 표시된 그의 모든 스텟은 끝까지 가 있었고, 더 변하지 않았다.

후보선수로서 반 시즌, 그리고 이제 추가시간에나 교체 출전을 해야 할 정도로 추락한 강진은 감독과 불화를 일으켰다.

시스템 창이 주는 혜택은 거기서 끝났다.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도르트문트를 나왔지만, 세간에서는‘자의적 방출’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나름 그간의 명성으로 하위권 팀과 계약했지만, 거기서도 그는 변변치 않은 실력으로 퇴장과 불화를 반복했다.

결국, 또다시 경합 중에 큰 부상을 당한 강진은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았다.

새 시즌을 앞두고 이번에는 타의적 방출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채, 한국으로 쓸쓸히 돌아왔다.


[잊힌 천재의 몰락]


스포츠 신문에 짤막하게 뜬 기사 하나가 그의 상황을 전해줄 뿐.

한강진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 갔다.

1챕터



아직 채 봄이 되지 못한 늦은 겨울의 추운 바람이 도로 곳곳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두꺼운 파카와 옷으로 피부를 감쌀 때, 얇은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신문가판대 앞에서 멈춰 섰다.


[대한민국 대표팀 또 부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일본에 대패!]

[또다시 직면한 공격수의 부재! 세계 앞에서 작아지는 한국 스트라이커들.]


안타깝게도 신문기사들은 별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있었다. 최근 국제경기에서 대표팀이 골 결정력 문제 때문에 패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휴~, 형씨도 봤수? 아니, 2002년 황금세대들이 은퇴하고 젊은 애들 주축이 됐는데 너무 하다니까? 진짜 골 결정력이 너무하네. 너무해.”

옆에서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꺼낸 20대 남자가 갑자기 껴들었다. 최근 일어난 부진에 공감대를 얻고 싶은 모습.

“진짜, 요새 애들은 다 왜 그런지 몰라. 그렇게 지원받고도 잘하는 놈이 없어요. 없어. 혹시 라이터 있어요? 내가 안 가지고 와서 그런데 좀 빌립시다.”

“전, 담배 안 피웁니다. 운동하는 사람이라서요.”

묵묵히 듣고 있던 남자가 한마디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20대는 그제야 놀라서 눈앞의 상대를 쳐다보았다.

“어어?”

한강진의 큰 키와 덩치, 그리고 다부진 얼굴. 20대 남자의 머릿속에 잊힌 천재의 모습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운동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탄탄한 근육과 덩치, 재기 넘치게 인터뷰하던 모습을 떠올린 남자는 드디어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한강진 선수? 아니, 지금 어떻게 살고 있어요? 방출되고 나서 아무 소식도 못 들었는데. 어디에서 뛰어요?”

20대 청년이야 반가움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지만, 한강진에게는 그리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예전에요. 지금은 그냥 운동만 해요.”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이 26살짜리 청년은 바로 몸을 돌렸다.

‘예전에는 축구 선수였지. 예전에는…….’

강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차가운 밤거리를 걸어갔다.



* * *



“후우! 후우!”

동네의 허름한 체육관 안에서 커다란 샌드백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상적으로 잡힌 삼각근이 보기 좋게 움직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한 듯, 훤히 드러낸 강진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어휴~, 저거 봐라. 저게 어디 3개월짜리 연습생이야?”

그걸 지켜보던 선배 부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파앙! 파앙!

마치 핵주먹이 날아다니듯 무섭게 꽂히는 주먹에 샌드백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10여 분 넘게 두들기던 샌드백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마무리로 킥을 날렸다.

파악!

샌드백이 찢어질 듯이 넘실대었고, 강진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무에타이 도장인데, 마무리는 킥을 써야죠.”

그러면서 레그 킥으로 샌드백을 가볍게 두들기던 강진은 바로 관장 앞으로 갔다.

지난해 겨울부터 다니기 시작한 무에타이 도장이다. 이곳은 가진 건 몸뚱어리밖에 없는 그가 격투기 무대에 나가기 위한 준비 무대였다.

