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게이머 오리진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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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프롤로그 – 일상


사람에게는 모두 다른 일상이 있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비슷해 보인다.

개미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지만,

그 무리를 보면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너의 이야기





펑! 콰쾅!

귀를 두드리는 전자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그 기분에 맞춰서 손에 잡힌 마우스를 움직이고, 반대쪽 손으로는 검은 키보드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타다다닥. 따닥. 따닥하는 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들과 어우러져 연주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야! 야! 막아! 힐! 힐!”

내 옆에서 터져 나온 말에 방금 전 느끼던 고양감은 급히 추락해 버렸다.

이 멍청이가 지금 웬 헛소리를 나불거리누?

“내가 힐이 어디 있냐? 피해!”

이 시발 놈은 어떻게 된 게 내가 어택커(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캐릭터)로 키우는 걸 아직도 뇌 속에 처박지를 않고 있는 거냐?

이놈하고 계속 게임을 같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 걸까?

최선입니까? 그런 겁니까?

“으악!”

결국 녀석은 비명을 지르면서 마우스를 탕!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저 멀리의 PC방 사장님의 매서운 눈빛이 등골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 이놈 참.

게임 한두 번 해 보나? 왜 아직도 게임치야? 내 살다 살다 이놈처럼 게임을 못 하는 놈은 정말 보지 못했다.

“야, 나 죽었어.”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를 놈이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로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신선일.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놈.

“이런 일로 정색하지 말아 줄래? 그리고 나 힐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네 뇌는 장식품으로 있니?”

내 타박에 녀석은 머쓱한 건지 표정을 고쳤다. 가느다란 실눈이지만, 키도 제법 크고 몸도 마른데다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스타일이 좋은 꽤 훈남인 녀석을 보노라면 왠지 짜증이 난다.

“네가 전에 하던 겜에서 힐러를 해서 습관이 들어 그렇잖아. 그냥 내가 힐 찍을까?”

힐. HP를 채워주는 마법 스킬. 나는 안 쓰는 것을 자기가 쓰겠다고 나서는 선일이를 보면서 그저 심드렁히 대답해 주었다.

“그러시든가.”

던전 스트라이커. 한게임이라는 게임 회사에서 만들었고, 서비스하는 게임으로 문을 연 지 조금 되어서 요새 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월드 오브 와아아아! 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가즈쿨이라는 오크 캐릭터를 만들어서 놀고 있었는데, 던전 스트라이커가 열리고 나서는 여기 와서 놀고 있는 중으로 요게 꽤나 재미가 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캐릭터가 가진 직업의 스킬 외에도 다른 직업의 스킬을 짬뽕해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랄까?

즉, 여러 스킬을 조합해서 쓸 수 있다는 건데, 이게 참 새콤한 재미를 준다. 음. 잘 만들었어 던전 스트라이커.

“꾸엑~!”

어렵사리 게임 화면 속 몬스터를 마저 처리하고, 선일이 녀석의 시체로 다가가 부활을 시켜 주었다.

이놈은 운동은 잘하면서 게임은 못 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심히 궁금하다.

-5분 남았습니다. 연장하시겠습니까?

스피커에서 시간 다 되었다는 알림이 들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이거 참.

“이거 보스도 못 잡고 뭐 하는 건가 모르겠네. 야, 시간 다 됐다. 가자.”

“미안타.”

“미안하면 좀 잘해. 어째 매번 뒤지는 겨?”

“그게 잘 안 되더라고.”

뒷머리를 긁어대면서 말하는 선일이의 모습에 그저 한숨이 나온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너랑 놀아 주겠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게임에서 로그아웃을 눌러 프로그램을 꺼 버렸다. 의자를 밀고, 컴퓨터 위에 올려둔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알바가 와서는 쓱쓱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피시방의 문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내 몸을 강타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흐아. 덥다. 에어컨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기억도 안 나네.”

“이 정도 가지고 뭐가 덥다고 그래. 네가 근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아니. 더운 걸 덥다고 하는데, 무슨 놈의 근성 타령이야?”

이놈이 나를 어이없게 만들어 주시는구나. 이런 데서 웬 근성을 찾니?

“야야. 헛소리는 그만 하고 슬슬 집에 가기나 해라. 나 학원 갈 시간이야.”

“오냐. 그럼 내일 보자.”

“그랴. 내일 보자.”

선일이가 손을 흔들고는 내가 가는 방향의 반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언제 봐도 늘씬하고 탄탄한 몸을 가진 것이, 어떤 때에는 몹시 부럽다.

저 녀석이 저렇게 생겨서 꽤나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단 말이지? 그러고 보면 여자애들에게 인기는 있는데 누구랑 사귀는 꼴을 본 적이 없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학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학원에 가야 하는 내 신세라니.

아. 싫다.


* * *


누구나 학원에 가는 것은 싫다고 생각할 거다. 나중에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기 싫은 걸 어떻게 하나?

그건 나도 그렇고, 내 친구 놈인 선일이도 그럴 것이고, 나랑 같은 반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사실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한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고, 내년이면 수능을 보아야 하는데, 과연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펼쳐지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컴퓨터만 켜면 나오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메인 화면의 뉴스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는데 이 모든 일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이런 거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하겠냐.

