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해서 게임한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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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챕터 1. 나는 회귀 당했다



안재원의 눈이 떠졌다.

‘오후 1시.’

시간을 확인한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 줬다.

“하아암.”

그는 잠기운을 떨치기 위해 손발을 최대한 쭉쭉 폈다.

하지만 하품이 늘어지게 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안재원은 항상 이 시각에 일어났다.

그는 새벽 4시나 5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하기 때문이었다.

정상인과는 다른 시간대에 자니 정오를 넘겨서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안재원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찬물을 꺼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후아!”

차가운 물이 식도에 짜릿한 느낌을 전달해 주면서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후후…….”

찬물을 마시고 정신이 든 안재원.

그는 대뜸 웃음을 지었다.

어제 게임에서 먹었던 아이템이 생각나서였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저번 달 수입을 뛰어넘겠어.’

보스 몬스터를 잡고 얻은 용검 브류나크.

희소한 아이템이라 경매에 올린다면 못해도 현금으로 500만 원 정도는 나올 것이었다.

안재원은 어제만 해도 그 아이템이 자신에게 굴러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당시 보스 몬스터를 잡는 데 동원된 파티의 인원은 모두 20명.

매직 등급 이상 아이템의 분배는 예외 없이 1에서 99사이의 주사위를 굴린다.

가장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해당 아이템을 가질 수 있었다.

재원이 용검을 먹으려면 20분의 1의 확률을 뚫어야 했다.

그러나 주사위 대박이 터졌고, 용검 브류나크를 그가 가질 수 있었다.

500만 원은 한 달 내내 목 좋은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잡아 얻은 모든 아이템을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용검이라는 뜻밖의 소득이 생겼으니 이번 달은 설렁설렁 게임을 할까 하는 생각이 재원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절레절레.

그러나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전원. 호라이즌 접속 예약.”

안재원은 늘어지는 마음을 잡고는 명령어를 외쳐서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호라이즌Horizon은 10년 전에 출시된 가상현실 게임의 이름이었다.

지금도 다른 게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안재원도 호라이즌의 출시 1년 후에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27세.

지금 안재원의 나이는 36살이었다.

지금 그는 게임 내에서 나름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무려 10년 가까이 호라이즌을 플레이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임 내 랭킹도 중상위권에 달했고, 개인 방송을 켜면 수백에서 많을 때는 무려 천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그의 플레이를 관람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할 줄 아는 게 게임밖에 없었으니 생활비는 게임에서 아이템과 골드를 팔아서 충당했다.

소위 말하는 다크 게이머였다.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 머니를 전문적으로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

그들을 좋지 않게 보는, 사회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어이기도 했다.

2000년 초반, 달빛을 조각하는 모 게임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호라이즌은 취미로 하는 게임.

하지만 안재원에게 있어서는 생계의 최전선이었다.

게임 초기에는 계정값을 내고 나면 돈이 없어서 라면 하나로 하루 식사를 때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월 500에서 600 사이는 충분히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

10년간 게임에만 몰두했으니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여자 사람과의 접점은…….

‘게임 속에서 알고 지내는 여자라면 있지만…….’

안재원에게 있어서 그들은 뭐랄까, 비즈니스적 관계.

그래,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운 것이었다.

‘여자 친구라…… 있으면 좋지.’

다만 지금 안재원의 상황에서 만들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다른 모든 것들은 제치고서라도 나이가 너무 많았다.

‘36살이 연애를 하기에는…… 음, 좀 그렇지.’

안재원은 조금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

딱히 독신주의자는 아니었다.

밤마다 옆구리가 시려서 사무칠 적도 가끔 있었다.

아니, 자주 있다.

‘연애……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안재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게임이 먼저다.

앞으로 깨야 할 퀘스트는 많았고, 돈도 벌어 둬야 했다.

“자, 그럼 오늘도 노가다를 해 보실까.”

안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항상 일어나서는 먼저 몸부터 씻었다.

다른 게임 폐인들은 눈 뜨자마자 게임에 접속하고 몇 주에 한 번 씻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하지만 안재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게 자더라도 제 시각에 일어나기.

삼시 세끼는 꼭꼭 챙겨 먹기.

하루에 한 번 이상 씻기.

아무리 게임에 몰두해 있는 그여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최소한의 규칙들은 정해 두고 있었다.

“역시 잘생겼어.”

남자라면 다들 화장실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품평하지 않는가.

대부분 좋은 쪽으로 말이다.

안재원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흐뭇해 하다가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의 얼굴이 예상보다 훨씬 잘 생겨서?

그것은 아니었다.

“어…….”

거울 속에는 변함없이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다만 얼굴에 있었던 잡티가 사라지고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안재원은 당황해서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짝!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세차게 두들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상태에서 다시 거울을 쳐다봤다.

앳되고 탱글탱글한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저께 자기 전에 했었던 팩이 효과를 발휘한 건가?”

