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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3,800원, 158권 펀딩 / 목표 금액 2,000,000원
<이름보다 오래된>으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3-06-01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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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고라니가 죽어야 하는 것일까? 야생동물을 멸종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도, 그로부터 지키는 것도 사람이다. 우리는 공존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본문 중

★인간이 자초한 생태 문제를 직시해온 《묻다》 문선희 작가 10년의 역작

★유해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 사이, 사라지고 있는 고라니의 얼굴들


“어쩌면 그것은 구조 요청이었을까?”
    어느 이른 아침, 차 앞에 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멈춘 차창 너머에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망설이듯 돌아보던 고라니는 들개에게 쫓겨 홀연히 사라졌다. 잠깐이었지만 강렬했던 이 순간은 문선희 사진작가가 고라니를 촬영한 계기가 됐다. 노루였어, 고라니였어? 누군가의 질문에 문득, 이름만 알았지 이 동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은 고라니를 둘러싼 현실을 마주한 긴 여정의 기록이다. 고라니는 한국에서 흔하디흔한 야생동물이며 농촌에 해를 끼치는 ‘유해야생동물’로 관리된다. 한 해 포획과 로드킬로 죽는 수가 25만 마리에 달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서식지의 상당 부분이 난개발로 침범당했기 때문이다. 고라니를 찾아 첩첩산중까지 다니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그 삶이 얼마나 인간의 등쌀에 시달리고 있는지 체험했고, 인간 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개체 수 조절 정책의 부조리에 의문을 품었다. 고라니는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으로,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절멸은 시간문제다.
    이 책에는 문선희 작가가 10년간 만난 고라니 200여 마리 중 50여 마리의 얼굴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인간이 고라니를 향해 폭력을 가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국립생태원 등 ‘비무장지대’에서 비로소 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고라니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작가의 눈을 들여다볼 때까지 몸을 낮춘 채 하염없이 기다려 찍었다. 생명체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는 단 하나뿐인 얼굴들이다. 생명은 대체 불가능하고 불가역적이며 인간의 이해와 논리를 넘어서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이 얼굴들을 보고도, 이들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작가는 우리 사회가 하찮게 여겼던 생명의 의미를 일깨움으로써, 생태계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고자 한다.
    구제역·조류 독감 매몰지를 기록한 《묻다》,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등의 전작을 통해 생태 문제와 역사적 비극을 직시해온 문선희 작가의 신작으로,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 작가 정혜윤과 장혜령, 생태학자 김산하가 이 작업을 해설하고 지지하는 글을 실었다.

★“인간과 어떤 종이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 해서 그들을 유해하다고 한다면 그 목록엔 세상 모든 종이 포함될 것이다. 유해하다고 하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라.” -김산하, 생태학자‧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치러지는 전쟁의 의미를 다시 묻는 질문들


