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1
프롤로그
승부는 일방적이었다.
궁사는 허리까지 길게 기른 파란 머리를 휘날리며 숲의 중심에 있는 강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시야의 유지를 위한 공명석을 설치하고는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길잡이’ 포지션에 궁사를 선택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다. 궁사에 가장 어울리는 포지션이라면 역시 사냥꾼이다.
넓은 시야를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을 것도 없겠지만, 궁사는 강력한 한 방의 공격으로 적을 사냥, 전세를 뒤집는 것에 최적화된 직업이다. 화살이라는 소모품을 이용해 전투를 유지하는 궁사가 공명석을 지속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골드가 부족하면 좋은 장비를 살 수 없다. 그것은 강력한 데미지로 적 챔피언을 쓰러트려야 하는 궁사에게 치명적인 문제였다.
특히나 달리아는 명중률이 최하로 꼽히는 챔피언 중 하나로, 화살의 소모가 극심한 만큼 길잡이로는 그다지 좋지 않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화살 하나라도 더 사야 할 마당에 공명석이라니.
그래서다.
다들 처음 그 유저가 달리아를 ‘픽’할 때까지만 해도, 길잡이를 하겠다며 나섰을 때까지만 해도, 값비싼 미스릴 화살(소)와 공명석 네 개만 달랑 들고 숲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이 경기가 길잡이 하나로 인해 이처럼 원사이드 게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과부터 스포일러를 해보자면 이 경기는 명백히 길잡이(달리아, 궁사)의 캐리(carry)였다.
숲을 밝히러 떠난 달리아는 그 길로 다섯 대의 화살을 사용해 두 명의 적을 잡았다. 길잡이와 사냥꾼이었다. 길잡이에 세 발, 사냥꾼에 두 발.
단 한 발도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들어간 화살은 두 유저가 저항할 여지도 없이 단숨에 그 생명을 빼앗았다.
궁사 클래스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화살을 적에게 명중시키기 위해선 높은 조작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OS게임이 PC에서 아케이드로 이식되면서부터 이 장르는 절대적으로 뛰어난 피지컬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누구도 그 세 대의 화살이 모두 명중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프로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깔끔한 실력이었다.
네 개의 공명석이 설치된 위치도 절묘했다. 정확히 적의 침투로를 파악한 공명석은 그대로 적의 전략을 노출시켰다.
경기는 그렇듯 초반부터 이미 결과가 결정되었다. 역전은 꿈도 못 꿨다. 실력의 수준이 다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신촌에 있는 중소 규모 오락실이 개최한 대회였다. 우승 상금은 100만 원밖에 안 되는 작은 대회지만, 그렇다 해도 유저들의 실력이 밑바닥을 맴돌던 건 아니었다. 동네에서 좀 한다는 친구들이 너도 나도 도전해 보겠다며 뛰어들었다.
허나 이 길잡이, 달리아가 포함된 팀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솔직히 달리아와 한 팀을 했던 팀원들조차 놀라고 있었다. 팀원조차 다 구하지 못해 즉석으로 짠 팀이었다.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대회가 계속될수록 모두의 시선이 한 자리로 향했다.
대체 저 달리아를 픽한 게 누구야? 누가 저렇게 대단해?
수군수군 대는 소리와 함께 시선이 닿은 건, 놀랍게도 늘어진 목티를 입고 있는 후줄근한 차림의 여자아이였다. 얼굴은 조금 귀엽게 생겼나? 그래도 너무 수수한데.
시큰둥한 얼굴로 컨트롤러를 움직이고 버튼을 누르는 그 소녀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나 들어갔을까 싶은 어린 얼굴이다.
여자애라고 해서 <문장의 숲>의 고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다만 AOS게임을 하는 여성 유저는 남성 유저에 비해 확연히 그 수가 적다.
그런 와중에 압도적으로 높은 조작 실력을 필요로 하는 달리아의 초고수 플레이어가 여자라니. 솔직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연승 행진을 계속했다.
토너먼트로 치러진 4경기 모두 초반에 승리를 결정지었다. 평균 플레이 타임 20분.
우승 상금 100만 원은 당연히 그녀가 속한 팀의 차지였다.
“50.”
그리고 상금 100만 원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지급받은 뒤에 작은 사건이 터졌다. 여자아이가 대뜸 50만 원을 요구했던 것이다.
사실 그 소녀의 요구는 정당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있던 모두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애가 포함된 팀이 어디였든 분명히 우승을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어쨌건 기본적으로 우승 상금은 똑같이 나눠 갖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고 인간이란 돈 앞에선 좀 더 본능적이 되기 마련이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네가 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우승한 건 아니잖아.”
“그래서 절반을 주는 거잖아. 그래도 팀이었으니까 절반이라도 주는 거야.”
게다가 어린여자애가 대뜸 반말이다. 일단 팀장을 맡았던 남자는 이런 여자애의 반응에 인상을 팍 구겼다.
“야, 꼬맹아. 지금 어따 대고 반말이야?”
“그쪽도 초면에 반말했잖아.”
“그야 넌 딱 봐도…….”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고등학생 아니야?”
“맞아.”
이 꼬맹이가……!?
스물여섯 먹고 이런 여자애는 난생처음이었다. 남자는 이걸 어떻게 때려줄 수도 없고, 대체 어찌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생각 같아선 어른의 위엄을 보여 적당히 약간의 위협이 섞인 훈계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오락실 사장도 상금을 건네준 뒤 이런 소동이 생기자, 어떻게든 중재할 타이밍을 노리는 듯 옆에서 서성였다.
“됐어요. 그만해요. 어린애랑 싸워서 뭘 해요? 어차피 우승할 거라고 생각도 않고 나온 건데. 저 애 말대로 해줘도 난 상관없는데.”
