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장장이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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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1.



깡! 깡! 깡!

붉게 달아오른 화로의 옆에서 구릿빛 피부를 한 사내가 모루 위에 올려진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연신 두드렸다.

굵은 땀방울이 거친 인상인 사내의 몸을 온통 적시고 붉은 쇳덩이에 떨어져 내렸다.

“대장장이의 신이시여! 저에게 끝없는 힘을 주소서! 그대의 영광을 받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는 팔은 점점 저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멈춘다면 모든 것은 허사가 되어버림을 알기에 사내는 더욱더 팔에 힘을 주며 모루 위에 올려져 있는 쇳덩이를 향해 망치를 내려쳤다.

망치질할 때마다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불꽃들에 사내의 피부가 노릿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갔지만 사내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사내의 이름은 게리인 드라실루스.

미천한 태생의 신분이었다.

아비는 누구인지 몰랐고 어미는 사창가의 여인이었다.

먹고 사는 것이 목표였던 게리인은 글도 몰랐다.

먹고 살기 위해 한 대장간에서 조수로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10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게리인의 삶은 고달팠다.

하지만 게리인은 자신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냥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대장간에서 쇳덩이와 석탄만을 옮기며 허드렛일을 하던 게리인은 처음 망치를 받았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했다.

-이 망치는 대장장이들의 신인 아루모스님과 헤루델님을 받들어 모신다는 증표이다. 모든 대장장이는 죽기 전에 아루모스님과 헤루델님께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바쳐야만 한다.-

게리인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대장장이 신들에게 평생의 역작을 만들어 바쳐야 한다는 것만큼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것은 신념이었고 게리인의 삶 그 자체였다.

“아니다! 아니야! 이런 초라한 것을 바칠 수는 없다!”

게리인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성실했다.

조금이나마 몸을 편하게 하지 않았고 최고의 것을 만들고자 했다.

그 덕분에 게리인은 아크라스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왕과 귀족. 그리고 기사들이 게리인에게 의뢰를 했고 게리인은 그런 의뢰에 화답했다.

“역시 게리인이다. 그는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야!”

“신이 내린 실력이다!”

누구나 게리인을 최고라고 여겼다.

그가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어떤 이들은 게리인이 대장장이 신이 지상으로 현신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게리인이 만든 창과 검에 마왕의 군단이 쓰러지고. 마룡 데그란트의 심장에 박힌 붉은 눈물의 황금 화살이 그런 게리인의 명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리인은 죽기 전에 해내야만 하는, 대장장이 신들에게 바칠 신물을 아직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 정도면 충분하십니다!”

“아니다! 아니야! 어찌 이따위 것으로 신을 욕보인단 말이더냐! 내 하늘을 올려보지 못하며 땅을 내려다보지 못한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벌써 신에게 바칠 신물들을 셀 수 없이 만들었지만, 게리인은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대장장이들의 신께 영광을 바쳐야만 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대장장이 신들에게 바칠 신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최고의 광부들인 드워프들에게 간곡히 부탁해 얻어온 질 좋은 철을 이용해 자신의 신에게 바칠 신물을 제작하는 게리인의 모습을 신들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실력과 열망은 신성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니 그 정성의 갸륵함은 신들조차 부끄럽게 만들도다.-

-자칫 그의 몸이 상할까 두렵구나. 대장장이들의 신이여. 그의 불꽃이 다 타버려 재가 될 것이 두려우니 그만 멈추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신들조차 감탄케 하는 게리인의 재능이 이대로 전부 타버리는 것에 안타까워할 정도였으니 대장장이들의 신들도 게리인을 말리고자 했다.

-아루모스. 내가 그를 말리겠소. 그는 이미 우리에게 최고의 경의와 찬사를 바쳤소이다.-

-그렇게 하시오. 헤루델.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요.-

헤루델은 아루모스의 승낙을 받고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게리인에게로 내려갔다.

신들이 사는 아르고의 북쪽 호수에 있는 시원한 물을 떠 게리인에게 간 헤루델은 불꽃으로 갈라진 게리인의 목을 적셔주고자 했다.

“게리인이여. 위대한 게리인이여. 그대의 갈라진 목을 적셔 줄 이 시원한 물을 받으시오.”

“위대한 신께 바칠 신물을 만드는 중입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게리인은 대장장이들의 신 중의 한 명인 헤루델을 몰라보며 그의 물을 거부한 채로 연신 망치질을 계속했다.

팔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고 몸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게리인이었다.

“아아! 멈추시오. 멈추시오. 더 이상 망치질을 하면 그대의 몸은 아르고스 화산의 재처럼 변해 버릴 것이오.”

“신께 바칠 신물을 바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 중요하단 말이오! 나를 막지 마시오! 나를 막는다면 신의 저주가 있을 것이오!”

게리인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헤루델은 걱정이 되어 바람의 신에게 부탁해 게리인의 몸 주변을 식혀 주고자 했지만, 게리인은 그 바람조차 화로 속으로 던져 넣어 불길을 더욱더 강하게 할 정도였다.