매년 유해야생동물 구제사업으로 목숨을 잃는 고라니는 약 18만 마리다. 로드킬당하는 수는 약 6만 마리다. 환경부의 <야생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는 약 45만 마리의 고라니가 사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매년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는 셈이다.
    이 와중에 고라니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간과되곤 한다. 고라니는 한반도와 중국에만 사는 토착종인데, 북한과 중국 일부에서도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전 세계적으로 남은 개체수가 사자·하마·치타·코알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정도에 따라 지정하는 적색 목록에 ‘취약’ 수준으로 등재되어 있다.
    작가가 고라니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이 웅성거렸다. 고라니의 생살여탈권을 쥔 지자체는 농민의 항의를 두려워했지만, 생태학자들의 경고는 무시했다. 사냥 허용 범위를 넓혔고 고라니 한 마리당 3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매년 포획되는 고라니가 늘어나서 2015년부터는 현상금 총 지급액이 고라니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보다 많아졌다. 이제 고라니들은 각자 1만5천 원어치 농작물을 먹은 혐의(2018년 기준)로, 3분에 한 마리씩 총에 맞는다. 이런 부조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는 생명의 편에서 묻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과연 야생동물의 숫자를 적절히 조절할 능력과 지혜가 있는 걸까. 태곳적부터 살아온 영역을 침범당하고도 오히려 불청객으로 내몰린 고라니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란 무엇일까. 방향을 잃고 살생만 남은 문명과 야생 사이 전쟁터가 작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절박함이 사라지고 있는 고라니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만난 몇몇 아기 고라니들 덕분에 작가는 “마치 베일이 벗겨진 듯” 고라니의 얼굴에 눈을 뜨게 되었다. 넉살 좋은 ‘초코’를 다른 고라니들과 구분하게 되면서 그 얼굴들이 다 다르고, 단 하나뿐임을 깨달았다.
    고라니 초상 사진 작업은 생명을 기록하는 일인 동시에 사진작가로서의 철학적 질문들을 풀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진은 언어를 초월한 마주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작가는 고라니가 직접 초대하는 사진을 찍고자 했다. 고라니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어린 고라니들의 눈높이에 맞춰 똥이 뒹구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기어 다녔다. 살인 진드기를 막으려면 무더위에도 두터운 방진복을 입어야 했다. 고라니를 놀랠 수 있는 플래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장비만을 사용했다.
    국립생태원에서는 강한 야생성과 단단한 송곳니를 지닌 수컷 고라니들과 대치하기도 하며, 작가는 인간의 언어와 앎을 내려놓고 동등한 생명체로 서로를 마주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작가가 깨친 요령은 오직 하나였다. 주의를 기울이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거리는 느리게 좁혀졌고 변화는 미묘했다. 마침내 고라니가 자신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는 순간, 작가는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하나하나가 작은 기적이었다.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과도 같은 책.” -정혜윤, 작가‧CBS 라디오 피디

★생명의 편에서 윤리적 책임을 요청하는 ‘타자의 얼굴’과 사진의 힘


이 책에 실린 고라니의 얼굴들이 첫눈에는 그저 순수하거나 평화로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눈을 뜨면, 더 이상 그런 마음만으로는 볼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고 구조센터로 왔던 아기 고라니들은 젖만 뗀 후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 어미로부터 생존법을 배우지 못한 채, 홀로 살아남아 한다. 작가가 기록한 고라니들 중 과연 몇 마리나 무사히 어른이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구조센터조차 고라니 구조와 포획을 동시에 하는 생사의 교차점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와 방식으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딜레마가 고라니를 둘러싸고 있다. 그 점을 느끼는 독자에게 이 얼굴들은 레비나스가 말한, 윤리적 책임을 절실하게 요청하는 ‘타자의 얼굴’로 다가올 것이다.
    고라니는, 고라니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야생동물의 절멸은 한순간 급격히 진행된다. 한 개체군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하고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면, 전염병 등 단 하나의 부정적인 요인만 발생해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19가 인간을 강타한 것처럼, 호주 산불이 코알라를 위기에 빠뜨린 것처럼, 고라니에게도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한국에서 고라니가 절멸한다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고라니를 흔하고 하찮은 존재로 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레이첼 카슨의 말을 빌려 이 책은 거듭 애틋하게 묻는다.





추천의 말

문선희 작가의 《이름보다 오래된》에는 이름보다 오래된 ‘응시’가 있다. 동물의 눈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고요함이 가득하고, 인간중심주의에 안주했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마음이 시키는 바에 따라 자신이 하기로 한 일을 긴 시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 찍었기에 고라니 한 마리 한 마리가 사랑받는 생명체로 보인다. 이런 저런 자신만의, 그러나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생명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라니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진정한 위안이 되었다. 사랑이 필요 없는 세상은 없다.(중략)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과도 같은 이 책이 열어놓은 문을 따라 들어가기를 바란다. 나처럼 이 지구를 유일한 서식지, 자신의 유일한 행성으로 알고 살아가는 생명들의 앞날에 어떤 더 나은 일이 가능할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태어나길. 다시 말하지만, 사랑이 필요 없는 세상은 없다.
-정혜윤, 작가‧CBS 라디오 피디

