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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500원, 277권 펀딩 / 목표 금액 2,000,000원
<사회적응 거부선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3-05-26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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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책 소개

홍은전, 고병권의 강력 추천!

‘이 책을 읽고 불편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잠시 교정지를 미뤄두고 생각한다. 이 책의 작가 이하루 씨를 처음 본 것은 2021년 여름 우연히 열어본 어느 강연 동영상에서다. 강연이 시작되자 무척 작고 마른 체구의 청년이 등장했다. 그는 더듬더듬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썰렁함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별 기대 없이 듣다가 어느새 나는 본래 앉아 있던 자세를 가다듬으며 경청하기 시작했다. 몇몇 장면에서는 주책없이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동이었다.
이하루 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동물해방 운동가이며, 퍼커션 연주자다. 그는 2014년 한국을 떠나 2021년 귀국할 때까지 60여 개국 4만 4천 킬로미터를 히치하이킹하며 걸었다.만약 이 책에서 20대 청년의 해외 여행이 가진 낭만을 기대했다면, 곧장 책을 덮어도 좋다. 이하루 씨의 유랑은 남달랐다. 무척 대담하고 거칠었으며 아름다웠다. 그는 호주에서 덤스터다이빙(쓰레기통 뒤지기), 그리스에서 난민 인권 활동, 이스라엘에서 반성폭력 활동, 유럽 곳곳에서 레인보우 개더링, 미국과 대만 등지에서 동물해방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가 무심결에 버리는 음식들을 그러모아 재활용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국경 바깥의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피의자를 여론 심판에 서게 했고,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가장 억압받는 생명인 ‘축산 동물’에 대한 폭력을 멈추는 일에 앞장섰다.
그의 여정 속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처음 노숙을 할 때 곁으로 다가온 당나귀, 노르웨이 사미족의 순록, 이스라엘 키부츠의 소, 미국의 초국적 축산기업 축사의 돼지와 칠면조, 이탈리아 알프스의 꿀벌,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돼지, 하와이와 대만의 닭… 이 수많은 동물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식량이 되기 위해 죽음을 코앞에 둔 상태였고, 이하루 씨는 그들 각각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였음을 생생히 기록했다. 이하루 씨는 비록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그 동물들이 살아 숨쉬도록, 사진과 영상과 글로 기록했다.
이하루 씨의 활동은 진보와 보수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이 세계에 여봐란 듯이, 기존 기득권들의 위선을 까발린다. 그가 장면 장면마다 던지는 질문들은, 이 세계가 오랫동안 암암리에 맺어온 모종의 합의들―자유, 민주, 평화―이 권력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다. 일례로 유럽의 어느 진보적 잡지 모임에서 ‘평화로운 논의’를 강요하며 어떤 문제제기도 묵살하려는 이들을 향해 또렷이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종종 곱씹게 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끝에서 이하루 씨는 동물해방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캐치프레이즈 아래에 섰다.
이하루 씨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작업이 어쩌면 2020년대 전 세계 진보 진영이 처한 답보 상태를 깰 수 있는 하나의 주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 앞에는 그저 불편한 진실들만이 서 있다. 이를 외면하고 안온한 삶을 유지하려 하기보다 더욱 급진적인 생각과 행동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이 위선이 가득한 사회에 적응하기보다 ‘거부’와 ‘반대’의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이 작고 마른 체구의 청년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 온다프레스 박대우

