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놈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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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 프롤로그



메마른 대지에 붉은 꽃이 피어난다.

온 대지를 뒤 덮을 듯이 붉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시야가 닿는 곳까지 붉은 꽃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붉은 꽃은 결코 향기롭지는 않았다.

역겨운 비릿함이 온 대지와 하늘을 뒤엎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 화려하지만 덕지덕지 피가 묻어 있는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몸에서도 그 역겨운 비릿함 붉은 꽃 향기가 나고 있었다.

무심하지만 지겨운 눈빛.

남자는 회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 앞에 펼쳐진 세상을 마주 보고 있었다.

“진정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그 빌어먹을 신이라는 자가 바랬던 일을 해 주었으니 나는 돌아가야 할 때이지 않겠나?”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폐하. 저희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폐하라고 부르는 남자를 무심히 바라본 황제는 피식 웃었다.

손에는 붉은 피가 가득했고 자신의 어깨와 몸 주위에는 자신의 손에 의해 죽어간 원혼들이 뒤덮었다.

물론 그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 막은 존재를 죽이고 또 죽이며 걸어온 길이었다.

그 피가 가득한 길을 지금까지 걸어와서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비록 그 길을 처음에는 떠밀리듯이 걸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직접 걸어갔으니 그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황제는 그 험난한 역경을 거쳐 그 누구보다 강해졌다.

황제는 정말이지 강했다.

신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황제의 힘에 놀랄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자신을 배반한 인간들도 황제 앞에서는 한 점 핏덩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마족도 천족도 그리고 신이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도 이계에서 온 황제 앞에서는 굴종하고 굴복하며 스스로의 생명을 갈구할 뿐이었다.

오직 황제의 선처만을 바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황제는 그런 것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절대자가 된 이계에서 온 황제는 이제 돌아가고자 했다.

부도 여자도 권력도 모든 것을 다 소유했지만 마음 속의 공허함만은 채울 수 없었다.

“돌아가야지. 암! 돌아가야 하고 말고! 비록 돌아간다고 나를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다고 해도 돌아가야 한다.”

황제는 자신의 검을 땅바닥에 내려 박았다.

강력한 힘에 지진이 난 듯이 땅들이 뒤흔들렸지만 황제의 검은 대지 아래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그렇게 대지에 박힌 황제의 검을 황제는 힘을 주고서는 그대로 꺾어 버렸다.

과직!

그 어떤 존재도 황제의 검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그 단단하다는 드레곤 본 조차도 황제의 검 앞에 갈라져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황제의 힘에는 동네 대장간에서 대충 만든 철검처럼 반으로 부러져 버릴 뿐이었다.

“그래. 이제 돌아간다. 약속을 지켜라. 이계의 신이여.”

이계의 신은 황제의 말에 약속을 지켰다.

황제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고 차원의 문이 열리며 황제는 그 차원의 문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창수는 이계로 떨어져 이계의 절대자가 된 뒤 마침내 그토록 바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



“야! 너 이계 가봤냐?”

“예?”

이계를 가봤냐는 질문에 영문 모를 눈빛이 흔들렸다.

“이계 말이다! 이계! 이계 가봤냐고?”

질문을 받은 청년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어디 이름 모를 촌 구석 지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아! 아니요. 아직 못 가봤는데요.”

“이계도 안 가보고 뭐 했냐! 하여간 안 가 봤으면 말을 말아! 크으!”

회상에 잠긴 듯이 소주잔을 비우는 남자는 한 겨울에도 춥지도 않은지 얇은 티 하나를 입고 있었다.

그나마 그 티 안의 굵고 탄탄한 근육들이 남자가 꽤나 험한 일을 하는 것을 짐작케 했다.

남자의 근육은 헬스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근육이 아니라 노동으로 만들어진 그런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강인해 보이는 근육이었다.

“내 말 한 번 들어 봐라! 내가 말이다! 이계를 갔었는데. 거기서 죽을 고생을 많이 했거든. 막 칼이 난무하고 막! 하! 말을 말자! 말을! 내가 말 재주만 좀 있었으면 막 소설도 쓰고 방송도 나가고 했을 껀데! 아!”

“아! 예!”

청년은 남자의 말에 이계라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어디 외국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청년은 알지 못했다.

그 남자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친 놈 취급을 당하는 남자라는 것을 말이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천성은 꽤나 착하다고 주변에서 저 버릇만 없다면 괜찮을 사람이라 여겨졌다.

언제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의 이름은 창수라고 했다.

그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술만 마시면 그 놈의 이계이야기를 꺼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검 한 자루를 들고 하루 종일 수백마리의 돼지들을 썰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가 백정인 줄로만 알았다.

창수는 힘이 장사였다.

돈이 떨어지면 막노동을 할 때가 있었는데 남들을 들지 못하는 것을 창수는 번쩍번쩍 들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힘 쓰는 일은 창수의 몫이었지만 창수는 그런 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하여튼 힘이 장사인 그는 몸도 날래서는 언젠가는 건물 위에서 떨어지는 쇠파이프에 깔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곧잘 구해주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슬아슬한 높은 곳도 겁도 없이 평지처럼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일을 하기도 일수였다.