그럴 리 없었다.

자신이 썼었던 건 1,000원짜리 싸구려 팩이었다.

안재원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화장실을 나왔다.

“응?”

그제서야 시야가 완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이 좁아도 너무 좁은 것이었다.

마치 10년 전 자신이 처음으로 호라이즌을 시작할 때 지냈었던 그 원룸 같은…….

안재원은 눈을 돌려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가상현실 게임용 캡슐과 컴퓨터를 바라봤다.

‘완전 구식 모델이잖아?’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신형 모델과는 다른 투박한 디자인의 캡슐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안재원은 당황하면서 자신의 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책상 위에 있었다.

‘내 핸드폰이 이런 모델이었나? 이거 되게 옛날 건데?’

핸드폰도 캡슐과 마찬가지로 지금 쓰는 모델이 아니었다.

‘일단은 날짜 확인부터…….’

안재원은 화면을 켜서 날짜를 확인해 봤다.

‘2030년 1월 7일?’

핸드폰의 배경에는 그렇게 날짜가 적혀 있었다.

핸드폰을 잡고 있던 안재원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럴 리 없어. 2030년이라니? 올해는 2040년이잖아…….’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서 달력을 확인해 봤지만 거기에도 날짜는 2030년 1월 7일로 나와 있었다.

‘말도 안 돼. 누군가의 장난인가? 몰래카메라?’

안재원은 자신의 원룸을 뛰쳐나갔다.

아직 씻지 않아서 몰골은 추레했지만 그의 안중에 없었다.

“저기요!”

안재원은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았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아십니까?”

안재원에게 잡힌 중년의 여성은 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1월 7일이잖아요?”

“몇 년, 올해가 몇 년이죠?”

“2030년이요.”

중년 여성은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허…….”

안재원은 머리가 핑핑 돌았다.

분명 올해는 2040년일 터였다.

자신의 시간이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단 말인가?

그는 터덜터덜 자신의 원룸으로 올라갔다.

털썩.

그러고는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들어 다시 한번 날짜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여전히 2030년 1월 7일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재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핸드폰에 떠오른 날짜.

포털 사이트의 달력.

밖에서 수집한 정보.

모두 취합해 보면 올해는 2030년이 되는 셈이었다.

딱 10년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온 것이었다.

재원은 무심결에 앉아서 무릎을 매만지던 중 문득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무릎에 있던 철심은?’

3년 전, 그러니까 2037년.

재원은 교통사고로 인해 무릎 아래쪽에 철심을 박았었다.

만약 정말로 시간이 되돌려졌다면 그 일도 없던 것이 될 터.

재원은 즉시 바지를 벗어서 자신의 왼쪽 무릎을 확인해 봤다.

‘수술 자국이…… 없다.’

재원의 왼쪽 무릎은 멀쩡한 상태였다.

수술 자국은 없었고, 주먹으로 두들겨 봐도 철심 특유의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10년 전으로 되돌아왔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재원은 당혹감에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앉은 채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곱씹어 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꼬르륵.

재원이 빠진 상념의 수렁을 깨트린 것은 그의 배꼽시계였다.

아무리 그라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일어나고 나서 한 끼도 못 먹었네.’

재원은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열어 봤다.

물이랑 음료, 간식거리뿐이었다.

식사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도 사 와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재원은 간단히 세면을 하고는 옷을 챙겨 입고 원룸을 나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번화가의 거리에 있었다.

저녁 시간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재원은 길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점심때에는 심하게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재원은 진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면 여태껏 키워왔던 내 게임 아이디는? 어제 먹었던 용검은? 500만 원은?!’

재원의 머릿속에는 이제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0년 전으로 되돌아왔다면 그동안 재원이 쌓아 왔던 공적들은 모두 없던 셈이 되는 것이었다.

‘하. 앞으로 10년은 더 꿀 빨 수 있었는데.’

재원은 못내 아쉬웠다.

비록 그의 캐릭터는 게임 내에서 탑 랭커는 아니더라도 중상위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 정도면 밥벌이는 충분했다.

시간이 지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었다.

‘어쩐다, 앞으로…….’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면 지금 나이는 26살.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취직에 전전하고 있을 시기였다.

지금 재원이 걷고 있는 이 거리도 그가 다녔던 대학 근처의 거리였다.

‘옛날 생각나는구만.’

과거의 자신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학점이 좋지 못해 항상 서류에서 커트.

면접은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고시를 준비하기엔 앉아서 공부할 끈기가 부족했다.

‘이번에는 공무원이라도 도전해 볼까…….’

재원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몇 개 사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절레절레.

재원은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공부랑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자각한 지 오래였다.

“어, 저건…….”

다시 원룸가의 길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회귀해서 게임한다

 

지은이 : 박동수

제작일 : 2016.12.05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성애

표지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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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24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