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그 : 유적탐색자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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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01. 그 녀석의 일상



어릴 적 본 하나의 영화.

그 영화는 한 아이의 마음에 콕하고 틀어박혔다.

웅장한 음악!

스펙터클한 모험!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까지!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우와…….”

반짝이는 금은보화도 아니다.

굉음을 내뿜는 총도 아니었다.

낡고 빛바랜 그것.

깊고 깊은 땅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주인공의 손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골동품 혹은 유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옛 물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

이윽고 유물이 사라지자 아이는 뒤돌아보면서 외쳤다.

“엄마! 나 저거 할래!”

아이가 보고 있던 영화.

그건 <인디아나 존스>였다.



* * *



딩동 댕동.

수업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각 3시 50분.

고등학교 정규 시간은 다 끝났다.

남은 것은 야자의 연속.

“가자!”

보충 학습이 끝나고 아이들은 가방을 챙겼다.

야자라는 관문이 남았지만, 순순히 그 지루한 시간에 몸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떠나는 아이들 사이에는 체벌을 받지 않은 학생도 몇몇 속해 있었다.

그 가운데 지훈도 있었다.

“지훈아, 너도 갈 거지?”

지훈은 영덕의 말에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 나 아르바이트 가야 해.”

“마! 아르바이트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잖아?”

“안 돼.”

지훈은 단호히 말했다.

특히 오늘은 더더욱 빼먹을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월급날!

돈 받는 날인만큼 꼭 가야 한다.

지훈이 한 달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날이니까!

시끌시끌.

해방된 아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거리를 점거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들이 이 거리의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아 맞다. 그런데 너희 그거 알아? 이번에 에닉스사에서 새로 신작 게임 하나 냈던데?”

“그거? <레전드> 말하는 거 아냐?”

아이들이 말하는 <레전드>.

일종의 가상현실 게임으로 무한한 자유도를 자랑하는 에닉스사의 신작이었다.

4년 연속 가상현실 부분 캡슐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오급시계를 끌어내릴 야심작이기도 했다.

“응. 오늘 오픈한다고 하던데…….”

“진짜? 그럼 오늘은 세계 평화는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러 가 볼까?”

“그것도 좋지!”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지훈은 슬그머니 무리에서 떨어졌다.

“어? 지훈아!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래. 잘 가라. 세계 평화를 부탁해.”

“걱정 말라고! 킬킬킬. 우리 때문에 전쟁이 안 나는 거야!”

지훈은 그렇게 작별을 하고 사거리에서 헤어졌다.

그런 지훈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쟤는 아르바이트에 뭐 한이 맺혔나? 매일 일하러 가더라?”

“맞아. 뭐 쟤네 집안 못사는 것도 아니잖아?”

“전에 부모님 보니까 차 죽이더라.”

“그래?”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마구 커져만 갔다.

“그만 신경 꺼. 지훈이도 뭐 사정이 있겠지.”

영덕은 재벌가 사생아라든가 친척 집에 얹혀산다든가 하는 근거 없는 헛소리를 제지하고 애들을 이끌었다.



* * *



“안녕하세요.”

약속된 시간에 ‘엄마의 손길’이라는 햄버거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지훈의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었다.

“지훈이 왔어?”

매대에서 일하던 영순이 지훈에게 인사했다.

“누나. 아직 안 늦었죠?”

“그래. 어서 옷 갈아입고 나와.”

“알았어요.”

매장 뒤쪽에 있는 직원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지훈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치킨버거 하나. 갈릭버거 하나.”

“네!”

빠른 손길로 햄버거를 만드는 지훈. 밀려드는 주문에 잡념은 사라졌다.

그렇게 바쁘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훈이 고대하는 시간이 왔다.

“자, 여기. 지훈이 오늘 월급날이지?”

“네. 감사합니다.”

지훈은 두툼한 봉투를 쥐어 들었다.

“120만 원이야. 원래는 118만 원인데 지훈 학생이 성실해서 120 채웠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2만 원 보너스였지만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르바이트 입장에서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나이가 적다고, 혹은 경력이 없다고 시급을 까지 않았다.

