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왕의 옥좌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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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1.



“으음……필드 레이드는 잡힌 건가… 할 게 없네.”

게임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고찰을 하자면 일단은 달성감이다.

캐릭터를 강하게, 랭킹을 올리고, 업적을 이루고, 누군가와 싸워 이기고, 아이템과 장비로 타인과의 우위를 점하는 등의 여러 가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두고 이를 이룸으로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뭐, 조금 다른 목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람이 즐기는 게임인 월드 오브 아이리스는 여러 직업과 광활한 필드, 수없이 많은 아이템과 던전, 몬스터가 넘쳐흐르는 게임이다.

서비스 한지 벌써 10년이 넘은 이 게임은 전통 있는 MMORPG에서 시작해 이젠 가상현실에까지 발돋움하여 누가 뭐래도 명작이자 대작인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그에게 있어서 누가 뭐래도 이 게임은 명작이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한물간 퇴물 게임으로 취급하는 듯 하니까 말이다.

필드는 넓지만 그 정도가 과해 유저가 어디에서 플레이를 해야 할지 감도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고 장비는 수없이 많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아이템도 많이 때문에 의미가 없다.

던전 역시 새로운 업데이트 때만 반짝일 뿐이지 그 이전 던전은 금세 잊히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래도 그는 이 게임이 참 좋아 한다. 왜냐면 어렸을 때 아는 사람한테 배운 이후 그에게 늘 새로운 모험과 즐거움을 준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곳곳에 추억이 있고 정든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게임, 이 장소는 아람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장소이다.

지금 아람이 앉아있는 센트럴 시티, 이 게임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의 가장 높은 종루 역시 그런 장소 중 하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서 내려 보다 보면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면 궂은일을 조금씩 잊곤 했었다.

“이 풍경도 이제 곧 못 보겠네… 아쉽다.”

그렇다.

사실 이제 이 게임은 얼마 뒤면 서비스가 종료된다. 그래서 그런가 더더욱 이 게임에서 남고만 싶어지는 게 또 골수게이머의 팬심 아니겠는가?

“잊혀진 신전이나 가볼까…….”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센트럴 시티의 포탈로 걸음을 옮겼다. 대도시라고 보기엔 이젠 한적한 시골 마을 마냥 사람이 보이는 이곳에서 아람은 포탈의 조작 페널을 바꿔 잊혀진 신전 던전으로 향했다.

잊혀진 신전은 월드 오브 아이리스의 첫 번째 스토리 던전이자 초심자 때 한번쯤은 들리게 되는 던전이다.

하지만 길이 복잡한데다가 몬스터도 적정수준보다 높게 설정이 되어있어서 한번 온 사람은 두 번 안 오고 안 온 사람은 그냥 건너뛰기 일쑤인 던전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도, 그렇게 고생해서 끝에 도착했을 때 정말 기뻤지…….”

뭐가 좋다고 친구들과 헤딩해가면서 몬스터를 잡고 길을 찾고 끝끝내 던전 최종보스까지 잡은 뒤 진행되는 스토리에 흠뻑 빠져 살았던 옛날을 떠올리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 아직 있었네? 천사님…….”

잊혀진 신전의 스토리는 이 신전의 봉인된 천사의 의뢰를 받아 천사를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

이 신전에 봉인된 천사를 발견하고 퀘스트를 받는 게 사실 던전의 진짜 클리어 조건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최종보스만 처치하면 던전공략이 끝났다고 알고 있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바위에 앉아 천장에서 세어 나오는 천사는 금발의 눈부신 한 쌍의 날개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무언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장의 빛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뭔가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게 올라오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한 기분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천사는 고개를 돌려 아람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어서 오세요. 용사님. 또 다시 뵙게 되서 기쁩니다.]

‘응? 또?’

“퀘스트를 클리어 해서 대사가 틀리게 나오는 건가?”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먼저 말을 걸 줄이야…

게다가 질문이라니. 전에 퀘스트를 클리어한 뒤에 만나서 그런 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접촉에 의야 해 하면서도 아람의 대답을 기다리는 천사를 향해 인사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음…….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

[보고 싶다는 것은 저를 의미하는 건가요?]

천사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아람은 쑥스러운지 볼을 긁적였다.

무언가 기대하는 듯이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천사는 영락없이 수줍음을 타는 소녀의 모습 같아 보여서 아람은 내심 미소가 떠오르는 걸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천사님이 보고 싶어서 왔어.”

[가식 없는 말씀 감사드려요. 사실 저도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윙크를 하며 미소 짓는 천사님을 보며 아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천사님은 왜 여기 다시 있는 거야? 분명히 봉인은 풀어줬……. 아…….”

