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희망을 찾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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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01



서른여섯,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나름 많다면 많은 나이입니다. 서른여섯의 백수. 한심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스스로도 한심하고 바보 같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좀 해 보려 합니다.

가족 관계는 부모님, 누나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입니다.

다이아몬드 수저까지는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금수저 정도 되는 집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집안 중 하나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잘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그 당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유학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육을 많이 중시하셨지요.

그래서일까요. 아버지를 비롯해 여섯 남매 모두 서울권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도 있고, 대학 교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들 아는 S병원 병원장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라고는 하지만 꽤 탄탄하다는 중견 기업의 사장도 있습니다.

사촌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공부 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알아준다는 S대 출신도 여럿이며 최소 Y대, K대 정도는 다들 나왔습니다. 고시를 패스한 사촌들도 몇 있습니다.

저와 함께 유일하게 공부를 못한다고 했던 사촌 동생조차 K대를 나와서 누구나 알아주는 기업에 있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왜 그렇게 하는지 의아해 하실 겁니다.

문제는 제가 공부를 못한다는 겁니다. 정말로요. 집안 모두가 특출 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가끔 저 같은 보통 사람도 있습니다. 집안 기준으로는 그냥이 아니라 아주 못합니다.

누나는 S대를 수석 졸업했고, 대학교 재학 중인 21살에 사법 고시를 패스했습니다. 전국에서 손꼽힌다는 소리를 들었었죠.

하지만 저는 누나와 너무도 비교되는 존재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실업계를 갔고, 4년제 지방 대학도 겨우 들어갔습니다. 정시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점수가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도 아버지는 아들이 인문계에 들어갔다고 주위에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버지 심정도 이해는 조금은 갔지만 저에겐 정말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더군요.

아버지는 정말 똑똑하셨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자존심도 정말 강하셨지요. 그러다 보니 자식이 멍청하다는 것에 정말 콤플렉스가 심하셨고, 인정을 하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너무 유능한 누나. 누나와의 비교되는 문제 역시 한몫했을 겁니다.

가부장적 사상 때문인지 남매 중 저에 대한 기대 역시 많이 컸다고 하니까요. 남자이기 때문에.

친척들끼리 모임은 어렸을 때부터 잦았습니다.

그렇게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전 다른 친척들에게 늘 무시당하면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대놓고 그러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힘들더군요. 형이나 누나는 물론 동생들조차 그랬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나서 돌아보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부분들도 당시엔 무척 힘들었거든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조금 벅찼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가족 관계상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자라셨습니다. 중간에 있다 보니 관심이 덜한 것도 있었고, 어린 시절 집안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할머니가 신경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환경적 요인이 아마 강한 이유가 되었을까요. 아버지께서는 정을 그다지 받지 못하셨던 과거 때문인지 저희한테도 어떻게 정을 줄지 모르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셨습니다만 너무 사랑이 지나쳤던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저희에게 큰 관심을 쏟지 않으시더군요.

가장 자주 들은 말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 라는 말.

그리고 집안의 인정을 받아야 된다는 분위기. 이런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들은 말은 “너 대체 어떻게 하려고……”라는 말과 함께 뒤따라오는 한숨 소리였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요.

똑똑한 머리도 아니었으며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어떻게든 아버지로부터, 집안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열등감이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몸도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약한 편이었지요. 키도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175센티미터 정도. 하지만 몸무게가 저체중에 가까웠습니다. 얼굴은 그럭저럭 잘생긴 편이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일까요.

수능 이후 시간이 잠깐 남았을 때 친구 따라 우연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몸 하나는 좋아지더군요.

시간과 노력에 따른 보상이 눈에 보이다 보니 정말 운동이 좋아졌죠. 엔도르핀 때문인지 한창 운동을 하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 순간 자체가 정말 좋았기도 했습니다.

부족했지만 그렇게 학교 공부와 운동에 죽자 살자 매달리다 보니까 장학금도 받고, 성적도 괜찮게 나왔습니다. 아마 지방대라는 부분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항상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학비를 제외한 대부분은 전부 제가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집에서는 그래야 자립심이 생긴다며 오로지 학비만을 내줬습니다.