두 개의 큰 귀는 사방의 소리를 향해 열린 듯 쫑긋 서 있다. 뭉툭한 검은 코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다. 짧고, 부드럽고 촘촘한 잿빛 털이 온몸을 회오리치듯 뒤덮고 있다. 마지막으로, 맑고 검고 깊은 두 눈, 두 눈이 이편을 지그시 응시한다.
    오래전 사진가가 서 있었을 바로 그 자리에서 뒤늦게 나는 이 미지의 생명을 마주 본다. (중략)
    그래서 사진가는 광주의 골목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녀에게 표현이란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고, 응답받지 못한다 해도 보내고 마는 한 통의 편지였으므로. 또한 그래서 사진가는 고라니에 이끌렸을 것이다. 작고 하찮은, 보잘것없는, 없어져도 그만인, 존재하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그 짐승들의 우주가, 언젠가 그녀가 광주에서 마주한 인간들의 우주와 다를 바 없이 대등함을 알았기에.
    깊은 밤, 숲에 고라니가 있다. 바람결에 숲이 흔들린다. 그 기척에 일순 고라니가 멈춘다. 고라니가, 고라니 안의 누군가가 바라본다.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도 하다. 그 상을 내가 볼 수 있다면, 지금 나는 무덤 속인가, 내 살은 썩었는가. 썩어서 흙이 되었는가. 그의 두 눈은 그래서 슬펐는가.
    그의 눈길이 마침내 가닿은 곳에는 나 아닌 인간의 시원(始元)이 있었다. 바라봄으로, 그는 내 안의 시원을 나타나게 했다. 그것은 내가 영영 몰랐던 나의 영혼처럼 광활한 대륙이었다. 펄럭이는 나의 영혼은 나를 대신하여 그를 향해 응답하고 있었다.
-장혜령, 시인‧소설가