추천의 글

인권영화제에서 무대에 오른 하루를 본 적이 있다. 하루가 만든 공장식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뒤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자그마한 몸집에 커다랗고 다소 추레한 옷을 입은 그는 과연 듣던 대로 전 세계를 유랑한 히피답게 맨발이었다. 나는 이 분방한 평화주의자가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내며 베테랑 인권활동가들을 향해 “이것은 왜 폭력이 아닙니까” 외치며 경종을 울릴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마이크를 잡은 하루는 꽁꽁 얼어붙어서는 입을 떼지 못하다가 급기야 너무 떨린다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갔다. 두려움도 눈물도 감추지 못하는 그가 이상하게 부러워서, 이 낯선 존재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며 그의 흙 묻은 발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 책은 하루가 6년간 60여 개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며 이동한 기록이다. 하루는 인간이 만든 경계와 규범 위를 초연하게 넘나드는 한 마리의 동물 같아서, 그가 통과하는 곳마다 당연했던 경계들이 낯설게 보인다. 책을 펼치자마자 두 번의 카우치서핑으로 말레이시아 랑카위 섬 바다 위에 사는 주민의 집(배)에서 아침을 맞이한 하루는 단숨에 우리를 이상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사용하지 않는 땅을 점거해 살아가는 스쾃,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멀쩡한 음식들을 가져와 나눠 먹는 덤스터 다이빙(쓰레기통 뒤지기),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도착한 그리스에서의 난민 인권 활동,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에 파묻혀 지내며 삶을 축복하는 레인보우 개더링과 그곳에서 만난 성폭력 대응 활동, 그리고 이 시대 가장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동물해방운동까지. 다정하면서 담대한 그의 유랑은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는 진기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적응 말고 저항을 선택한 한 인간의 동물적 여행기이자 덜 소비할수록 더 생생히 연결됨을 보여주는 마법의 지도 같은 책. - 홍은전(작가)


정직하게 걷는 길은 어디에 이르는가

1년 전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때 하루는 영화 <Planet A>의 감독이었다. <Planet A>는 장애인, 난민, 성노동자 등의 인간 동물과, 소, 돼지, 닭 등의 비인간 동물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고발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 내 발언 영상을 짧게 넣고 싶다고 했다. 당시 외국인보호소에서 자행된 고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행한 발언이었다. 나는 인간수용시설로서 외국인보호소와 장애인시설에서 자행된 감금과 폭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언급했다.

하루는 내 발언을 전체 열다섯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고리들 중 하나로 삼았다. 그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많은 것을 보았고 그만큼 많이 아파했던 것 같다. 자신은 많은 일을 겪었기에 좀처럼 울지 않는다면서도 곧잘 눈물을 글썽였다. 그가 어디까지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절박성에 닿지는 못했다.

어느 날 하루는 내가 있는 <읽기의 집>을 찾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행기 같은 글이라고 했다. 6년 가까이 여기저기 다녔다고. 처음에는 배낭여행 같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가 파편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들은 내가 아는 여행과 너무 달랐다. 단어들부터 낯설었다. 나는 그에게 식당이나 마트의 쓰레기통에서 식자재를 구하는 덤스터다이빙에 대해 들었고, 도시 문명을 떠나 돈이나 전자기기 없이 숲속에서 한 달을 지내는 레인보우게더링에 대해 들었다. 또 숲이나 바닷가, 공원에서 침낭을 깔거나 해먹을 걸고 그냥 잤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집안일을 해주거나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권을 빼앗긴 채 수용시설에 갇혀 지낸 이야기도 들었고, 미국 어딘가 있다는 거대한 도살장을 찾아간 이야기도 들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고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흘러나온 파편들이었다. 이 파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는 나는 이것들을 제멋대로 끼워 맞추고는 집시나 히피의 정처 없는 방랑기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완성한 원고를 읽었다. 시작하는 문장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알 수 없는 상처를 지닌 문장이었다. 그는 출국 이틀 전에 엄마에게 통보하고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여정. 그러나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씩씩하게 방랑자의 삶을 살아냈다. 돈 없이 살아가는 기술들을 익히고 거침없이 사람들을 사귀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는 금세 강해졌고 그의 삶은 재밌어보였으며, 그가 찾아간 곳들은 아름다웠다. 길 위의 사람들은 손을 치켜든 그에게 기꺼이 옆자리를 내주었고 친구를 소개해주었으며 가족이 되어주었다.

어떻게 이런 방랑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루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사람 같았다. 그에게는 가야할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를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옆자리에 태워주었지만 그 전에 그는 누구든 자신의 마음에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여정을 따라 읽으며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글의 어디서부턴가 풍경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여정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한 곳은 언제나 다음 곳을 안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벅찬 순간이 벅찬 순간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폭력은 더 큰 폭력을 가리켰고, 상처 난 장소는 더 큰 상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는 난민을 만났고 장애인을 만났고 성폭력피해자를 만났다. 그리고 여러 폭력들이 응집된 곳에서 비인간 동물들을 만났다. 젖을 짜내기 위해 계속해서 강간당하는 소, 집단 피살을 앞둔 돼지, 도망갈 수 없도록 날개가 잘린 여왕벌.

