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는 강화를 한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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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챕터 1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쉴 새 없이 눈앞에서 번쩍인다. 주위는 온통 시끄러운 소리에 뒤덮여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곳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현장이다.

용접은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만큼 손에 들어가는 힘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조금이라도 서툴게 용접했다간 네가 바느질도 못하는 인턴 의사냐며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 것을 이유 삼아 일급을 깎아 대는 악덕 업주도 있었으니, 나는 눈이 빠질 것 같아도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력과 노동력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값어치는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돈이 된다.

초짜는 일급 10만 원 받기도 힘들지만, 최소 1년 이상 굴러먹은 베테랑이라면 일급 15만 원, 혹은 당기고 당겨서 2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는 고소득 직업이었다. 30일 내내 휴일 없이 일한다면 6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자, 자! 다들 일들 그만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야근하다가 다들 쓰러지겠네!!”

그럭저럭 말끔한 용접을 끝내고 나서야 작업반장의 작업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산만하게 튀어나온 중년 남성이 장갑도 착용하지 않은 손으로 손뼉을 치면서 작업 인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오늘은 철야 근무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찍 끝내 주네.’

슬슬 몸도, 정신도 한계가 오고 있던 참이었다. 눈은 뻑뻑하고 침침해서 제대로 앞을 보기 힘들었고, 손목도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했다.

용접은 기술력과 노동력을 함께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대신, 노동에 따른 피로도도 상당히 높았다. 나야 아직 젊으니까 죽자 사자 달려든다면 곧 용접반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득은 한층 더 뛰어오르니, 나로서는 좋을 따름이다.

“아이고, 정 씨. 오늘 한 잔 어때?”

“에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 누가 술을 마시나?”

“거 마실 수도 있지! 요새 너무 튕기는 거 아냐?”

“튕기기는 이 사람아! 집구석에서 밥 달라고 보채는 두더지 같은 자식들만 둘이야!”

“여우 같은 마누라는 왜 빼먹나? 하하!”

하나둘씩 모여든 작업 인원들은 작업반장으로부터 일급이 들어 있는 작은 봉투를 나눠 받고 빠르게 일터를 벗어났다. 일이 끝난 그들의 얼굴에는 노동의 피로도 싹 씻겨 나갈 것 같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비를 모두 점검하고 작업반장에게 다가가 일급 봉투를 받았다. 이번엔 조금 두툼했다.

“현성이 너 인마, 오늘까지 일하면 딱 2년째지? 섭섭할까 봐 좀 더 챙겼다. 참고 딱 1년만 더 채워 봐. 그럼 용접반 네가 맡게 될 테니까.”

“그래도 돼요? 저보다 먼저 들어오신 분들 많은데요.”

“작업 시간에 몰래 술 마시고 노가리나 까는 늙은이들? 집어치워! 그런 놈들보다 젊고 성실한 네가 더 적격이지. 아무튼 몸조심히 들어가라. 내일은 오후 5시까지 출근하면 된다.”

“예, 감사합니다.”

봉투의 내용물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얼마나 더 들어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위험한 시대에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점이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들어왔다는 건 기분 좋았다.

나는 일급 봉투를 주머니 속에 소중히 넣어 두고, 짐을 챙겨서 공장을 떠날 채비를 갖췄다. 장비 점검과 자재 정리를 하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작업장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일찍 일을 끝마쳐도 내일 이른 새벽부터 공사판으로 나가야 한다. 용접공보다 먼저 배운 포클레인 기사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선 일일 용역이 아니라 어엿한 포클레인 기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용접공에 비하면 굉장히 비싸고 어려운 장비를 조작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인데, 그 특징답게 하루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용접공에 비해 약 2배 많았다. 일을 하더라도 돈을 많이 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학생 시절부터 달려들었던 일이다.

흙먼지와 소음, 햇볕이 내리쬐는 공사판에서 포클레인을 움직여 흙을 퍼다 나르고, 하수관의 설치를 위해 설계 도면에 맞게 땅도 파내야 한다. 용접보다 훨씬 더 많은 집중력과 기술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포클레인 기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땐 뒤통수가 다 까졌었지.’

조금이라도 잘못 조작하면 인정사정없이 선배의 손바닥이 뒤통수를 후려 갈겼었다. 지금도 실수를 하면 뒤통수부터 조심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렇게 반년쯤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고, 지금까지 약 3년을 일해 왔다. 다만 공사판의 전문 기사 노릇은 보수가 높은 대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을 쉬어야 하는 날도 있ᄋᅠᆻ다. 스케줄이 확실하지 않은 날도 모두 메우기 위해서 2년 전에 이 용접공을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내 일상이 되고 말았다.

‘내일까지 일하면 현정이 약값은 얼추 맞춰지겠는데…… 이제 생활비가 문제네.’

나는 오늘 받은 일급과 내일분의 일급까지 미리 계산해서 가계부를 작성했다.