우리와 어떤 종이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 해서 그들을 유해하다고 한다면 그 목록엔 세상 모든 종이 포함될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펠리컨과 돌고래, 나무를 깎아 먹는 비버와 흰개미, 과일을 먹는 원숭이와 새, 곡식을 갉는 곤충들 모두 사살의 대상이지 않겠는가? 심지어는 사람을 먹는 동물이 아직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세상 사람 누구나 우리처럼 ‘유해’의 딱지를 붙여가며 죽여 없애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유해하다고 하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라. 그렇다. 그들에게도 다 얼굴이 있다는 것부터 새롭게 인지해야 한다.
    사진이 뭔지도, 자신이 찍히는지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망울 하나만은 공통된다. 그 외에는 조금씩 다르다. 느껴진다.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고라니라는 종의 보편성과 각 개체의 특수성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 우리는 이들을 싸잡아 개체군이라 부른다. 많고 적음이라는 척도에 따라 그저 그 수를 조절해야 하는 무엇으로. 하지만 ‘군’이 되기 위해선 일단 ‘개체’이어야 한다. 하나의 완성된, 고유한 개체. 그 개체가 나오기 위해 부모는 무던히 노력했고, 슬픔과 기쁨, 평화와 놀라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엿한 하나의 고라니가 된 이들이다. 생명의 위협이 도처에 널린 곳에서 당당히 자란 이들의 정면상은 마치 독립운동가들을 보는 듯하다. 순수하고 용감하게 세상과 맞서며 삶을 펼친 영혼들의 초상이다.
-김산하, 생태학자‧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편집자의 말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어린 고라니들의 첫인상은 귀여움일 것입니다. 겁을 먹은 듯한 얼굴, 장난기가 엿보이는 얼굴, 천진하고 느긋한 얼굴… 고라니의 얼굴을 이렇게 마주하는 건 처음일 텐데, 세상의 모든 어린 동물들처럼 사랑스러워 보이실 겁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바뀌실 겁니다. 이들은 봄에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고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오게 된 고라니들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물려주는 젖병을 빨다가 젖을 떼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여름만 지나면, 아무런 생존법을 배우지 못한 채로, 어미의 생명을 앗아간 위험한 세계에 홀로 내던져지게 됩니다. 구조센터에서 경험한 선의와 평화는 생을 통틀어 단 한 차례, 찰나에 불과했을 겁니다. 한국에서 고라니는 그런 존재입니다. 흔하고 하찮고, 쓸모없이 피해만 입히는 ‘유해’야생동물이죠.
    매년 25만 마리의 고라니가 포획과 로드킬로 죽는다고 합니다. 3분에 한 마리씩 총에 맞고, 도로 1킬로미터당 한 마리꼴로 차에 치입니다. 이 책의 고라니들 대다수는 이미 살아있지 않을 겁니다. 다시 그 얼굴들을 펼치면 죽음의 숫자들이 겹쳐 보이실 겁니다. 슬프지만 복잡한 마음이 드실 겁니다. 내가 한 일도 아니고 농민 대신 고라니 편을 들 수는 없잖아, 라며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기도 할 거고요.
    그래도, 그 정도만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어 최선을 다해 기록한 얼굴들입니다. 어마어마한 수가 사라져가는데도,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이 사회에서 고라니의 죽음은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인간 중심의 문명이 야생에 가한 폭력은 이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구조적이었고, ‘정당’했던 거죠.
    그것을 굳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반려동물만큼 친숙하지도, 백호나 눈표범만큼 장엄하지도 않은데다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취급까지 받는 고라니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이렇게 나직한 이미지가 과연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요.
    편집자이기 이전에 첫 독자로서, 저는 작가의 용기를 믿습니다. 무려 10년이나 고라니들을 찾아다니며 사죄하는 마음으로,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한 ‘쓸모없는’ 시간의 힘을 믿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눈에도 고라니의 얼굴을 품은 그 마음이 보이고야 말 것이라고, 고라니의 눈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비추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결론이나 해답이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리와 논리로 가려버린 것을 드러내는 이야기, 남겨진 것을 돌아보는 이야기, 사라지는 것을 구하려는 이야기. 마음과 생명, 경이와 기적 같은 순진한 단어를 써서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생명체 하나하나를 대접하기 위해 고라니의 얼굴을 오래 매만진 작가의 손길을 부디 자세히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라니의 인상은 날씨를 느낄 때처럼 모든 감각을 통해 한꺼번에 다가왔다.”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작가는 덧붙입니다. “말로 표현하자면 복잡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단순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고 단순한 일. 인간이 처음으로 생명과 생태계의 경이를 마주했을 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았을 겁니다. 이 근원적인 관계로부터 인간은 얼마나 멀어진 걸까요. 잠시라도 《이름보다 오래된》 얼굴들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박우진

목차

인트로_구조 요청

아기 고라니의 초상

마주치다

마음의 잔상
야생의 삶
봄의 탄생
너의 이름들
경계의 전쟁
사라지는 숫자들
자연의 균형추
고라니에게 인간은

마주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틈새의 삶
여름의 어린 생명
연결된 시간들
비무장지대에서
드러나는 얼굴들
생사의 교차점
안녕을 위한 의식

어른 고라니의 초상

추천의 글 (정혜윤, 장혜령, 김산하)

