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권마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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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도사와 소년




산이 끊임없이 이어진 모습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산 파도를 잇는 조그만 산길을 따라 스무 명의 도사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때 이른 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도사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오싹한 느낌에 도사들은 득라의(得羅衣)를 여미며 고개를 움츠렸다.

문득 선두에 선 중년의 도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도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어깨엔 끝없이 잔경련이 일고 있었다.

“화산은 마교와의 전쟁에 큰 희생을 치렀는데, 돌아온 것은 강호의 냉대뿐인가? 세상의 인심이란 정말 덧없구나.”

“사형.”

“강해질 것이다. 두 번 다시 세상이 화산을 우습게 볼 수 없게.”

중년 도사의 읊조림엔 강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그를 따르던 도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부러져라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 역시 중년 도사와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오직 단 한 명, 청수한 모습의 중년 도사만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량수불! 사형께서 독을 품었구나.’

일행의 선두에서 오싹한 기운을 발산하는 중년 도사의 도명은 현천, 구대문파 중 하나인 대화산파의 장문인이란 지고한 신분의 소유자였다.

그런 현천 진인이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가 향하는 곳으로 화산은 움직일 것이다.

‘이제 화산은 어디로 갈 것인가?’

청수한 외모의 도사, 현소 진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쉴 때였다.

“저기 연기가 납니다.”

문득 들린 음성이 현천 진인과 현소 진인의 상념을 일깨웠다.

바로 앞에 있는 언덕 너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릿한 냄새에 도사들의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혈향?’

“가 보자꾸나.”

후각을 자극하는 혈향에 현천 진인이 애써 분노를 털어 내며 말했다.

도사들은 서둘러 언덕을 넘었다. 그러자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졌다.

“으음!”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그들은 말을 잃었다.

조그만 마을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대략 서른 채 정도의 집들이 불타거나 이미 재가 되어 무너져 있었고, 거리엔 사람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무량수불! 대체 무슨 일이…….”

“도적 떼의 습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곳곳에서 도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럴 수가!”

현소 진인의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무량수불! 마교가 무너지니 이번엔 도적 떼가 창궐하는구나. 이 이일을 어찌할꼬.’

도사들이 흩어져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삼십여 가구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잔악한 놈들이구나. 어찌 죄 없는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원시천존이시여. 부디 이들을 굽어살피옵소서.”

도사들이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 때 현소 진인은 희미한 신음성을 들었다. 신음성은 너무나 작아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으음!”

하지만 다시 한 번 신음성을 듣는 순간 현소 진인은 자신이 들은 것이 환청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냐?”

현소 진인은 환청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예전에는 일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였을 곳, 하지만 이제는 불타고 무너져 잔해만 남은 폐허 속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현소 진인은 서둘러 잔해를 뒤졌다. 반쯤 불탄 기둥을 치우고 잿더미를 손으로 헤집었다.

“사제, 왜 그러는가?”

“사숙! 대체…….”

“이 안에 생존자가 있습니다.”

현소 진인의 말에 젊은 도사들이 합세해서 잔해를 치웠다.

잔해를 반쯤 치웠을까? 불에 반쯤 탄 남자의 시신이 잿더미 속에서 모습을 보였다.

허리엔 거치도를 차고,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를 입고 있는 남자의 시신에 현소 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적인가?”

한눈에 봐도 이곳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풍채였다. 주먹에 박인 굳은살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현소 진인이 도적의 시신에 손을 갖다 댔다. 산 자의 온기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사제가 착각을 한 모양이군. 이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런데 도적이 왜 죽었지? 마을 사람들 중에 무공을 익힌 이가 있었나?”

현천 진인을 비롯해 현소 진인의 사형제들이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의문을 풀어 주지 못했다.

그때였다.

“으음!”

또다시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현소 진인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었다.

“설마?”

현소 진인이 급히 도적의 시신을 뒤집었다.

잿더미에 노출되어 불에 탄 등 쪽과 달리 도적의 앞면은 그나마 멀쩡했다. 도적의 시신을 바라보는 도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적의 목은 마치 맹수가 물어뜯은 것처럼 살점이 뜯겨져 나가 성대가 환히 드러나 있었다. 목의 상처가 사인인 듯했다. 그러나 도사들이 놀란 것은 도적의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도적이 엎쳐 있던 자리 밑에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깔려 있었다. 단지 도적의 육중한 몸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적들에게 당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소년의 팔과 다리는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다. 보기에도 끔찍한 상처가 소년이 어떤 참극을 겪었는지 절로 떠올리게 했다.