“아, 뭐 저도 별로 상관은 없어요.”
“……나는 좀 아까운데.”
약간의 반대가 없진 않았지만 팀원들이 대부분이 이렇게 나오다 보니 다행히 사태가 커지진 않았다. 여자애도 좀 더 선심을 쓴다는 듯 한마디 툭 뱉었다.
“좋아. 나도 40으로 할게. 그 정도면 됐지?”
주변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그래. 그 정도로 해라. 저 애가 솔직히 니들 다 먹여 살렸다. 그래도 저건 예의가 아니지 않냐? 어린애가 되게 버릇없네. 게임 좀 하면 단가. 그래도 귀엽잖아. 뭐? 저 늘어진 목티가? 패션 꽝인데.
머리가 다 아파왔다.
남자는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곧, 40만 원을 받아 든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락실을 나갔다.
신촌 시내, 중소 규모의 오락실 '펀펀'에서 개최한 문장의 숲(Forest Of Emblem)대회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이었다.
그 후, 사냥꾼 포지션이었던 달리아가 이곳 신촌거리에서 길잡이로 새롭게 조명되며 인기를 얻은 건 이로부터 조금 뒤의 일이다.
허나 달리아가 길잡이로 대세를 타는 일은 없었다. 그만한 조작 실력을 갖춘 사람은 프로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녀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야 이런 막돼먹은 실력과 성격의 여자애가 조용히 묻혔을 리는 없지.
이제부터 그 소녀의, 아니, 어느 한 영혼의 사연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요컨대, 이 이야기는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2
챕터 01 : 봄과 여름
1.
겨울의 끝은 오지 않았다.
그날은 문장의 숲 공식 세계 대회, <명예의 문장>의 예선 경기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의 파란 국제게임센터에서 열린 경기에서 은찬의 팀, ‘파죽지세’는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은찬의 팀 내 포지션은 길잡이. 주 챔프는 셉템. 길잡이에 최적화된 정찰병 챔프였다.
은찬의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전술의 이해도는 높았으나 일단 손이 느렸다. 은찬의 나이도 벌써 스물일곱이다. 게이머로서는 전성기가 지날 무렵이었다.
2년 전 화재 사건으로 다쳤던 오른손도 문제다. 덕분에 은찬은 항상 중요한 순간에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리그에서도 순위는 항상 하위권.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길잡이의 역할에 충실한 정도가 유일한 무기라 할 수 있겠다.
은찬이 속한 파죽지세의 팀원 대부분이 그랬다. 우스갯소리로 불리는 팀의 별명은 노인정이다. 팀의 이름인 파죽지세 역시 승리가 아닌, 패배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팀원 전원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넘는 나이였기 때문에 이제 그만 은퇴하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왔다. 실제로 팀장인 강지환의 경우 이번 대회를 마치고 은퇴를 할 예정이다.
그래, 그런 까닭이었을까. 다들 이번 대회는 잘 해보자며 의욕이 충만했다.
기적처럼 따낸 명예의 문장 티켓이다.
이 자리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팀과 선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져도 간단히 지지는 말자. 최선을 다하자. 멋진 게임을 보이자. 그런 마음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팀원들은 알아챘을까? 아니면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일까?
은찬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경기가 끝날 무렵의 은찬은 분명히 깨달았다. 저항조차 하지 못한 처참한 패배의 끝에 알았다.
팀장인 지환이 팀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였을까?
그저 오늘의 경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다. 지환은 불법 도박에 손을 대고, 게임 조작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기적적인 ‘승리’ 또한 그 같은 조작에 의해서는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이 오른 이 자리가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어쩔 수가 없었어.
그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용서는 할 수 없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은찬도 다를 바가 없었다. 만약, 은찬에게도 그런 제의가 왔다면 그때 은찬은 거절할 수 있었을까?
몸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데 가진 것은 하나 없고. 그렇다고 10년을 게임만 해온 은찬에게 다른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아직까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년 뒤, 또 2년 뒤에는 어떨까?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팀의 뒤풀이 자리에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저 슬쩍 자리를 빼던 지환의 뒷모습을 이렇게 쫓아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바람이 찼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긴 것 같았다. 벌써 3월인데도 여전히 쌀쌀한 영하의 날씨다.
이렇게 허탈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모른 척할 걸 그랬다. 저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지는 지환의 뒷모습에 은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차근차근 떠올려보면, 어쩌면 그 경계가 보일 것도 같았다. 2년 전의 그 사건이 모든 걸 앗아갔다.
동생도 잃었고, 오른손의 감각도 잃었고, 짧았던 전성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로서 이 팀도 끝나겠지.
지환은 명실공히 팀의 구심점이었다. 그나마 프로 팀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온전히 지환의 힘이었다. 스폰서와의 계약도 지환이 은퇴를 할 때까지로 이미 약속되어 있다.
계약이 연장되면 좋겠지만 팀의 성적을 보아서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앞날은 캄캄했다.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 겨울이 끝나는 날은 올까?
2년 전, 그날부터 시작된 겨울은 여전히 끝날 줄 몰랐다.
나이 스물일곱에, 이제 한창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될 나이에 벌써부터 은퇴를 고심해야 한다니.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뒤풀이에서 몇 잔 마시지도 않고 나왔는데 어째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했다.
왠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주변이 빙그르 돌고 몸이 휘청했다. 순간 별 하나 없이 깜깜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내가 왜 하늘을 보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채 해결도 되기 전.
은찬은 머리 뒤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그와 거의 동시였다. 삽시간에 까맣게 암전 된 시야를 끝으로, 은찬은 의식을 잃었다.
어디선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그게 은찬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여름의 숲
지은이 : 비활
제작일 : 2018.1.1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김하영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013-8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