“오늘 수고했어. 몇 푼 더 넣었어. 술 좀 그만 마시고. 자네도 장가 가야지.”

“아! 됐습니다! 장가는 무슨! 크으! 빳빳하네.”

하지만 창수는 그렇게 번 돈을 술 마시거나 PC방을 가거나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딱히 여행도 즐겨하지 않는 듯 했다.

한 번은 창수에게서 몇 번 술을 얻어 마신 사람이 왜 그러고 사냐고 묻자 창수는 대답했다.

“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막 사람도 죽고 하는 걸 너무 많이 봐가지고 내가 별로 의욕이 없다. 이계에서 말이다. 한 번 들어 볼래?”

“됐어! 됐어! 술이나 한 잔해!”

“들으면 재미있을 건데! 크으! 내가 그 때 그 놈아 한테 말 잘하는 법을 배워 왔어야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도 계속 듣다 보면 재미가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창수를 허풍쟁이 창수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것 빼고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적어도 남에게 해될 짓은 하지 않았다.

“야! 나한테 맞으면 그냥 죽어. 그러니까 내가 어찌 약해 빠진 사람 패냐! 그러니까 나 건들지 마라. 알았냐?”

창수는 허풍이 심했고 사람들은 귀여운 허풍쟁이에 웃고 넘어갔다.

어차피 술값은 창수가 내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창수는 일이 있는 날에는 일을 하고 일이 없는 날에는 술을 마시거나 PC방에 있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창수는 그리 못생기지는 않았다.

아니 제법 준수하게 생긴 외모였지만 여간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생긴 본판이 괜찮았고 몸이 워낙에 좋았기에 여자들이 다가오기는 했다.

“내가 이래뵈도 김태희보다 백배는 더 이쁜 것이 꼬리를 쳐도 안 넘어갔다. 이계에서 여자가 한 트럭이 쌓여서 눈에도 안 찼다.”

“미친 놈.”

여자들은 창수의 주제 파악 못함에 욕을 하며 떠나갔다.

그래도 창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자가 아닌가 하는 말도 흘러나왔지만 간혹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창수의 거대함에 소문이 나서는 여자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창수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듯이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 듯 했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술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시고 돈 떨어지면 일을 한다.

그 것이 창수의 삶이었고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창수는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야! 나 이계 갔다 온 남자다. 이계! 이계 안 가 봤음 말을 마라!”

“예! 예! 그런데 이계에서 뭐했어요?”

“뭐하기는! 막 날리고 다녔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가 다시 살아와도 나한테는 안 된다!”

“예! 크크크크!”



오늘도 다 낡은 운동화를 구겨 신고 동네 순찰을 도는 창수의 눈에 어린 병아리들 같은 유치원 아이들이 손을 들고서는 행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창수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래도 자식은 가지기 싫다며 여자들을 멀리하는 것을 보면 웃겼지만 아무튼 그렇게 자발적으로 행단보도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사고 때문이었다.

끼이익!

과속에 신호위반을 하던 차 한 대가 어린 아이들이 길을 건너는 행단보도를 덮쳤을 때 창수가 몸을 던져 아이를 구했다.

물론 창수의 몸은 미쳐 차를 피하지 못하고서는 사고가 났지만 창수는 자신의 몸보다 아이를 먼저 더 걱정했다.

“어디 안 다쳤니?”

“흐어엉! 엄마! 앙앙!”

눈물을 흘리며 우는 아이에게 창수는 호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서는 물려주고서는 베시시 웃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괘…괜찮습니까?”

사고를 내고 당황해서 내린 남자에 창수는 험악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울려고 하는 아이를 보고서는 입을 열었다.

“운전 조카치 하네! 확! 마 그냥!”

창수는 이계에서도 그 놈의 마차들이 왜 여자하고 아이들만 덮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차가 움푹 들어갈 정도의 사고였지만 창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털 털고서는 사고를 낸 당사자에게 오만원 한 장 받아서는 소주를 마시고는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창수가 술에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술을 마시면 그 놈의 이계 이야기를 하니 술에 취한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 길바닥에 꼬구라져 있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수는 근심걱정 없이 살면서 양촌동의 명물 아닌 명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3.



오늘도 어김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창수는 시장바닥에서 냉이 캐서 파는 할머니에게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사서는 옆에 달라붙었다.

“할매! 이거 드세요.”

“응? 아이고! 고맙네.”

나이를 먹으면 염치가 없어져 간다는 것인지 아니면 삶이 고단한 것인지 할머니는 창수가 건넨 빵과 우유를 받아들었다.

“이거 팔면 얼마 번데요?”

“얼마 벌긴 울 손수 밥 한그릇 맥이제.”

창수는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나 현실이나 서민들 살아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었다.

‘하긴 나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니. 크크!’

창수는 방금 빵과 우유를 사느라고 돈을 다 써버린 것에 웃음을 흘렸다.

한 때는 세상 하나를 다 가져 본 사내였다.

창고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고 방마다 아름답게 치장을 한 여인들이 들어 있었으며 수만 명의 정예 병사와 수백만의 백성을 지배했던 사내였다.


쎈 놈

 

지은이 : 현진현우

제작일 : 2016.10.06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배성림림

표지 : 이가영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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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210-8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