“허!”

“무량수불!”

그 처참한 모습에 도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터트리거나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이제껏 죽은 듯 눈만 감고 있던 소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

모든 것을 잃은 공허한 눈빛과 그 안에 담긴 처절한 살기에 현소 진인조차 움찔했다.

“아이야!”

현소 진인이 안쓰러운 마음에 소년에게 손을 뻗을 때였다. 소년이 힘들게 고개를 돌려 입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겨우 뱉었다.

툭!

주먹만 한 무언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새빨갛게 짓이겨진 물체는 분명 누군가의 살점이었다.

“저, 저?”

지독한 정적이 화산파 도사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1화 1장. 화산(華山)에도 봄은 찾아온다(1)




이제 겨우 십육칠 세로 보이는 소년이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마에 질끈 동여맨 천 아래 자리한 굵은 눈썹, 그 아래 자리 잡은 차갑고 서늘한 눈동자와 굳게 다문 입술이 그가 무척이나 고집스러운 성격이란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소년이 문득 고개를 들어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마치 검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암봉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활짝 만개한 연꽃처럼 자리한 암봉들. 그런 외향 때문에 가장 높은 봉우리에 연화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화봉(蓮花峰), 구대문파 중의 하나인 화산파가 자리를 잡은 곳이다. 정확히는 화산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옥지와 상궁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사람들은 연화봉을 화산파와 동일시했다.

무당파가 무당산 정상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화산파는 화산 전체에 고루 퍼져 있었다.

화산파 무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진무궁(眞武宮)은 운대봉 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금천궁(金天宮), 보현궁(寶玄宮), 영보궁(靈寶宮) 등의 중지는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나마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화산 초입에 있는 옥천원(玉泉院)과 중턱에 있는 태평궁(太平宮) 정도였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도 옥천원이 한계였다. 그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화산파의 진실 된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후욱!”

소년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소년이 오르고 있는 계단은 백척협(百尺峡)이라 부르는 절벽 사이에 난 조그만 돌계단이었다.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백척협은 비좁고 수직에 가까워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런 길이 거의 백 척이나 이어져 있어서 이름 또한 백척협이었다.

백척협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삼백칠십 개의 돌계단을 올라와야 했다. 천척당(千尺幢)이라 불리는 이 수직에 가까운 길은 거칠고 험하기로 천하에 악명이 자자했다.

무공을 극성으로 익힌 무인들도 올라가기 힘든 길을 소년은 이를 악물고 오르고 있었다. 마치 쇠뭉치를 단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전신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안색은 창백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 고동쳤다.

계단 하나를 오르는 것이 죽기보다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소년은 힘들다 말하거나, 쉬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계단을 오를 때였다. 갑자기 그의 왼쪽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소년은 잠시 계단을 오르는 것을 멈추고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다리보다 얇으면서도 살짝 휘어져 있었다. 무릎 아래서 휘어져 있기에 제대로 된 힘을 줄 수도 없고, 정상적으로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소년은 발을 약간씩 절 수밖에 없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무공을 익히는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소년은 그런 결함을 안고서 매일같이 화산 초입에 있는 옥천원과 정상을 왕복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고수들도 힘겨워 하는 그 길을.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소년은 이를 악물고 다시 산을 올랐다.

육체는 기력이 다하고 두 다리는 끝없이 후들거렸지만 소년의 시선은 화산 정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년은 화산 정상을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백척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백척협을 벗어났다고 해서 화산의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목적지의 절반 정도 온 것에 불과했다.

소년은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포룡령 너머 연화봉이 보였다. 옥지와 상궁이 있는 화산파의 상징 같은 곳. 그러나 소년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소년은 반대편에 있는 운대봉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화봉이라 불리는 서봉을 비롯해 조양대라 불리는 동봉, 낙안봉이라 불리는 남봉이 한곳에 모여 있었지만, 운대봉은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년의 이마로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특히 정상적이지 못한 왼쪽 다리가 아팠다.

허리와 다리 근육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뼈마디가 정으로 쪼는 것처럼 고통을 호소했다. 폐는 조금이라도 더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확장될 대로 확장됐고, 심장은 혈액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미친 듯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소년은 운대봉 근처의 수풀로 들어갔다. 수풀 너머에 조그만 소로가 있었다. 밖에서 보았다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로는 은밀했다.

소로를 따라 한참을 걷자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자리를 잡은 조그만 전각이 나타났다. 낡은 전각 앞에는 작은 평상이 있었는데, 평상 위에는 중년의 도사가 앉아 있었다.

