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폰 트리에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곧바로 덴마크 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가지고 놀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고 답답한 제도 교육에도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코펜하겐 대학과 덴마크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 학생 신분으로 만들었던 <야상곡(Nocturne)>(1981)과 <자유의 영상(Image of Relief)>이 모두 뮌헨 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여 '미래의 유럽영화를 책임질 무서운 신예'라는 평을 받게 된다.
광고와 뮤직 비디오 등 영화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을 익힌 폰 트리에는 1984년 장편 데뷔작 <범죄의 요소 Forbrydelsens element>로 칸 영화제 고등기술위원회 상을 타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형식을 실험한 초현실적인 영화 <범죄의 요소>는 필름 느와르와 독일 표현주의, 드레이어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오손 웰즈의 흔적이 섞여 있었고 황색 모노톤의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는 시각적 충격을 남기는 영화였다. 그러나 철학이 기술을 받쳐 주지 못한 이 영화 때문에 폰 트리에를 예술가라기보다 기술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런 평가는 두고두고 폰 트리에를 따라 다녔다. '초현실주의 스릴러 3부작'으로 불리는 뒤의 두 작품 <전염병 Epidemic>과 <유로파> 역시 <범죄의 요소>의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들이었다.
86년 자신의 영화사 Element Film을 설립하고 만든 87년작 <전염병 Epidemic>은 깐느의 공식 초대작으로 초청되었고 <유로파 Europa>는 91년 깐느의 심사의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1994년 TV 시리즈 <킹덤>으로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폰 트리에는 96년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부터 영화의 방향을 크게 바꿨다. <킹덤>은 오래 된 종합병원에서 일어나는 괴담으로 이전처럼 차가운 기술 대신 선과 악의 경계가 붕괴되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가 뒤섞인, 폰 트리에만의 종교와 철학을 내비치는 작품. 바로 다음 작품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역시 고난에 내몰린 한 여인을 통해 종교적 정화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폰 트리에가 '골든하트 3부작'이라고 부르는 연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착하고 순진한 여자가 자신을 희생한다는 줄거리가 기본인 '골든하트'의 두 번째 작품은 <백치들>. <백치들>은 '도그마 95'의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도그마 95'는 일체의 기교와 허위를 배제하고 영화를 찍을 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순결 서약으로 이 원칙에 따라 연출된 <백치들>은 노골적인 누드 장면 때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폰 트리에는 2000년 작품 <어둠 속의 댄서>에서 뮤지컬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스스로 선언한 '도그마 95'를 깨뜨렸다. '골든하트'의 마지막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는 시력을 잃어 가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야기로 전부 디지털로 촬영됐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찬반 양론의 엇갈린 평가를 얻어 냈지만 결국 폰 트리에는 소원이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