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나는 재수가 없었다
사람에게는 모두 다 행운이 있습니다만,
그 행운이 꼭 좋은 방향으로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수 대통! 이라고 생각했더니
그게 불운이 되는 일도 허다하고 말이죠.
그러니 비급 같은 거 주웠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결국 그게 화가 되니까요.
-강호야사 제갈곡의 사촌인 제갈야가 한 명언-
“이런, 신발!”
청운. 그는 나이 열여섯의 점소이 일을 하는 소년이다.
그저 그런 객잔인 진가 객잔에서 일하는 청운은 사실 말하자면 별 능력도 없고, 평생 점소이나 할 팔자인 그런 소년이었다.
고아로 유리걸식하며 이런저런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고, 2년 전 진가 객잔에 취직하여 지금은 점소이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 진가 객잔은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깔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객잔만의 뭔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아 마을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술을 먹으러 오는 그저 그런 곳이다.
청운은 이곳에서 2년을 일했고, 사실 그 생활에 그렇게 큰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기 때문에 계속 이 객잔에서 일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청운이 요즘에 와서 욕을 달고 사는데 그 이유는 아주 남달랐다.
“하필이면 기연이 걸려도 이런 게 걸리냐!”
청운이 욕을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의 앞에 놓여진 꼬질꼬질하게 낡은 한 권의 책 때문이다.
책을 노려보던 청운은 검은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리며 부여잡았다.
이목구비는 제대로 잡혀 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잘생긴 이 소년을 본 사람은 누구든 꽤 똑똑해 보이는 녀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다가 몸도 호리호리하게 상당히 잘 빠져 있고, 앞으로 잘 성장한다면 절세미공자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잘생긴 녀석이 될 여지가 높았다.
“으으윽! 내용은 다 외웠지만…….”
소년 청운은 그제 쉬는 날, 진가 객잔의 딸내미의 부탁을 동반한 협박을 받고 뒷산에 놀러 나갔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숨바꼭질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하던 도중,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진가 객잔의 딸내미 진소현을 찾다가 넘어져 떨어진 토굴 같은 곳에서 좌정한 채 죽어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한 것이다.
기연!
청운은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기연임을 간파하고 천지신명에게 절까지 했으나, 그것이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연단독공.
그것이 바로 이 신공의 이름이다. 그 유명한 독공이라는 무공인 것이다.
청운은 독공의 사이함과 강력함에 대해서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기에 가히 최고다, 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이 섣부른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랬다. 그것은 그야말로 섣부른 기쁨.
신공절학을 손에 넣었지만 소년에게는 넘어서야 하는 크나큰 벽이 있었다.
‘비급을 보고 무공을 익힌다니 말도 안 돼!’라는 식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이야기.
너무나도 비정하고 처참해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비참하고 슬프디슬픈 이야기.
돈… 이… 없… 어.
세상은 너무나도 비정하지 않은가!
소년은 몰랐을 것이다. 다른 무공들은 그나마 돈이 안 들고 몸으로 때울 수 있지만, 이 독공만은 돈이 든다는 것을!
그렇다. 독공은 돈이 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아, 이 얼마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비정한 이야기인가. 기껏 신공절학의 비급서를 손에 넣었건만.
게다가 아주, 아주 친절하게 비급은 주석과 해석, 기타 등등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보고 바로 익힐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해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 청운은 이 비급 연단독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
왜냐고? 돈이 없으니까.
그것이 지금 소년을 분노로 타오르게 하는 원인이었다.
돈이 없어 신공절학을 익히지 못하다니, 이런 개뼈다귀 같은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강호의 여러 전설과 이야기를 보라! 무협 소설이라 불리는 책들을 보라!
주인공들은 모두 치열한 삶 속에서 기연을 얻더라도 지독한 인내와 노력으로 신공을 대성하여 적을 무찌른다.
소년 청운은 그렇게 절대무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좀 행세할 수 있고 편안하게 사는 것 정도는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각종 무협 소설을 보면 주인공들은 모두 죽음을 넘나드는 고생을 하지 않던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들이 하는 모든 고련과 고생은 돈이 안 든단 말이다! 그렇다! 그들의 시련과 고생, 수련은 모두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온몸에 피멍이 들든,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칼질을 당하든 모두 다 몸으로 때운다.
물론 가끔가다 영약을 주워 먹는 기연식 무협 소설이 있다만, 그런 것은 논외로 쳐야 할 것이다.
아아아! 비정강호라 했던가! 청운은 그 말을 지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돈이 없어 독공을 수련 못 해.’
이 비운의 상황이 그 얼마나 뼈저리단 말인가!
왜! 왜! 권장각, 심지어는 섭혼술에 채음보양까지 종류도 다양한 무공들 중에서 하필이면 이 독공인가!
아아, 슬프도다.
“이런, 제기랄! 신발! 크아아악!”
청운이 발광을 했다.
연단독공은 신공절학답게 돈 역시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는, 그야말로 돈 잡아먹는 괴물이다.
연단독공은 삼엽독초라 불리는 독을 1백 근이나 끓인 액체를 졸이고 졸여서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보통이라면 ‘그렇군’ 하고 넘어가겠지만 문제는 바로 그 삼엽독초다.
이 삼엽독초는 일종의 마비독으로, 과거 화타가 마비산이라 불리는 마취제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던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다.
여하튼 이게 좀 유명한 데다, 채취되는 양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수량은 부족한데 수요는 많은, 말 그대로 비쌀 수밖에 없는 그런 독초이자 약초인 것이다.
