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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프롤로그>
몬스터 강림사태인 퍼스트 헬게이트가 생겨 난지 약 3년 째.
23살의 연우는 탐색 헌터였다.
탐색헌터란 말 그대로 전투계열 헌터를 서포트하는 헌터로 정보와 서포트로 전투계 헌터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게 서포트 해주던 헌터의 명칭이었다.
여기까지가 정상적인 부름이고 실제로 대부분의 탐색헌터는 기생충, 탐색충이라 불리며 전투계 헌터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정보는 중요한 문제인데 왜 그런 취급을 당했는가 하면 전투헌터에 비해 유별나게 많은 탐색헌터의 수와 정보의 수요성에 제대로 된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몬스터 때문에 시국이 흉흉했던 것도 크게 한몫했다.
한번 알려진 정보는 가치가 떨어지는데 반해 탐색헌터들은 계속해서 지속되는 가치를 보장받기를 원했으니까.
분노한 탐색헌터들이 파업을 외쳐도 시국이 흉흉하고 그들을 대신할 탐색헌터는 얼마든지 생겨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게 냉전 속에서 묵묵히 탐색헌터로써 활동하던 연우는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전남지방으로 탐색헌터들을 데리고 출장을 나갔다.
강한 몬스터가 많이 없고 보호자가 분명히 있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걱정 없이 출발했건만 사실은 많은 수를 자랑하는 탐색헌터를 혐오하고 연우를 눈 밖에 난 가시로 취급하는 몇몇 상위무리의 함정이었다.
그 사고로 인해 조사에 참여했던 30명의 탐색헌터는 모두 전멸.
연우 또한 그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치명상으로 죽어가던 도중 그의 눈에 보였던 건 이유모를 오색의 신기한 폭발이었다.
그 후 그는 지구가 아닌 룬 대륙에서 정신을 차렸다.
살아남고자 한다면 무슨 짓이든 못할까,
룬대륙의 호전적인 종족이라 불리는 마족 중에서 악랄하기로 소문난 도적집단인 헬 하운드에 떨어졌을 때도 노예를 자처해 목숨 줄을 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몬스터, 피의 광란이 펼쳐지는 전쟁터.
그 어떤 지옥보다도 끔찍한 장소에서도.
기지와 근성, 집념을 발휘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헬하운드의 마족들을 따라 로드 드래곤 아르테니스의 레어를 습격했다가 그녀에게 붙잡혔다.
습격당시의 마족은 모두 전멸했지만 그는 운이 좋아 목숨을 건졌다.
이후 자신을 죽이려 하는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그런 그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그녀는 연우를 죽이지 않고 그의 과거에 대해 물었다.
룬 대륙이 아닌 지구에서의 삶.
그것은 아마 그녀에게 큰 흥밋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거나, 결론적으로 로드 드래곤 아르테니스는 연우에 대한 적대심이나 하찮음을 천천히 버리고 손님으로써 대해주기 시작했다.
처음 이 세계인 룬 대륙에 넘어왔을 때가 23살 즈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 세계에서 13년가량을 버텼다.
연우의 손에 남은 것은 하프드래곤으로써의 육체, 13명의 정령왕과의 계약의 각인, 그리고 몬스터나 룬 대륙에 대한 상당한 지식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새로운 가족까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에 수많은 것들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수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가장 소중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지구로 돌아왔다!
<귀환>
깎아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마치 자연 그대로의 석벽을 깨끗하게 다듬었다는 느낌이 드는 공간.
넓이만 따지면 거의 야구장을 방불케 하는 크기는 이곳이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작은 불빛들이 마치 태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사방을 환하게 밝혀 주는건 현대의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미스테릭한 모습이었다.
딱!
조용한 공동에서 작은 돌 부딪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넓은 공동의 한켠에 비치된 작은 테이블이었다.
붉은색의 코끼리 형태를 지닌 말이 검은색의 수레 형태를 지닌 말을 쳐낸다.
“고민이라도 있는 게냐? 한계를 넘은 이후 네 근심 있는 표정은 처음이로구나.”
낭랑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작은 소녀의 물음이 넓은 공동에 작게 울려퍼졌다.
귀여운 목소리 사이에 있는 절도 있는 기품에 혹시 귀족이나 황족이 아닐까 하는 반사적인 의문을 품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딱!
작은 물음에 돌아온 것은 연이은 돌 소리였다.
기다렸다는 듯 붉은 코끼리형태의 말을 병사형태의 말이 덮어씌우고 처냈다.
“아뇨,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한참을 침묵했을까, 담담한 미성의 대답이 작게 흘러나왔다.
대답을 한 이는 남성이었다.
짧은 머리, 180중반 대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적당히 잡힌 체격, 그리고 이기적일정도의 잘생긴 외모에 강직한 느낌이 드는 그는 분위기와 다르게 따스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이가 소중하다는 듯이 말이다.
남성의 이름은 박연우였다.
“장군이로구나.”
“허..”
