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0일 : 34호

라인G1

이 책이 지금

마음 속에서 주먹 한 번 쥐어본 직장인이라면

냉면은 여름 음식이지만 겨울 냉면이 별미라는 걸 알 만한 먹보들은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담입니다...) 여름하면 괴담이지만 겨울 괴담도 또 별미죠. 한기를 오싹함으로 걷어내보면 어떨까요. 출판사 안전가옥이 기획한 앤솔러지물로 오피스 괴담이 찾아왔습니다. 범유진,최유안, 김진영, 김혜영, 전혜진 작가가 참여했는데요, 모두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 더 보기

201쪽 : “이게 맞다고 생각해?”
강성필 팀장님이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늘 틀렸습니다. 이상하죠. 모든 문제의 답을 찍더라도 보통 하나는 맞힐 텐데 말이에요. 나중엔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신에 강성필 팀장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유추해서 답하곤 했어요. 그래도 늘 오답이더군요. 강 팀장님 앞에서 저는 늘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게 꼭 강 팀장님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저는 늘 모든 것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라인p1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에서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쓰려 하는 '나'에게 '일기쓰기교실'의 동료는 그 일은 오래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2023년 겨울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중인데요, 이 영화도 오래된 일을 다시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입니다.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 인물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A :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기억에 관해서는 일본의 페미니스트이자 아랍문학전공 학자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의 한 구절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다”에 많이 기댔습니다. 오카 마리의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은 망각을 피하는 책무가 되고 기억의 재현에는 윤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꾸어 말하면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기억할 의무가 있지만, 그 기억을 소설로 쓸 때는 재현이 폭력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지요.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허구’가 아닌 ‘일기’로만 진술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요약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소설의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타인을, 시대를, 역사를 기억하고 마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건 작가로서 제가 바라는 궁극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 더 보기

라인y1

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반빈곤 활동가 김윤영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읽다 조세희의 소설 속 '낙원구 행복동'의 모델이 '서대문구 현저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말뚝'의 박완서의 소설 속 좁은 골목 역시 그가 실제 거주하기도 했던 '현저동'이었다고 하네요. 현재 이곳은 종로구 무악동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추운 계절이면 다른 사람도 참 춥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올해도 '부동산 문학'으로 분류할 만한 작품들이 여럿 출간되었습니다. 지하집에 사는 이서수의 소설 속 인물들도,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매수자에게 집을 보여주며 사는 김혜진의 소설 속 인물들도 너무 춥지는 않게 겨울을 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축복을 보내는 마음으로, 오늘은 오랜만에 '난쏘공'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라인y1

출판사는 지금 : 민음사

자그마치 680쪽.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을 쓰다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눈을 치켜뜨고 귀를 반짝 열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렇게나 긴 분량이 필요했을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버틸 테니까요. 저는 당연히 후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보란 듯이 긴 소설을 보고 호기심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작가라 해도 우리와 같은 시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죠. + 더 보기

라인y2

바리오스 번역서상 후보작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가 수여하는 올해 ‘바리오스 번역서상’ 1차 후보로 한국시 두 권이 후보로 올랐습니다. <저주토끼>를 번역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안톤 허가 이성복 시론집 <무한화서>을 번역했고,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한 최돈미가 이번에도 김혜순의 시 <날개 환상통>의 번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우리만 알기엔 아쉬운 멋진 한국문학을 영어권 독자도 읽을 수 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마침 두 시집 모두 얼음이라는 점에서 (이성복), 열기라는 점에서 (김혜순) 겨울과 잘 어울립니다. 세계인과 함께 이 시집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라인G2
이번 편지 어떻게 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