최저 시급 6,500원을 고스란히 챙겨 주는 사장님.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훈은 차별 없는 대우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럼 수고하시고요. 내일 뵐게요.”

“그래. 들어가, 지훈아.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사장과 마감조로 일하던 영순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시간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슬아슬한데?”

아슬아슬하다?

지훈은 버스가 끊기는 것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집에서 걱정하는 부모님을 떠올린 것일까?

“빨리 가자. 진짜 늦겠어.”

바로 발걸음을 옮기는 지훈.

재빨리 다가오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지훈이 간 곳은 집이 아니었다.

“후! 사람 많다……!”

인사동 골동품 거리.

수많은 전통문화와 고미술품이 살아 숨 쉬는 곳.

그 외에 전통찻집과 화구류 상점도 많다.

특이하게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은 이 거리.

노란 머리를 헤치며 지훈은 자신의 단골 가게로 빠르게 접어들었다.

“우와!”

지금 지훈이 보고 있는 것은 인사동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옛 물건.

흔히 골동품이라고 불리는 것.

지훈은 학교에서나 아르바이트 할 때와는 달리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물에 집중했다.

시대 불문!

종류 불문!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 물건이라면 무조건 OK!

수많은 가게를 오가며 지훈은 계속해서 눈알을 굴렸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그거? 두 장은 받아야 하는데…….”

두 장이라는 말에 지훈의 얼굴이 급시무룩해졌다.

지훈이 고른 물건은 작은 백자 하나.

조선 시대에 쓰인 찻잔으로 보이는 다기.

샅샅이 훑어봤지만, 이것보다 더 끌리는 것은 없었다.

“그래. 네 사정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비만 주고 가져가.”

“진짜요?”

지훈의 얼굴이 급밝아졌다.

지훈은 나름 이 인사동 골동품 거리에서 유명인사에 속했다.

교복을 입고 골동품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인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중학생 아니 그 이전부터.

옛것에 대한 눈이 떠졌을 때부터 들락날락한 곳이다.

다른 아이들은 놀이터 그리고 캡슐방을 갈 시간에 지훈은 박물관, 민속촌 그리고 이 골동품 거리를 찾았다.

“그래. 인석아.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감사합니다. 아저씨!”

지훈은 가방에 꼭꼭 챙겨 두었던 월급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책상 위에 오늘 받은 아르바이트비 120만 원을 고스란히 내놓았다.

“그럼 아저씨, 다음 달에 봐요!”

“그래. 잘 가라!”

지운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혹여나 백자를 떨어트릴까 덜덜거리는 손으로 가방에 넣고 가슴 품에 꼭 안았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옛것에 환장하는 지훈.

그렇다.

지훈은 골동품 오타쿠였다.



* * *



살금살금.

지훈의 집, 한남동 단독주택.

높은 담벼락과 넓은 마당까지 존재하는 부의 상징.

그런 집으로 들어가는 지훈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럽기만 했다.

과연 친구들의 예상대로 얹혀사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재벌가 사생아라도 되는 것일까?

“김지훈!”

화들짝!

“어……. 엄마!!”

“너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학교 야자 끝나고 바로 오는 길인데?”

태연스럽게 거짓말하는 지훈.

하지만 지훈의 엄마, 강수영 여사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번에 눈썹이 휘어지며 지훈을 노려봤다.

“너 솔직히 말해. 아까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움찔.

지훈은 몸을 떨었다.

얼굴도 살짝 굳어져 어색한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이내 실수를 눈치채고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너 가방에 든 거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가슴에 고이 품은 가방을 서둘러 뒤로 숨겼다.

한눈에 봐도 ‘나 뭐 숨기고 있어요’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모습.

“김지훈! 너 설마 또!”

그런 지훈의 반응을 보자 수영은 단번에 뭐하고 왔는지 눈치챘다.

“죄송해요! 엄마!”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지훈이 향한 곳은 집 안이 아니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외딴 창고.

