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실에서 타인의 세계라는 벽에 부딪힌다. 이때 문학은 견고한 벽이 문이 되는 시도다. 문을 열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세계와 갈등하는 인간을 만나고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문득 등장인물이 독자인 나와,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잠재하는 나의 욕망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을 열고보면 그것이 거울인 것을 깨닫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나와 무관한 세계로 들어가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갈등의 진폭을 느끼며 현실에서의 균형감각을 돌이켜본다.
소설의 세계는 인물이 등장하고 세계가 구축된다. 세계는 인물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승패없는 전장이 되기도 한다. 인물과 세계 사이에 민감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극이 전개되고 갈등이 고조된다. 구축된 세계는 인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러나 세계에 안착했다고 해서 해피엔딩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역동적인 세계에서 쏟아져나오는 문제적 인간들과 세계를 공유해야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위협하며 우리의 일상과 허상을 전복시킨다. 우리의 방법적 회의는 자아의 심연에까지 미친다. 그렇게 우리는 소모되고 마모되며 의도를 배반한 나를 만나게 된다.
구병모의 이창은 주인공인 '나' 자체가 문제적이다. 만인에 대해 집요하게 신경쓰는 일명 오지라퍼로 등장한다. 나의 정의감은 언제나 정도를 넘어선다. 나의 사정권에 들어온 그녀는 예상과 달리 의연하며 연출된 것처럼 준비된 변명으로 나의 오지랖으로부터 방어한다. 나는 그녀의 아동학대에 관한 단서를 잡아나가고 그녀는 나의 시도를 무화시킨다. 나와 그녀의 대결은 치열하다. 나와 그녀는 각자 자신의 세계를 방어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세계를 침입한다. 진술의 신뢰도를 의심받을 만한 문제적 주인공과공격과 수비의 역동성있는 전개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