“아아! 게리인이여. 신들의 동경과 찬사를 받을 유일한 인간이여. 그대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소. 이미 신물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그대의 위대한 재능과 생명을 꺼트리지 마시오.”

“나의 재능과 생명은 오직 대장장이 신들께서 주신 것이니 신들께 돌려 드리는 게 무엇이 아깝겠소!”

게리인은 웃고 있었다.

점점 완성되어가는 신물에 자신의 몸이 불타오르는 것을 알면서도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헤루델은 게리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게리인의 몸은 온통 검게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은 게리인의 망치질에 신물은 점점 그 모습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대에게 모든 신들이 축복을 내립니다. 오직 신들만이 가지고 있으며 신들에게만 주어지던 권능을 그대에게 부여합니다.”

헤루델의 말에 게리인의 몸이 빛났다.

하지만 게리인은 그 힘마저도 신께 바치는 신물에 쏟아부었다.

자신의 생명까지 남김없이 쏟아부은 신물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고 게리인은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부서져 갔다.

헤루델은 무너져 내리는 게리인을 부여잡고서는 안타까움에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아! 그대의 영혼마저 더 이상 이 세계에 남겨질 수가 없구나.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영혼마저도 신물에 쏟아내어 게리인을 지상의 신으로 만들지 못했다.

천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늘의 신도 고개를 내저었으니 헤루델은 자신의 진실한 신도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때 한 이름 모를 신이 헤루델에게 다가왔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게리인의 몸을 가지고 어디론가로 떠났다.

“도련님. 도련님.”

“으음.”

나지막이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에 게리인은 무거운 눈꺼풀을 떴다.

온몸이 물을 먹은 듯이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아직 자신이 살아있는 느낌에 게리인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신에게 바칠 신물을 찾았다.

“신물!”

“도련님?”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리 찾아도 신에게 바칠 신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 있을 뜨거운 화로도 없었고 평생을 함께해 온 무거운 망치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음을 깨달은 게리인은 다른 이들이 자신을 침실로 옮긴 것이라 생각했다.

“신물! 신물은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있냐는 말이다!”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아야만 했다.

“예? 신물이라니요? 도련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켜라!”

게리인. 아니 한태석은 당황해하는 남자를 밀쳐내고서는 자신이 누워 있던 방을 나왔다.

그렇게 방을 나온 한태석의 눈앞에는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거실 중앙의 소파에 중년의 남녀들이 앉아 있었다.

“이제야 일어난 거냐? 앉거라!”

중앙의 소파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한태석을 바라보며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빈자리에 앉으라고 말을 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한태석은 너무나도 생소한 방 안과 사람들에 당황했다.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앉으라고 했지 않느냐! 아무리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다지만 어린아이도 아닌 것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냐!”

“너무 그러지 마시오. 큰 형님. 막내의 잘못도 아니지 않소이까.”

“그래요. 오라버니. 삼일 밤낮으로 자지도 먹지도 않고 있다가 쓰러진 아이예요. 적어도 정신 차릴 시간은 줘야지요. 이봐. 김 실장.”

“예! 부사장님.”

김 실장이라 불린 검은 정장의 남자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유일한 여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 막내. 좀 씻을 수 있게 해 주고 옷도 갈아입혀 줘요. 그리고 여기 커피 한잔 더 주고.”

“알겠습니다.”

멍한 상태의 한태석은 김 실장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에 몸을 씻자 한태석은 조금씩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죽은 것이구나.”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죽으려고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신에게 바칠 신물을 만들었으니 죽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은 몸을 안았던 어떤 이름 모를 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는 이제 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신들의 축복을 받은 너이니 제법 좋은 집안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야. 신들의 선물이니 이번 생은 고단하지 않게 즐기면서 살아 보거라.-

그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태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에 자신이 환생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젊고 싱싱한 몸이었다.

어린 시절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생긴 수많은 몸의 상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오! 신이시여.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신이시여. 이런 미천한 자에게 이런 크나큰 은혜를 베푸시다니.”

비록 환생했다지만 한태석의 가치관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평생을 철 덩어리와 씨름하며 신들을 숭배하면서 살았던 한태석이었다.

신들이 자신을 축복해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은 대장장이들의 신에게 바쳤다. 새로운 삶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어. 오히려…….”

한태석은 신들에게 바치는 신물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괴로워했다.

조금만 더 자신의 실력과 믿음이 강했다면 더욱더 아름답고 뛰어난 신물을 바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다시 해보자. 다시 해보는 것이야.”

한태석은 다시 망치를 들기로 마음먹었다.

손은 굳은살 하나 없이 연했다.

기술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신물을 다시 만드는 것은 어려웠지만, 지금부터 몸을 단련하면 되는 법이었으니 한태석은 걱정하지 않았다.

“도련님.”

“아! 예! 나가겠습니다.”

욕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태석은 몸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서는 옷을 갈아입은 뒤에 욕실을 나왔다.

강남 대장장이


지은이 : 현진현우

제작일 : 2017.11.05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권아주

표지 :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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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75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