우리 집은 남들처럼 흔하디흔한 가정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0년 전까지는 흔하디흔한 가정이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포털’이라는 해괴한 것이 이 세상에 등장한 지 딱 10년이 됐다. 갑작스럽게 세계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차원 간섭 현상은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문제는 그 포털이란 것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기 시작한 이생물체, 통칭 ‘몬스터’라는 것들이 전 세계 곳곳에 큰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미처 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침공을 받은 인류 사회는 잠깐 기울어지는 듯했지만, 곧 각국의 군대와 헌터라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서서 사태를 전부 해결해 줬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포털이 열리게 되면서 일반인들 중에서 상당수가 모종의 능력을 각성했던 모양이다. 몬스터와 접촉했다거나, 포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거나 하는 이유가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운 좋게 능력자로 각성해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재수 없게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손 쓸 도리도 없이 희생된 사람도 있었다. 그중엔 우리 남매의 부모님도 있었다.

처음엔 보험사의 직원들이 찾아왔고, 그다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척들이 찾아왔다. 마지막엔 아동보호 센터에서 사람을 보냈지만, 결국 그들 중 누구도 우리 남매를 돌봐 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여동생은 포털에서 흘러나온 정체불명의 마력에 중독돼, 일명 마력 중독이라는 난치병을 앓게 됐다. 보험사로부터 받았던 거액의 사망 보험금은 지난 10년간 여동생의 치료에 대부분 투자했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학교도 그만두고 노동에 뛰어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다.

언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매일같이 공장과 공사판을 드나들면서 몸과 정신을 혹사시키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소득이 짭짤한 투 잡을 뛰고 있기 때문에 여동생의 치료비도, 우리의 생활비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 의학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여동생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분명 생활은 훨씬 더 안정될 것이다. 그런 꿈을 품고 있다.

‘더 열심히 일하면 되지. 젊어서 노는 놈들이 이상한 거야. 젊으면 일을 해야지!’

고생은 젊어서 하라는 어르신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공장을 나섰다. 집에 돌아가면 언제나처럼 남자의 몇 안 되는 삶의 낙을 즐기고 수면을 취할 것이다. 직장 동료들로부터 비장의 품번도 알아 뒀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공장 부지 내로 많은 수의 경찰차와 특수 기동대 장갑차가 들이닥쳤다.

매일같이 공장과 공사판을 드나드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나라도 경찰차 뒤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저 장갑차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장갑차의 외벽에는 ‘특수 기동대’라고 쓰여 있지만, 그 안에서 출격 명령을 대기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특수 기동헌터 부대였다.

그들이 대규모 경찰 인력과 함께 이곳에 당도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흉악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를 상대하거나, 혹은 몬스터를 상대하거나.

“……!”

나는 나보다 먼저 앞서 나간 작업 인원들이 부리나케 도망치는 것을 바라봤다. 그들 사이로 밀고 들어오는 경찰들과 중무장한 특수부대가 내게 무어라고 외치며 손짓을 했다.

10년 전에 집 안에 꽁꽁 숨어 있을 때도 느낄 수 있었던 그 저릿저릿한 감각. 수천 개의 바늘로 전신을 찌르는 것 같은 불쾌감 속에서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린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가 가장 우려했던 그것이었다.

‘포털? 설마 여기서 포털 제네시스가?!’

나는 그제서야 왜 경찰과 특수 기동헌터 부대들이 난입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유 불문, 상황 불문, 갑작스럽게 생성된 포털을 제네시스라고 부르는데, 하필 이 경우는 내부의 던전까지 포털과 함께 생성돼 근처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던전 제네시스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이형적인 공간. 그것이 공장 한복판에서 생성돼 주위의 모든 사물과 인간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점차 뒤쪽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미친! 이게 왜 여기서 열리고 지랄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이 흐름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근거리에서 생성된 포털은 어지간한 것은 모두 빨아들일 정도로 강력했다. 실제로 무거운 장비나 건설 자재들도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내 몸은 포털의 강력한 흡입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 떠올라서 빨려 들어갔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직장 동료들과 경찰들이 보였다.

“사람 날아가는데 뭘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어!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러거나 말거나 내 몸은 순식간에 포털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 * *



“커흑!!”

턱 막혀 있던 숨을 내뱉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가슴을 관통하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한동안 헛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 같은 기침을 반복해야 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 이외에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몇 명인가 같이 빨려 들어왔을 텐데, 내 주위에 있는 것이라곤 소형 포클레인과 건설 자재, 그리고 휴대용 용접 도구들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뉴스에서도 몇 번인가 본 적 있고,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곳에서도 어깨너머로 들은 적이 있었다. 이건 틀림없이 던전 제네시스다.

던전 제네시스란 포털이 생성된 직후에 내부에서 바로 던전이 생기는 현상을 말하는데, 던전이 생성되지 않고 포털만 열려 있는 장소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부 준비가 모두 끝나야 오픈하는 백화점처럼, 던전도 준비가 끝나야 포털이 주위의 모든 생명체나 사물들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하필 운이 없게도 포털과 던전이 동시에 생성되는 극악한 확률의 위기 상황에 나와 몇몇 운 없는 사람들이 딱 걸려들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을까?

헌터는 강화를 한다 

 

지은이 : 작가G

제작일 : 2017.08.28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성애

표지 : 장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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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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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6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