아우트로_생명의 편에서

책 속에서

모든 야생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산을 허물고 도시를 넓히고 도로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고라니의 생태는 존중되지 않는다. 고라니는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다. 태곳적부터 살아온 자기의 영역을 침범당하고도 오히려 불청객으로 내몰린다. 인간의 허영은 고라니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농작물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들만 먹기를 바란다.
    생태계의 포식 행위는 균형 잡혀 있다. 육식동물들은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만큼만 사냥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다르다. 농민들이 화가 나서 달려가면 시스템은 가차 없이 작동한다. 징벌이 미진할 경우 농민들은 거듭 항의할 수 있지만, 징벌이 과도해도 고라니들은 항변할 수 없다.
    고라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란 무엇일까? 나직한 물음이 가슴께에 밀려들었다.
-‘고라니에게 인간은’ 중

초여름이 되면 그해 봄에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를 잃어 구조센터로 밀려든다. 구조된 아기 동물들은 개체를 식별할 수 있는 표식을 매달고 비슷한 종이 모여 있는 방으로 배정된다. 고라니와 노루는 같은 사슴과라서 한 방이다.
    구조센터에 들어온 아기 사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으면 한데 뭉쳐 서로의 몸에 고개를 파묻는다. 고라니든 노루든 이질감 없이 섞여, 체온을 나누고 위험을 분산시킨다.
    아기 사슴들은 인간의 손길을 두려워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구조 상황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우유를 먹이는 일이 반복되면 새끼들은 차츰 상황에 적응해간다.
    재활 관리사들이 따뜻하게 데운 젖병을 들고 들어오면 우유 냄새를 맡은 아기 사슴들이 모여든다.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는 녀석들도 있다. 직접 우유를 먹여보면, 젖병을 빠는 힘이 어찌나 좋은지 젖병을 들고 버티는 게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반응인 것은 아니다. 어떤 아기 사슴들은 유혹적인 우유 냄새와 시끌벅적한 소란에도 그대로 숨어 있었다.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야생성을 간직한 아이들은 체구가 작다. 덜 먹기 때문이다. 재활 관리사들은 그런 개체들도 빠뜨리지 않고 우유를 먹인다. 겁에 질린 아기 고라니가 입을 닫은 채 계속해서 젖병을 밀어내면, 재활 관리사는 그 고라니를 살포시 품에 안고, 입을 살짝 벌려 입속으로 솜씨 좋게 젖병을 밀어 넣는다. 우유 맛을 본 아기 고라니는 그제야 입을 오물거리며 조금씩 젖병을 빤다. 인간의 관심과 정성으로 가녀린 생명이 이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름의 어린 생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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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문선희
현대사회와 역사의 모순을 직시하는 사진작가. 2015년에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구제역·조류 독감 매몰지 100여곳을 기록한 연작 《묻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2019년 책 출간) 2016년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의 언니처럼 초등학생이었던 광주시민 80여명의 기억에 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를 발표했다.(2016년 책 출간) 2019년에는 지난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작업 〈거기서 뭐하세요〉를 발표했다. 신간 《이름보다 오래된》의 밑바탕이 된 고라니의 초상 사진 연작 〈널 사랑하지 않아〉는 2013년부터 10년간 진행해온 작업으로, 2022년에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2021년 제22회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예술이 사회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정서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 내부에 파고든 사회 정서적 서사는 그 무엇보다도 신랄하고 날카롭다”는 평을 받았다.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작가의 “유려한 감성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섬세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공식 홈페이지 https://sunnybymoon.modoo.at/

도서 정보


도서명: <이름보다 오래된>
주제 분류: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에세이 > 사진/그림에세이
사회과학 > 환경/생태문제 > 환경문제
사회과학 > 사회운동 > 환경운동
지은이: 문선희
출판사: 가망서사
판형: 193*283mm / 양장본 / 200쪽 내외
정가: 29,000원
출간일: 2023년 7월 28일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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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83mm / 양장본 / 200쪽 내외 / 2023년 7월 28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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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참여권 (9월2일(토) 오후 1시, 서울 책방죄책감, 15명 한정) ; 판매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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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83mm / 양장본 / 200쪽 내외 / 2023년 7월 28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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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보다 오래된> 도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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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83mm / 양장본 / 200쪽 내외 / 2023년 7월 28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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