아람은 자신이 묻고도 무안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인공지능으로 질문에 답하는 기능이 있는 NPC라지만 퀘스트를 주는 천사에게 왜 안 갔냐고 진심으로 묻다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나를? 왜?”

[죄송합니다. 정확히는 당신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

[네, 이 세계를 사랑하고 아끼는 당신 같은 분을요.]

천사님의 대답에 아람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으며 감탄했다.

이건 분명 개발자가 넣은 이스트 에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말을 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천사의 말에 아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가 월드 오브 아이리스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점에서는 엄연한 사실이고 부정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어…….음, 일단은 고마워. 그런데 나를 기다렸다는 건 나한테 볼일이 있다는 거지?”

[예, 당신께 한 가지 전달해야 할 매우 중대한 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사항?”

[네, 이제 곧 저희의 세계는 종말을 맞이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저희 '관리자'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판단하고 겸허히 종말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머뭇거리는 천사를 보며 아람은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기를 기다렸다.

누가 봐도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월드 오브 아이리스의 서비스 종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게임이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면 가상현실에서 살아가는 NPC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종말이란 뜻일 테니까 말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이 이후에는 서비스 종료 기념 이벤트 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천사가 꺼낸 말은 아람의 생각을 벗어났다

[저희, 아니……저는 최근에 이 종말에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소는 지금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 뒤 당신의 세계로 넘어갈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응?”

[당신의 세계에 위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 저기 천사님, 진정하고 다시 말해봐. 이해를 못하겠어.”

천사의 절박한 얼굴에 당황한 아람은 말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천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이벤트 퀘스트라고 보기에는 너무 뜬구름을 잡는 내용에 아람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고

그런 아람의 반응이 수긍이 가면서도 이해를 못하는 아람이 야속하기라도 한지 천사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죄송합니다. 저도 보다 자세히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저 역시 정체를 완벽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매우 위험한 존재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세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몰고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서비스 종료 이벤트치고는 상당히 거창하고도 뜬금없는 천사의 말에 아람은 일단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으음, 그럼 막을 방법은 없는 거야?”

[……저희가 가진 관리자로서의 힘은 이제 곧 이 세계와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스스로가 손쓸 기회조차 놓친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정?”

[……바로 이 세계의 힘을 용사님의 세계로 옮기는 것. 용사님들에게 다음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직접 해결하라는 거지?”

아람은 천사의 설명에 오히려 익숙한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런 이벤트나 퀘스트는 결국 게임을 즐기는 유저에게 그 역할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애초에 NPC들 만으로 해결 된다면 플레이어들은 할게 없지 않은가?

“응, 알았어. 걱정 마. 우리들이 어떻게든 해볼게.”

[……생각보다 쉽게 믿어 주시는군요.]

“응, 천사님이 우리한테 나쁜 일을 권하진 않을 테니까. 난 믿어.”

사실 선의 편에서 천사 같은 케릭터가 타락하거나 흑화하여 뒤통수를 치는 퀘스트가 아주 없다곤 말 못해도

아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천사는 초보 때부터 항상 플레이어를 인도하던 npc다.

이제 와서 알고 보니 그 천사가 최종보스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게 아람의 생각이었다.

“……? 왜?”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아무튼! 부디 용사님들께서 강한 힘에 대한 책임을 지니시고 부디 저희와 같은 전처를 밟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응! 고마워!”

태연하게 말한 아람을 멍하니 쳐다보던 천사는 조금 쑥스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헛기침을 했고 아람은 쾌활하게 천사의 말에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새로운 퀘스트란 생각에 기대감에 들뜬 아람과는 달리 그의 반응에서 무언가 슬픈 기억이 떠오르는지 조용히 대꾸한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대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당신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고자 합니다.]

“소원?”

[……보상을 미리 드린다고 말씀드린다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 같군요. 이곳을 다시 찾아오신 당신을 위한 저의 호의라고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천사의 말에 아람은 고갤 갸웃거렸다.

이벤트 보상을 미리 준다는 이야기는 게임에서는 제법 흔한 이야기지만…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아람이었다.

“그, 그래? 그럼 뭐가 좋을까… 어떤 소원이든지 가능한 거야?”

뭐, 게임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냐는 생각에 아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상에 대하여 관심을 돌렸다.

[작게는 당신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드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크게는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멸망을 가져다 드릴 수도 있지요.]

“살고 있는 세계의 멸망이라는 부분이 엄청 신경 쓰이는데…종말을 막아 달라고 하지 않았어?”

[물론 예를 들자면 입니다. 어떤 소원을 비실지 생각해보셨나요?]

아람의 지적을 부드럽게 넘기며 천사는 아람을 보며 대답했고 아람은 갑작스러운 소원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고민에 빠졌다.

성왕의 옥좌

지은이 : 해어린

제작일 : 2017.05.05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정윤석

표지 : 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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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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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4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