이제 얼마 후면 1학기 기말고사가 있고, 그다음은 여름 방학이다. 여름 방학이 되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지.

그때에는 지금처럼 조금씩 던스(던전 스크라이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열렙을 할 수 있을 거야.

암. 그래야 하고 말굽쇼.

“다녀왔습니다.”

“왔니?”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벽에 걸린 시계다. 시계는 현재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구나. 정말 아파.

“밥은 먹었고?”

“학원 근처에서 먹었어.”

울 엄마인 한정숙 여사. 엄마의 나이도 이제 마흔이 되었는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스물 중반 정도로만 보인다.

피부도 탱탱한데다가, 꾸미고 나가면 그저 예쁜 누나처럼 보이는 사람이 바로 울 엄마이시다.

울 아빠는 어떻게 저런 미녀와 결혼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하고 이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것이란 말이더냐?

모르겠다.

이것이 유전자의 비밀일까 싶기도 하고.

“엄마는 아들이 왔으면 반겨주기 좀 하면 안 돼? TV에서 고개를 안 돌리네.”

“기다려 봐. 지금 친동생과의 금단의 연애에 대해서 까발려지는 순간이야.”

“네이.”

막장 드라마에 푹 빠진 엄마를 누가 말리겠소? 외국출장 나가 있는 아빠가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얼굴을 본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네.

아버지. 빨리 돌아와요. 이러다가 엄마가 완전히 막장 드라마 마니아가 될지도 모른다니까요.

“저 씻고 잘게요.”

“냉장고에서 녹즙 꺼내 먹어.”

“그거 싫은데…….”

“그거 먹어야 공부에 도움이 된다더라. 비싼 돈 주고 산 거니까 빨리 먹어.”

“네이네이.”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냉장고로 얌전히 걸어가는 나 님. 녹즙을 꺼내서 마시면서 욕실로 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최근 유행하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몸을 대충대충 씻고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TV 드라마가 끝난 것인지 엄마가 거실 식탁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 계셨다.

“너 게임하지 말고 빨리 자. 알았어?”

“게임도 못 하면 어찌 살라고?”

“학원 가기 전에 1시간 한 거 다 안다.”

“그거 가지고 턱없이 부족하다니까.”

“어쨌든 좀 있다가 확인해 볼 테니까. 어서 자기나 해.”

“아따. 그놈의 잔소리 좀 그만 하세요.”

“이게…….”

“으힛!”

엄마가 쌍심지를 치켜뜨는 것을 본 순간 내 다리는 나도 모르게 질풍 스킬을 사용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쿠당탕.

“엇차.”

내 방. 침대 하나에 컴퓨터 책상과 학업용 책상이 하나씩. 그리고 벽 옆에는 책꽂이가 하나 있는 그저 그런 방.

방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서 앉았다. 샤워하고 왔더니 몸이 아주 축 늘어지는구나.

지잉.

컴퓨터를 켜고, 로딩이 되는 동안에 잠시 멍하니 검은색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익숙한 영어가 지나가고, 로딩 화면이 나왔다.

학교에 가고, 학원을 간다. 시험을 보고, 시험 준비를 한다. PC방에 가고, 집에서도 게임을 한다.

매일매일.

어찌 보면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가 지금까지의 내 삶이었다. 달라진 거라면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간다는 것 정도.

갑갑한 느낌도 들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바꿀 수도 없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음. 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벅벅.

머리를 긁고서 완전히 가동된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그래,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몰라도 좋을지 모르지.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어쨌든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하면 된다고.

어차피 고등학교 때 뭘 결정해 보려고 해도, 결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라서, 그 말에 공감이 간다.

둥~ 둥! 둥! 둥!

던전 스트라이커의 오프닝 동영상을 보며 마우스를 쥐었다.

-행복하십니까?

“응?”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잠시 게임에서 눈을 떼고, 귀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주위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선일이 놈은 들어와 있으려나?”

11시에 만나기로 이미 약속을 해 놨다. 이놈이 들어와 있어야 할 텐데. 선일이네 할아버지께서 요놈이 게임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시다 보니 들어오지 못할 때가 잦긴 하다.

쩝쩝.

그러면 나 먼저 시작해 볼까?

이렇게 뇌를 쉬어 주지 않으면, 내일 학교 공부도 제대로 안되니까 열나게 해 주겠어!

&머리 위의 퀘스트


인생에 목표가 있다면,

더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현자 모르오





따르릉! 따르릉!

머리는 여기저기 삐쳐 있고, 옷은 반쯤 벗은 것인지 입은 것인지 모르게 말려 올라가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의 옆에서 스마트폰이 알람을 울려 댔다.

더듬더듬.

알람 때문에 손을 든 그는 장님처럼 손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으려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더듬던 손은 결국 목표로 하였던 스마트폰을 찾아냈고, 알람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는 침묵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마치 시체처럼, 조용하게 계속 잠을 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는 퍽 소리와 함께 배에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큰 고통 때문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면서 두 눈을 번쩍 떴다.

더 게이머 오리진


지은이 : 성상영

제작일 : 2018.04.0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임준현

표지 : 장은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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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0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