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대장간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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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제 1장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세상을 얼마나 둘러볼 수 있을까.

사람이 어릴 때는 부모의 품을 세상의 전부로 안다.

어느 정도 자라 아이가 되면 넓은 세상에 호기심을 품는다.

그러다 더 성장해 청년이 되면 그 세상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정복하려 든다.

나의 인생은 어느 쪽이었더라.

천마(天魔) 마화운은 자신의 삶을 돌아 봤다.

이미 그의 목숨은 끝나가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져서인지 주마등처럼 기억이 떠돌았다.

남들이 다 가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적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세뇌한 후 납치한 마교(魔敎)에 대한 복수와 분노가 그의 인생 전부였다. 절대적 무공을 익힌 덕에 무림의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

‘한 때는 천하가 좁아 보였지. 세상 모든 사람 중 무서울 것 하나 없었고, 가지 못할 곳도 없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내 시신이 눕혀질 무덤자리 뿐이겠구나.’

죽음을 앞둔 지금 강호를 호령한 천하제일인의 이름은 중요치 않았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과 같았다.

눈을 감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죽는구나. 죽음 뒤엔 무엇이 있을까. 영원한 안식일까. 아니면 사후의 세계일까. 생전에 쌓은 업(業)으로 죽은 뒤 심판을 받는다면 난 어떻게 될까. 아니. 그도 아니라……. 그도 아니면…….’

생각이 다 이어지지 못했다.

무의식의 저편에 몸을 맡기며 마화운은 이것이 죽음임을 실감했다.



* * *



그렇게 깊은 잠에 들듯이 의식이 끊어졌다.

완전히 잠든 의식이 돌아온 건 주변의 소리 탓이었다.

쿵! 쿵! 쿵!

고막을 찢을 듯이 큰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다.

그 소리에 심장이 떨렸다.

심장이라니. 난 아직 살아있나 보다.

마화운은 눈을 뜨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소리뿐만이 아녔다.

멀리서 웅웅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 사람의 말소리였다.

누군가 나를 발견했나?

혹시 적인가?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몸을 묶은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 죽어가던 참이니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이상하게도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내상이나 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앞 등불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듯이 죽음을 앞에 두고 몸이 운기를 되찾기라도 한 걸까?

이리저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없다. 마화운은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렇지만 갑작스레 들어온 환한 빛에 눈이 부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 보인 주변은 온통 빛이었다.

설마 죽은 후의 사후세계라 눈앞에 염라대왕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눈을 뜬 마화운의 눈앞엔 처음 보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이방인인지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이목구비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색목인을 보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지만 넓은 중원에서 없을 일도 아녔다.

그녀는 마화운이 눈을 뜨자 무척이나 기쁜 표정으로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환호했다.

아마 이 여성이 나를 간병했나 보군.

마화운은 예의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우우.”

뭐, 뭐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나는 어느새 발음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많이 다쳤던 것인가.

하긴 생사의 기로에 있었고 죽음에 가까워졌으니 기력이 없을 만도 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힘내서 마화운은 호흡을 가다듬고 인사를 건넸다.

“우우-우!”

실패다. 엄청난 실패.

머릿속에 있던 문장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럼에도 자신 앞의 중년 여성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라 답답할 뿐이다.

아니, 그보다 잠시만.

방금 전의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맞나?

마화운이 기억하는 자신의 목소리는 굳이 따지면 낮은 편이다. 어디 가서 좋은 목소리라고 칭찬을 들은 적도 있는 중후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얼핏 들은 목소리는, 마치 어린 아이……. 아니 갓난아기의 목소리 같았다.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달리 눈앞의 여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마화운을 바라봤다. 전혀 모르는 여성인데도 이상하게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쳤다.

연심은 아닌 듯한데.

마화운이 생각하는 동안 그녀는 그를 홀로 둔 채 나가 버렸다.

아무도 없어진 지금을 틈타 마화운은 다시 한 번 더 말을 해 보았다.

“아부부.”

“우움.”

정말로 영락없는 어린 아이의 옹알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다친 것인가?

마화운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얼마나 심한 부상이었는지 이불을 걷어 몸을 보려 팔을 움직였지만 팔조차 잘 가누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일도 무척 힘이 들었다.

큰일은 큰일이군. 명줄이 조금 이어졌을 뿐 여전히 다 죽어가는 몸임에 틀림없어.

마화운이 심각한 생각을 하는 동안 문이 열리더니 아까전의 그 여성이 다른 남성과 같이 들어왔다. 남성 역시 색목인으로 외국인이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을 듯하군…….

그는 꽤나 다부진 인상으로 나이 역시 중년에 접어든 듯 보였다. 힘 있어 보이는 체격에는 세월의 연륜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 옷 아래로 보이는 팔뚝 역시 단련된 풍채가 있었다. 오래 무공을 익힌 마화운이 봐도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몸이 아녔다.