대부분 시간에 쫓기다 보니 대학에서는 친구를 사귈 기회도, 시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늘 외로움을 느꼈고, 누군가 옆에 있어 줬으면 했지만 제대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가끔 읽는 연애 소설이 제 외로움을 달래 주는 친구였죠.

그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돈을 많이 버는 길이 공부 외에 인정을 받는 길로 보였습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거든요.

공부로 인정을 받기에는 너무도 모자라다는 것을. 그래서 군 제대 후 이런저런 일을 가리지 않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정말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좀 늦게 복학했는데 4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지방대라지만 나름 거점 대학인 국립대였는데, 제 능력의 한계가 찾아왔습니다.

적당히 남들에게 보여 줄 만한 화학 관련 과로 들어갔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기초가 너무도 안 돼 있었던 겁니다.

3학년 때까지는 단순 암기로 어떻게든 따라갔지만 4학년이 되니까 암기를 베이스로 이해를 해야 하더군요. 암기까지야 노력으로 어떻게든 되었지만 이해를 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두뇌가 따라가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냥 졸업만 할 예정이었으면 별 문제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 학사 경고를 처음 받아 봤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응급실에도 실려 갔었습니다.

이때부터였습니다.

급작스레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도저히 학교생활에 자신이 없어서 일 년 쉬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일했죠. 그러다가 집에서 다시 복학하라고 하더군요.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때 나이가 서른 하나였습니다.

제 의지라기보다는 집안의 압박 때문에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복학했습니다.

복학해서 실제 피를 토하며 열심히 했지만 C+로 거의 도배된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더군요. 그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좌절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한 줄 알았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공부는 포기하고 돈으로 인정을 받아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공부에 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시간이 흘러 기말고사 때. 답안지는 전부 백지로 냈습니다.


02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오려면 한 달 남짓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자살을 결심하고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마지막 번개탄을 사 들고 적당한 모텔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나름대로 처절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인생은 행복했던 걸까.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기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이었다는 것을 이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곰곰이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지. 그렇게 노력했던 것은 왜일까. 대체 무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좋아했던 것은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잡이로 들었습니다.

정말 좋아했던 것?

글쎄요. 그렇게 살다 보니 뭔지 딱히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있긴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솔직히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부족한 머리와 능력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대한 발버둥 쳤던 것도,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결국 집안의 인정, 아버지의 인정. 그 인정이란 것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그 인정이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집안과 아버지의 인정은 공부고 학벌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나라에선 정말 중요하고, 유리한 수단이긴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정받기 가장 무난한 길이구요.

하지만 공부가, 학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공부를 못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요. 지금 살아온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집안이 정해 놓은 레일 위를 달려왔던 마치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모든 게 허무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허무감은 허탈함을 불러왔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나.

비록 행복하지는 않았더라도, 가치 있는 인생이었을까.

그렇지 않더군요.

아무리 되뇌어도 그런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집안의 인정, 아버지의 인정,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글쎄요, 어린 나이에 집안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거기에 휩쓸렸던 거겠죠.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었으니까요.

특히 군대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무얼 위해서였는지를 떠나서 노력 하나만 본다면 저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단지 길이 여러 갈래가 있음을. 하나의 길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판단한 능력도 되지 않았으며 그런 것을 알려 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휩쓸린 분위기와 열등감이 합쳐져 만들어진 인형의 가치관.

그래서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알려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변에 존재했던 사람은 그저 비웃거나 다그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뿐.

친누나 역시도 어린 나이에 자사고를 들어가며 따로 생활을 했었죠.

거기에 누나는 너무 똑똑하다 보니 제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더불어 제가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안의 관심이 누나에게 몰린 탓도 있습니다.

그렇게 누나에게 쏠린 지나친 관심, 하지만 그 역시도 결코 사랑은 아니었던. 누나도 나름 힘든 시기였음에 분명합니다. 그 때문인지 어린 나이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내 삶에 허무감이 짙은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과연 이런 집안 분위기와 부족한 능력 덕택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봤는데, 그런 부분도 분명 큰 몫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를 가르쳐 주거나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네요.

왜냐하면 집안은 그랬거든요.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딱히 응원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해냈으니 말이죠. 이 집안에선 제가 특이했던 겁니다.

배우, 희망을 찾다


지은이 : 공중누각

제작일 : 2016.12.04

발행인 : ()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유리

표지 : 강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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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24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