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읽어봅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은 <흰>으로 2018년 부커상 후보에 다시 선정되었습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한강은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흰』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매우 개인적인 책으로 추천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는,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18쪽) 흰 배내옷을 입은 죽은 아이의 이 이미지는 소설 전반을 지배합니다.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20쪽)는 늘 나를 사로잡습니다. 나는 존재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 것 같아 내 몸을 감옥이라 느끼고, 안개 낀 새벽 도시를 걷는 사람들을 유령이라 느낍니다. 시적인 단상들이 수집한 흰 이미지는 작가의 소설 전반에 수수께끼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죽지 마라 제발. / 제발 죽지 마.' 갓 태어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기도. 파괴된 도시의 영혼들. 그들을 위해 올리는 초의 불빛, 한강의 다른 소설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함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한강의 소설이 새 작품집으로 엮이길 기다리며 <흰>으로 눈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에서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60쪽)하고 감각하는 순간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빛과 실>, 24쪽) 작가의 소설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2021)의 이미지를 지나쳐 만날 다음 책이 기다려집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
애나 번스의 <밀크맨>을 번역해 202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하고, 2023년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등을 번역 소개한 홍한별의 번역에 관한, 그 불가능성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흰 석고상을 그리면 그릴수록 흼에서 멀어지던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도무지 포착되지 않는 <모비 딕>의 흰 고래처럼, 언어는 시도할수록 멀어집니다. 배내옷, 흰 새, 수의 등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흰>의 이미지에 덧대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
2005년 출간, 2016년 개정 출간된 이 소설집의 수록작품 중 특히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한강의 흰 이미지와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아마추어 산악인이자 작가인 남자는 연인의 죽음 이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에 도전했으나, 대원 중 한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대원들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1988년 낭가파르바트산 등반대의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연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설산에 오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눈 덮인 오르막을 오르는 한강의 소설과 함께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회복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