이 두 사람은 아마 부부인 듯했다. 서로 다정히 팔짱을 낀 채 기쁜 표정으로 마화운을 바라보았다. 이곳도 아마 이 외국인 부부의 집이겠지. 마화운은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남성 쪽이 마화운을 양손으로 가볍게 들었다. 마화운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지금 기력이 쇠해졌다고 해도 이토록 가볍게 타인에게 들릴 정돈 아니었다. 아니면 이자가 그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란 말인가?

마화운은 자신을 들어 올린 채 웃으며 무어라 이국의 언어로 말하는 남성을 바라봤다. 남성은 웃고 있었다. 마화운은 자신을 내려달라 발버둥치려 했다.

그리고 그제야 마화운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고개를 가눌 힘조차 없어서 보지 못한 마화운의 몸은

한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갓난아기의 몸이었다.

설마 이건.

혹시 내가 환생을 한 것인가?

너무 놀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환생.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윤회해 다시 다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극락에 간다고 말하는 종교도 있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는 종교도 있다. 죄의 무게에 따라서 누군가는 동물로 태어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니.

그렇다면 난 정말로 이 아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인가? 그것도 원래의 기억을 가진 채?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 인생이라고?

옛날 어느 고사엔 꿈에서 나비가 되는 경험을 한 현인이 나온다. 그 꿈 동안 그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고 나비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깨고 보니 자신이 인간이라 과연 나비와 인간 어느 쪽이 꿈인지를 고심했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 이 상황도 꿈이 아닐까?

마화운은 황당했다.

혹시 원래 아기들은 태어날 때 어느 정도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자라나면서 사라지는 과정을 겪어 자연스럽게 전생을 잊는 거지.

차라리 그랬다면 좋겠군.

지금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지 혼란스러우니 말이야.

마화운이 당황할 사이도 없이 두 부부는 마화운을 안고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아들을 순 없는 말이지만 몇 번이나 연속해 반복되는 단어가 있었다.

엄마, 혹은 아빠라는 단어인가?

아니면 다시 태어난 이 몸의 이름이겠지.

가만히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정과 기대가 보였다. 알아들을 순 없어도 나에 대한 마음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나이는 얼핏 봐도 중년이다. 이 방에 다른 아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어렵게 낳은 늦둥이거나, 아니면 막내일 듯했다. 어느 쪽이건 부모는 사랑을 쏟아주고 있었다.

부모의 사랑이라…….

원래의 삶에선 다 누리지 못했던 가치였다.

다시 태어나고서야 가지게 되다니.

마화운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졌다.

내가 평범한 아이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는 자신의 부모에게 괜히 이상한 걱정이나 심려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보통의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한 번 태어나 이미 정신은 어른의 것이기에 깊은 사고가 가능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처럼 행동하려면 어찌해야 하지.

그의 걱정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린 아기의 몸은 금세 피로해져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 * *



이 집에서 지낸지도 며칠이 지났다. 아니지. 이 세상에 마화운이 태어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마화운은 그 며칠간 아기답게 하루의 대다수를 잠으로 보냈다. 그동안 몇 가지 안 사실이 있다.

우선 이곳은 중원과는 전혀 다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마화운이 책으로 본 서역의 나라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중원에서 나고 자란 마화운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일 투성이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들었던 큰 번개의 소리는 대장간의 소리였다.

추측하건대 그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그렇지만 무공을 연마한 마화운이 보기에도 아버지의 몸은 꽤 단련되어 있었다. 대장장이뿐만이 아니라 한때는 무술을 연마했던 육체다.

계속 일하는 소리가 들려오니 부유하진 못해도 배를 곯지는 않겠어.

환생한 자체로도 운이 좋지만 부모님 운에 대해선 꽤 좋은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 전쟁이나 싸움이 있는 곳에 태어난 아이라면 어른으로 자라나기 전에 죽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 부분에서 이 가정은 좋은 가정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도 좋아 보였고 아버지는 부지런하며 어머니는 다정했다.

이 집엔 가끔 오는 다른 어른이 몇 더 있었다. 아직 청년으로 보이는 남성들이었다. 처음엔 가족인가 했지만 행동에서 아버지의 부하직원, 혹은 제자 정도로 보였다. 가끔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고 꾸짖음도 들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보통의 여성과는 달리 건장한 점을 봤을 때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듯했다. 가끔 보이는 방 안에 있던 무구들은 장식품이 아닌 듯했다.

아버지의 몸에 있는 상처 또한 단순히 대장장이의 상처로 보긴 힘들었다. 한때는 무구를 잡고 싸웠던 사람이 은퇴 후 직업을 따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 중원에서 나고 자란 어른인 마화운의 추측이었다.

직접 물어보지 못하니 아쉽군.

나중에 더 자라면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겠지.

천마의 대장간


지은이 : 세린sr

제작일 : 2018.02.0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장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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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9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