그곳으로 뛰어가는 지훈의 모습을 본 엄마의 가슴은 미어터졌다.

“저것이 또 고물을 가지고!”

지훈은 사생아, 친척 집에 얹혀사는 것도 아니었다.

강수영이 제 배 아파 낳은 친아들.

하지만 그 친아들이 이상한 데 꽂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훈이 들어왔어?”

문이 열리면서 지훈의 아버지 김수혁이 나왔다.

“당신이 어떻게 좀 해 봐요. 애가 엇나가고 있는데…….”

“그래도 건전한 취미이지 않소? 다른 애들이 극성맞은 것에 비하면 우리 애는…….”

“아니요. 이번엔 저것들 다 정리해야겠어요.”

싸늘히 말하는 수영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단호했다.

지훈이 집 안에 골동품을 들이고 나서 생긴 월례 행사.

버리려는 자와 막기 위한 자의 싸움.

여리고 착한 탓에 늘 아들을 이기지 못했던 수영의 얼굴에 서슬 퍼런 칼날이 서렸다.

‘이거……. 수영이가 작정한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며 자신마저 오싹해지던 수혁은 지훈의 편을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 알아서 하시구려.”

수혁은 심상치 않은 수영의 모습에 이번엔 어떻게든 끝을 맺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으아!!!”

지훈은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찻잔을 꺼냈다.

낡디낡은 것이지만 조심스럽게 먼지를 닦아 내고 한쪽 진열장을 열었다.

“드디어!”

저번 달 월급으로 산 젓잔 받침대와 이번에 얻은 찻잔은 누가 봐도 한 세트였다.

“으아 좋다!”

창고 한구석에 위치한 앤티크한 소파에 누워 진열대를 두루 살폈다.

그동안 지훈이 모은 그만의 보물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마치 신상을 보는 여성의 심리처럼, 지훈의 가슴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는……. 이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쓰레기라고 할 수 있어?”

약간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수영의 착각도 한몫을 했다.

처음 멋모르고 이것저것 사 들고 오던 지훈.

초창기에 모은 것들은 수영이 짐작한 대로 그럴싸하게 만든 이미테이션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내공이 쌓이자 점점 지훈의 눈은, 가짜를 가려 낼 수준을 넘어서 전문가도 껌뻑 속이는 물건들을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의 백자도 마찬가지!

저 백자가 진짜 조선 시대 우리네 조상들이 애용했던 다기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커다란 자기가 대부분인 백자의 특성상 양반가들이 애용한 백자 다기는 희소성마저 있는 셈!

“칫, 이제는 전부 귀한 아기들만 남았는데…….”

엄마의 반응을 보건대 이번에도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동안의 전쟁으로 정교하게 만든 가짜를 넘기는 것으로 무마해 온 지훈!

이젠 그 방법이 안 통한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한 달간 버티고 이번엔 협상용으로 껍데기를 잔뜩 사 둬야겠어.”

껍데기.

그것은 지훈이 정교하게 만든 이미테이션을 뜻했다.

이번에도 지훈은 엄마를 속이기 위해 궁리했다.

하지만 이걸 알까?

지훈의 엄마는 한 달 동안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 * *



“지훈아! 너도 같이 가자니까?”

“그래! 어제 대박이었어!”

“진짜 고오급 시계가 고전 게임으로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어!”

지훈을 꼬시는 친구들의 말엔 에닉스사가 새로 내놓은 신작 <레전드>에 관한 내용뿐이었다.

“분명히 너도 금방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거야.”

“맞아. 다른 게임처럼 그냥 사냥이나 레벨 업이 전부가 아니라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니까.”

“하고…… 싶은 것?”

처음으로 지훈이 친구들의 말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은 지훈의 모습에 친구들은 더욱 열심히 설득했다.

“그래 이거 봐 봐.”

그리고 핸드폰으로 하나의 동영상을 틀어 줬다.

더 디그 : 유적탐색자


지은이 : 대두마신

제작일 : 2016.12.20

발행인 : ()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유리

표지 : 김하영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증산동, 두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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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26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