곳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에게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고 하루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문명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숲에 들어온 사람들은 평화를 해치지 말라며 성폭력 사건 앞에서 침묵했고, 인간에 대한 폭력 사건에 함께 분노했던 사람들은 비인간 동물들이 당한 폭력 앞에서 무감각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혹은 이 나라 시민이 아니니까, 인간이 아니니까 폭력을 문제 삼지 않으려 했다.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나 강간 같은 끔찍한 말들을 비인간 동물에게 사용하는 것은 인간 희생자를 모욕하는 짓이라고도 했다.

나 역시 하루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이 뒤로 갈수록 힘에 겨웠다. 원고를 읽다가 여러 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서성여야 했다. 내 안의 누군가가 그만가자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 같았다. 이 정직한 여정이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를 예감하며 내 치부가 드러나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이라며 가리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정직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랑기의 끝에 이르러서야 나는 이것이 방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루는 길을 떠돈 것이 아니라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처가 없었던 것은 맞다. 그는 몸이 머물 곳만큼이나 생각이 머물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정직이었다. 알지 못하는 길이었지만 그는 용감하게 걸었다. 이 책은 정직한 발걸음이 어떻게 한 인간, 한 동물을 자유와 해방의 길로 인도하는지를 보여준다. 동물해방운동가인 하루는 이 길을 따라 우리를 떠나 우리에게 온 것이다.
- 고병권(작가)


목차

목차

프롤로그

1장 우리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지
생존의 기술 │ 생활의 기술 │ 히치하이커들 │ 외국인 수용소

2장 태양을 가로질러 걷기
노동의 기술 │ 난민 수용소 │ 가족에 대하여 │ 방랑의 기술 │ 폭력에 대하여

3장 어떤 길들은 다른 길들보다 더
연결의 기술 │ 방관자들 │ 매직하우스 │ 가슴과 자궁 │ 노숙인 수용소 │ 가축 수용소 │ 목격자들

4장 물에 던져진 돌은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에 대하여 │ 동네 아는 농부 │ 학살의 기준 │ 평화에 대하여 │ 어떤 동네

5장 새들의 흔적을 따라 걷기
생추어리 │ 혁명의 기술 │ 부서진 날개 │ 증인들 │ 죽음에 대하여

책 속에서

레인보우 개더링은, 현대사회의 도시 문명에서 잠시 벗어나, 달이 차올랐다가 소멸하는 주기를 따라 한 달간 자연에 파묻혀 지내며 삶을 기념하고 축복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유러피언 개더링은 일 년에 한 번씩 여름마다 열리며, 장소는 매번 다르다. 그 밖에 월드 레인보우 개더링, 아시안 개더링, 발칸 개더링 등 대륙 단위뿐만 아니라, 알바니아, 조지아, 인도,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어딘가에서, 크고 작은 레인보우 세계가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2017년 유러피언 개더링의 장소는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Udine 근교의 아주 작고 외딴 마을에서 최소 예닐곱 시간은 걸어 올라가야 하는 산꼭대기였다. 마을에 닿으니 이미 날이 저물어 다음 날 아침 산에 오르려는, 혹은 산에서 막 내려왔는데 잠시 쉬어가고픈 몇백 명이 모여 지내며 또 다른 개더링을 이루고 있었다.
오래된 허리 지병을 앓고 있는 나는 다행히 차에 실려 음식을 나르는 비포장도로로, 등산이 어려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가파른 산 중턱에서 내려, 산봉우리를 아주 천천히 두 시간 정도 오르고, 다시 한 시간 즈음 내려가자 거대한 분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어릴 적 좋아하던 RPG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벌거벗은, 혹은 풀떼기나 천을 대충 걸치고 있는 사람들,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엮어 지은 움막들, 알록달록한 텐트와 해먹, 곳곳의 작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모두의 인사 ‘Welcome Home!’을 들으니, 먼 길을 헤매다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연결의 기술」 중에서

