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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1950
르네 데카르트의 삶:

데카르트는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라에에서 태어났다. 10세 때인 1606년에 라 플레슈에 새로 생긴 예수회 학교에 입학하여 18세인 1614년에 졸업한 후 푸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1616년에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가 1618년에 네덜란드로 가서 모리스 드 나소가 지휘하는 군대에 입대한다. 이때 네덜란드의 의학자이자 수학자인 이삭 베크만을 만나 음악과 수학적 자연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수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1618년 최초의 저술인 『음악 개론』(라틴어)을 베크만에게 헌정한다. 1619년에 독일 울름 근교에 주둔하는 동안에 꾼 세 개의 꿈을 통해 보편학의 정립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데카르트는 1618/1619년부터 1629년까지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라틴어)을 집필하지만 미완으로 남겼다. 이 작품은 1701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출판 이전에도 로크나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은 그것을 필사본으로 읽었고, 라이프니츠는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필사본을 남기기도 했다. 데카르트는 1633년에 세상에 내놓는 첫 작품으로 『세계론』(원제 『빛에 관한 논고』, 프랑스어)을 출판하려 했으나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 소식을 듣고 지동설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이 책의 출판을 포기한다. 이 작품은 데카르트 사후인 1664년에 출간되었다. 같은 시기에 집필된 『인간론』(프랑스어)은 1662년에 출간되었다. 통상 이 두 작품을 묶어 『세계』라 부른다. 잘 알려진 『방법서설』을 서문으로 「해석 기하학」과 「굴절 광학」과 「기상학」(프랑스어)을 묶어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과학에서 진리를 찾는 방법에 관한 서설』(프랑스어)로 1637년에 출간한다. 1641년에는 『성찰 — <성찰>에 대한 학자들의 반론과 데카르트의 답변』(라틴어)의 초판이, 1642년에는 정본으로 인정되고 있는 두 번째 판이 출간된다. 1644년에는 데카르트의 자연 철학과 형이상학을 집대성한 『철학의 원리』(라틴어)가, 1649년에는 정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정념론』(프랑스어)이 출간된다. 1649년 가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으로 간 데카르트는 이듬해인 1650년 2월 11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르네 데카르트의 사상: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다른 모든 명구들과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분명하게 새기기 어렵다. 이는 데카르트 철학 일반의 특징을 잘 대변해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명칭은 긍정적이며 사실에 부합한 평가이지만, 우리는 왜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불리는지에 대한 ‘억측’을 통해 데카르트 철학을 특징지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후대 철학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철학적 문제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 과정이 얄궂다. 데카르트가 그러한 문제들을 정식화하고 제기하고 대면한 이유는 그것들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데카르트 스스로는 그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평안을 누렸겠지만, 데카르트 이외의 그 누구도 데카르트가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데카르트는 후대 철학자들에게 골치 아픈 철학적 과제들을 남겨 주었던 셈이다.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것이 이 때문이라는 ‘억측’은 우리의 정서에 보다 잘 부합하지 않을까?

르네 데카르트, 단계별 읽기:
step1,2,3 step1 step2 ste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