대장 말을 포위하는 붉은 말들을 보며 연우가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그 수는 생각 못했네요.”
연우가 졌다는 듯 부드럽게 말하자 그의 앞에 앉은 은발의 소녀가 예쁘게 웃는다. 그리고는 방금까지 두던 장기는 이제 관심 없다는 듯 연우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연우의 머리에 손을 얹어 품으로 당겨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우의 나이는 36세.
외향으론 20대 후반정도 되는 체격 건장한 청년, 반대로 소녀는 아무리 잘 쳐줘봐야 16세의 소녀다.
하지만 연우는 그녀의 이러한 행위가 자연스럽다는 듯 그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소녀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을 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소녀가 훨씬 어려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님.”
연우의 작은 목소리에 소녀는 기분이 좋은지 부드러운 손길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지구로..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직 있는 게냐.”
그녀의 물음이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연우는 자신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버린 이 공동의 주인이자 현재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끌어안고 있는 로드 드래곤, 아르테니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니 말이다.
“그 곳에 네가 찾던 것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을 터. 하물며 다시는..”
티가 나진 않지만 애원어린 목소리라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애정 어린 손길에 연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미안해요, 꼭 가야만 할 일이 있어요.”
말끝을 흐린 연우의 목소리가 순간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지 굳은 의지를 담은눈동자로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속에서 올라올 한마디를 억지로 삼켰다.
‘약속할게요. 오래 지나지 않아서...다시 만날 겁니다. 제가 반드시 불러 올 테니까요.’
그렇게, 연우는 이 세계에 와서 가족이 되어준 로드 드래곤 아르테니스를 떠나게 되었다.
종아리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긴 은발,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바다를 들여다보는 것 같이 깊은 푸른 눈동자.
여신에 비견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를 지닌 16살 정도의 외모를 지닌 소녀.
로드 드래곤 아르테니스는 현 세계에 존재했던 시조 드래곤의 유일한 1세대 후손이자 연우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다.
세계 각지에 있는 다른 일반 드래곤과 달리 독립적인 존재의 명칭과 책임을 부여받은 그녀는 레어를 쉬이 떠날 수 있는 입장이 분명히 아니었다. 같은 로드드래곤이 한 명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그녀는 시대에 남은 마지막 로드 드래곤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도 생명체는 교류와 정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짧은 생도 아니고 영생에 가까운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심했다.
정에 목말랐지만 로드 드래곤이라는 입장과 ‘룬’대륙에서 완벽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 때문에 친분을 쌓을 수도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의 문을 닫고 싸늘한 성격을 연기했다.
그 것은 그녀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에게 ‘룬’ 대륙의 출신이 아닌 타차원의 존재인 연우와의 만남은 그녀 스스로 억누른 애정을 갈구하는 감정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 점은 매일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연우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둘은 그 어떤이 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고 의남매의 연을 맺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모자의 관계가 더 어울릴듯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치 않는 문제도 있고 외형상의 문제도 분명히 있던 터라 연우로썬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누님.”
치렁치렁한 로브를 정리하며 홀로 걸어 들어오는 연우를 보며 아르테니스가 부드럽게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런 그녀의 손길을 따라 푸른색의 가루 같은 것이 수놓아지듯 퍼져 나간다.
“채비는 다 하였느냐.”
말을 하는 그녀의 주변으로 연녹빛과 푸른빛의 마나들이 정신없이 일렁이며 사방의 마법진을 빛내는 게 보였다.
수십, 수백의 마법진은 1차원에서 2차원, 3차원까지 이어진 고등의 마법진으로 중간계의 마법사들이 봤다면 입에 거품을 물만큼 어마어마한 구조인 것은 확실했다.
하프드래곤으로 변이하면서 간단한 초급마법정도는 사용 할 수 있게 된 연우라도 이 마법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그녀는 이 같은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왔던 모양이다.
다른이에겐 싸늘하면서, 연우에게만은 한없이 약하고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한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먹먹한 감정이 치고 올라오자 그녀가 걱정 말라는 듯 힘없이 웃어보였다. 지친 기색이 가득하지만 정말로 연우를 위한 미소였다.
곧 죽어도 연우만을 걱정할 바보 같은 누님이다. 지금 사태라면 어떻게 떠날 수 있냐며 배신감에 치를 떨어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연우가 신경 쓸 가봐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심려 말거라, 너만 웃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널 위해 노력해줄 수 있으니.”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반사적으로 이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 * *
차원이동은 초 고위의 영역이다.
시조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은 그녀라 해도 쉬운 영역이 분명히 아니기에 그녀의 일생에 단 한번 연우를 넘어가게 해주는데 모든 것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우우웅!!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율과 작은 춤사위에 마법진들이 자동적으로 공명하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우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 그녀를 지나치고 마법진의 중앙에 섰다.
그리고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츠츠츠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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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학 개론
지은이 : 악마꼬리
제작일 : 2016.04.0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정재희
표지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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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6005-8-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