도사는 몇 번이나 기웠는지 모를, 누더기가 다 된 득라의를 입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화산의 풍경을 바라보던 도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소년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도사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또 산 밑에 다녀온 것이냐?”

“사부님.”

“그런다고 해서 다리가 온전히 낫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느냐? 아니지,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들을 네가 아니지. 그랬으면 진즉에 그만뒀겠지.”

지난 오 년 동안 소년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화산을 오르내렸다. 멀쩡한 사람도 화산을 오르려면 꼬박 반나절이 소요됐다.

하물며 소년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산을 올랐다.

처음 소년이 화산을 오르는 데 사흘이 걸렸다. 마음은 이미 정상에 도착해 있었지만, 소년의 두 다리는 의지를 따라 주지 못했다.

특히 뒤틀리고 근육이 상한 왼쪽 다리는 소년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거나, 쉬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번도 쉬지 않고 천천히 산을 올랐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소년은 거의 빈사상태였다.

만일 도사가 제때 구명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만큼 소년의 상태는 위태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쯤에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산을 올랐다. 그 의지가 하도 확고해서 도사는 이제까지 소년이 하는 모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소년은 원기를 회복해 갔다. 볼품없이 말랐던 육체에도 근육이란 것이 붙었다. 오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제법 빠르게 화산을 오를 근력과 심폐 능력을 갖게 되었다.

“휴! 이리 오너라.”

“사부님, 이젠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으니 이리 오거라.”

도사의 말에 소년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평상에 앉았다. 그러자 도사가 앙상한 두 손을 뻗어 소년의 양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으음!”

소년의 입술을 비집고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사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우악스러운 그의 손길에 다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신 시원한 느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찌 그리 무모하누. 그렇게까지 해서 상승의 무공을 얻고 싶은 것이냐?”

“죄송해요, 사부님.”

“무량수불! 네가 죄송할 게 무에 있겠느냐? 이 무능한 사부가 너에게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도사의 자책 어린 말에 소년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소년에게 사부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다 죽어 가는 그를 구해 주고 치료해 줬다. 그리고 제자로 거둬 주었다. 사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할 수 없었다.

“호야!”

“예!”

“너는……. 아니다.”

도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도사의 도명은 현소, 화산파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는 소년의 이름은 담호. 오 년 전 도적 떼의 습격을 받은 마을에서 구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모두가 담호의 상처를 보고 포기했다. 하지만 단 한 명, 현소 진인은 달랐다.

그는 사지가 부러져 기식이 엄엄한 담호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의원은 아니었지만, 담호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늘의 도움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담호는 살아났다. 하지만 상처의 후유증으로 왼발을 절게 되었다. 그것만큼은 현소 진인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리 호, 불쌍해서 어쩌누?’

담호의 다리를 주무르는 현소 진인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본 담호의 재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것은 그의 의지였다.

어려서 큰일을 당해서인지 모르지만 담호는 또래의 소년들보다 훨씬 굳건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만일 그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분명 훌륭한 무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왼쪽 다리가 불편했다. 일상생활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지만, 무공을 익히는 무인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어느 문파나 그렇겠지만, 화산파의 무공은 무엇보다 보법이 중요했다. 특히 본산제자가 되어 소청심결(少淸心決)을 전수받으면 반드시 구궁보(九宮步)를 익혀야 했다.

현란한 변화가 일품인 구궁보는 재능이 뛰어난 기재들도 익히기 힘들어하는 극상승의 보법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담호가 익히기에는 지나치게 현란했다. 포기할 만도 하건만 담호는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다리의 근력을 키웠다.

그런다고 해서 구궁보를 익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담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런 제자의 노력 앞에 현소 진인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 이제 괜찮아요. 그만하셔도 돼요.”

“조금만 더 하자꾸나.”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다. 조금만 더 하자.”

“사부님.”

담호가 눈을 내리깔았다.

지난 오 년 동안 현소 진인은 늘 한결같았다. 하나라도 더 해 주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지극정성으로 담호를 보살폈다.

그런 현소 진인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의 담호도 없었을 것이다. 현소 진인은 담호의 발을 정성껏 주무르며 말했다.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굳은 심지 하나뿐이란다. 너의 심지가 굳건해 흔들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하늘이 알아서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호야.”

뿌리까지 도사인 현소 진인다운 말이었다.

‘사부님, 난 하늘을 믿지 않아요.’

담호의 대답은 입안에서만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