축구를 그만두고, 수년 동안 방황하며 돈만 까먹은 그가 단숨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곳은 바로 격투기 무대였다.

때마침 국내에는 격투기 붐이 일어나고 있어, 수억도 쉽게 버는 이들이 많았다.

 강진은 이곳에서 2년 동안 갈고 닦고 격투기 무대로 진출할 생각이었다.

동양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193cm, 90kg이라는 신체 조건, 거기에 타고난 듯한 격투 센스를 지닌 강진은 이 도장에서도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관장님, 전 줄넘기 좀 할게요.”

강진은 바로 줄넘기를 들었다. 그는 줄넘기를 하루에 천 개 이상을 기본으로 한다.

원래 부족한 밸런스를 잡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써 다른 무엇보다 강진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이기도 했다.

옆에서 벙거지를 쓴 관장은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이온 음료수 하나를 주었다.

“그래, 그거 끝나고 좀 쉰 다음에 바로 형들 스파링 좀 해줘라.”

“네!”

강진은 바로 그걸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3개월 동안 체력 훈련만 하다가 이제 막 미트 치기와 킥 자세를 배운 그였다.

아직은 힘이 앞서지만, 나중에는 정교하게 움직여지리라.

강진은 그렇게 줄넘기를 힘차게 돌렸다. 이전에는 툭하면 발에 걸리고, 넘어졌으나 이제는 완연하게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다리는 어느새 강철과도 같이 단단한 근육으로 채워졌다. 그는 힘차게 줄넘기를 돌렸다.

예전처럼 축구는 못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이 신체를 살리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은 강진은 거세게 팔을 돌렸다. 줄넘기는 흉흉한 바람 소리를 내며, 연신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리듬에 맞춰서 더 빠르게 해보고, 더 느리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한차례 줄넘기를 끝내자, 이제 관장이 이야기한 대로 스파링에 들어갔다.

어차피 연습생이고, 한국에서 중량급 선수는 드물기에 맨날 붙는 선수랑 붙는다.

그는 아직 원투나 배우는 초보였으므로 보통은 샌드백 신세였다.

“좋아! 발을 더 살리고!”

프로 데뷔를 하는 라이트 헤비급 선배는 관장의 지시에 따라 빠른 스텝으로 강진의 옆구리를 후려 패고 있었다.

‘쳇. 진짜 뭐, 스텝이 안되니까 미치겠군.’

축구장에서 밸런스가 무너져 허우적댈 때가 생각났다.

 줄넘기로 균형을 좀 잡았다만 할 줄도 모르는 스텝을 밟다가 허우적거린 게 벌써 2주일 전이었다.

스파링이니까 빠른 스텝으로 치고 빠지는 선배의 리듬을 기억한 강진은 그가 다가오는 순간, 주먹을 휘둘렀다.

휘익!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파워였지만 상대가 바로 몸을 숙이며 강진의 복부를 가격했다.

“아우…….”

버틴다지만 상대도 라이트 헤비급 주먹이다.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내가 스텝만 있었더라도.’

이건 그가 프로로 나가도 고쳐야 하는 거다. 인앤아웃 스텝을 잘 밟아야 일류 선수가 될 수 있다.

강진은 그렇게 더 얻어맞고 1라운드를 보내었다. 3분이 마치 30분같이 느껴지는 긴 시간.

2라운드 공이 올리자,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호~, 이놈 봐라?”

그의 선배는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능숙하게 뒤로 빠지고 있었다. 크게 휘두른 주먹은 가드로 막거나 몸을 링 줄에 튕겨 충격을 흡수했고, 여차하면 클린치로 무마했다.

“에라이!”

강진은 짜증을 내면서 그를 억지로 밀쳐냈지만, 근본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젠장. 스텝……. 내가 부상만 안 당했더라도.’

알고도 못 막음

 

지은이 : 허머MK2

제작일 : 2018.06.21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하운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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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23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