가이아는 벌에게 설탕물을 주거나, 연기를 뿌리거나, 나중에 쓸모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여러 번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다른 거의 모든 양봉산업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걸 알려줄 뿐이었다. 또한 가이아는 양봉가가 벌들을 추위와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주는 거라고 했지만, 그런 말은 오히려 무언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만 들렸다. 돌이켜보면 장애인, 노숙인, 외국인 시설의 직원들 역시 그런 말을 했다. 집에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니까, 바깥은 위험하니까, 시민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보호해주겠다고.
한 티스푼의 꿀을 모으기 위해서는 열두 명의 벌이 평생 동안 일해야 한다는데, 가이아의 주장처럼 벌들이 먹을 걸 ‘충분히’ 남겨두고 꿀을 채취한다는 게 애초에 가 능하긴 한 걸까? 충 분히 남긴다는 기준을, 그것을 가져가는 쪽에서 정하는 것은 타당한가? 가이아에게 혹시 꿀을 팔기도 하느냐고 묻자, 본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정성껏 벌들을 돌보는데 꿀을 팔지 않으면 무얼 먹고 사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사랑하는 가이아가 권한, '세상에서 가장 윤리적인 꿀'을 끝내 한 스푼도 먹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가 '인도적인 착취'를 자랑스러워하는 태도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얼 먹고 사는지가, 주변살맏르이 모두 먹는 걸 거부하는 행동이 가족과 친구 사이에 작용하는 지속적이고 미묘한 자극은 실로 흥미로웠다. 하루 세 끼, 불가피한 식탁 위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우리의 관계는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않았음에도, “네 신념을 다른 이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라는 조언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 「동네 아는 농부」 중에서

잡지가 인쇄되기 직전에 내 원고를 본 참여자 중 한 명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그는 ‘홀로코스트’와 ‘강간’이라는 단어를 동물에게 적용해 인간과 비교하는 내용이 들어간 잡지에 자신의 글을 함께 실을 수 없다며, 내가 쓴 글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누군가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잡지에 실어야 할 만큼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글은 아니어서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연히 그 대화를 듣게 된 다른 참가자가 검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잡지에 실으려 했음이 드러났다. 대부분이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프로그램 참여자 가운데 절반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그들이 앞장서 나를 둘러싸고 질책하기 시작했다. 축산업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걸 유대인이 들으면 얼마나 상처를 받겠냐며,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고 했다. 나를 인간혐오자나 인류의 배신자라도 되는 양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본인의 도덕성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라며 오히려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종종 그때 그들이 그렇게까지 강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본인들의 모국에서 일어난 역사뿐 아니라, 백인 중심의 세계가 여태껏 맺어온 사회적 관계와 질서, ‘평화’를 넘어서는 어떤 제안이 너무나 불편하게 여겨졌던 건 아닐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의 ‘잘못’을 지적하던 그들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저, 위계와 차별에 저항하는 활동가들에게, 그리고 젠더 폭력의 피해 당사자들에게, 이 명백한 폭력은 왜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지, 이 학살은 왜 학살이라고 부를 수 없는지 묻고 싶다.- 「학살의 기준」 중에서







지은이 소개

이하루(@harulev)
전문 부랑자이자 히치하이커, 사회 부적응자. 평생 일만 하며 사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집을 떠났다. 세계를 방랑하던 중 인류가 집단으로 묵인하는 동물 착취 시스템의 규모와 폐해, 그로 인한 자연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앎’에 충격을 받아, 숨겨진 진실을 알리는 데 집중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 임시로 거주하며 동물해방을 위한 퀴어-아나키 예술활동가 공동체 플라가미(@plasticagami)에서 영화/음악 프로듀서, 래퍼, 영상기록활동가로서 여러 투쟁 현장에 연대하고 있다. 언제나 떠날 기회를 노리며 ‘대충 열심히’ 산다.

시리즈 소개

‘파도문고’는 전 지구적인 생태, 평등, 노동의 위기에 맞서는 작은 파도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 기획 시리즈다. 이 시대의 급진적인 생각들, 금기가 된 행동들이 어떤 때에는 잔잔하게, 어떤 때에는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 결국에는 우리를 살릴 것이다.

도서 정보


도서명: <사회적응 거부선언>
분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인권문제
쪽수: 280쪽(예상)
정가: 15,000원
출간 예정일: 2023년 6월 14일
펴낸 곳: 온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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