그것을 한 근도 아니고 1백 근?
청운이 풍운의 꿈을 안고 약방에 가서 문의해보았더니 은자로 1백 냥이나 가져오랍신다.
한 근에 은자 한 냥이란 말이다.
아아! 비정강호여! 은자 1백 냥이라니!
청운에게 그런 돈이 있었다면 진작 주루를 차리고, 주인으로 잘 먹고 잘살았을 것이다.
지금 청운이 가진 돈이라고 해봤자 지난 2년간 뼈 빠지게 모은 은자 한 냥이 전 재산!
청운은 그래서 열불이 나고 화딱지가 나고 있었다. 절세신공을 얻으면 뭘 하나! 익힐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첫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몸으로 때우는 부분이 조금 나타난다. 게다가 첫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기초 운기법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에 이르기를, 이 기초 내공심법은 말 그대로 기초로서 독공의 시작을 열기 위해 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 죽어라 파봤자 1백 년을 익히면 10년 정도의 내력밖에는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절망하지 않으랴!
피를 토하는 고통, 온몸을 난도질하는 고문도 감내할 수 있는 각오가 선 청운이지만, 은자 1백 냥은 그가 스스로를 노예로 팔아도 마련할 수 없는 거금이었다.
가난한 농가에서는 아이들의 입을 줄이기 위해 은자 5냥, 혹은 10냥을 받고 아이들을 팔기도 한다는 것 정도는 청운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팔려도 겨우 은자 다섯에서 10냥 정도의 수준이다.
그렇다고 강도짓을 한다고 해서 은자 1백 냥을 모을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은자를 1백 냥이나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정도 거금이라면 부자들 대부분이 전표라는 것으로 들고 다닌다.
그런데 그 전표가 또 신분증명서를 첨부해야 현금화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부자들이나 쓸 수 있는 돈이다.
결국 청운은 분노에 불타오르며 책을 구타하기에 이르렀고, 안 그래도 낡아빠진 책은 그의 손아귀에서 걸레 조각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내용은 아예 외우다 못해 머릿속에 쑤셔 박고 있지만 말이다. 그 두터운 것을 다 외운 청운도 지독한 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여하튼 걸레 조각같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남아 있는 연단독공.
그것은 그야말로 절세의 신공절학으로, 연단가들이 불사의 비약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의 몸을 연단로(鍊丹爐)로 삼아 독초를 섭취하고 내공을 쌓아 내공의 불길로 독기와 독초를 연단하여, 마치 용이 여의주를 만드는 것과 같이 몸 안에 독의 결정인 삼라진독단을 만들어내는 희대의 신공이다.
일단 삼라진독단이 완성되면 마르지 않는 내력을 가지게 되며, 그 독으로 일수에 1백 장 안의 생명을 모두 죽여 버릴 수 있다.
또한 몸은 도검불침(刀劍不侵)이 되며 추위와 더움을 느끼지 않고, 그 근력은 내력을 쓰지 않고도 일격에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강력함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러한 경지까지 올랐던 인물은 이 연단독공을 익혔던 자들 중에서도 거의 없어, 손으로 꼽을 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청운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돈이 있었고, 청운은 돈이 없다는 것.
“으아아악! 허억! 허억!”
청운은 화를 내다가 지쳐서 숨을 몰아쉬더니 책을 보관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이미 겉표지에 글자는 없다. 꼬질꼬질한 데다, 안의 글자도 흐릿하니 누가 슬쩍 봐서는 그냥 낙서장 같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청운은 자신의 월급을 보관하는 작은 상자에 책을 집어넣었다.
은자 한 냥이면 아끼고 아껴서 청운 혼자 6달은 먹고살 수 있는 큰돈이다. 그 은자 한 냥과 책이 덩그러니 들어 있는 상자는 청운의 침대 밑에 놓여졌다.
어떤 멍청한 도둑이라도 하인이 머무는 이런 작은 객사로 찾아와 도둑질할 놈은 없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청운은 그냥 그렇게 돈과 비급을 보관했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는 말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이 객잔의 하인 놈의 상자에는 돈이 많을 것이다! 혹은 이 하인 놈은 비급을 숨기고 있어!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아… 제길!”
“청운이 이놈! 뭘 그리 꾸물거리는 게냐!”
아래층에서부터 큰 호통이 터져 나왔다. 청운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예! 곧 내려갑니다요!”
진가 객잔의 주인 진소천의 말에 얼른 대답한 청운은 상자를 침대 밑에 집어넣고는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신공절학을 손에 넣고 그 기초 심법을 배워 익히고 있다지만, 그의 일상은 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곧 점심이다! 오늘은 예약 손님들이 있단 말이다!”
진소천은 이 객잔의 주인이자 주방장이다. 돈 계산을 하는 곳에는 그의 부인인 정연홍이 앉아 있고, 정연홍과 진소천의 딸인 진소현은 언제나 어디론가 놀러 나가고는 했다.
“예입!”
청운도 분명 어제 예약 손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것도 무려 15명이나.
사실 말하자면 이 진가 객잔은 그렇게 크지도 않거니와 방이 많은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요리가 맛있어서 ‘오우! 이것은 그 유명한 요리왕 비룡에 버금가는 요리구나!’ 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요리에, 적당한 술에, 방도 적당해서 한 번에 20명 정도는 잘 수 있는 객실이 있는 그런 객잔이다.
오죽하면 점소이가 청운 혼자고, 주인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을까?
빈곤지독
지은이 : 성상영
제작일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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