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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김도연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4년 9월 <교유서가 10주년 기념 작품집 세트 - 전2권>

[큰글자도서] 강원도 마음사전

대관령 고향집에 가면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있다. 물론 예전처럼 사람이 살지 않고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정지(부엌)는 아예 허물어 버려 된(뒷마당)이 된 지 오래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오후의 햇살이 좋은 그 뒷마당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당연하게 사라진 풍경도 함께 따라 나온다. 사라진 말도. 나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형, 누나들을 따라 안방과 윗방, 정지, 마구(외양간), 고간(곳간), 정낭(화장실), 샘물을 오가며 말을 배웠다. 울타리 주변의 앵두나무, 신배(돌배)나무, 개복숭아나무, 꽤(자두)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개, 소, 닭, 토끼, 돼지, 염소와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강냉이밭, 감자밭, 콩밭, 당귀밭, 당근밭으로 농기구를 들고 가며 툴툴거렸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무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키가 커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집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새로운 말을 찾아서. 이 산문집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란 한 소설가가 사라지고 잊혀 가는 그 말들과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인데, 나에게 집 안과 집 밖의 말을 처음 알려 준, 아직도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부모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두 분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도 벙어리로 살고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강원도 마음사전

대관령 고향집에 가면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있다. 물론 예전처럼 사람이 살지 않고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정지(부엌)는 아예 허물어 버려 된(뒷마당)이 된 지 오래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오후의 햇살이 좋은 그 뒷마당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당연하게 사라진 풍경도 함께 따라 나온다. 사라진 말도. 나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형, 누나들을 따라 안방과 윗방, 정지, 마구(외양간), 고간(곳간), 정낭(화장실), 샘물을 오가며 말을 배웠다. 울타리 주변의 앵두나무, 신배(돌배)나무, 개복숭아나무, 꽤(자두)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개, 소, 닭, 토끼, 돼지, 염소와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강냉이밭, 감자밭, 콩밭, 당귀밭, 당근밭으로 농기구를 들고 가며 툴툴거렸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무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키가 커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집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새로운 말을 찾아서. 이 산문집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란 한 소설가가 사라지고 잊혀 가는 그 말들과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인데, 나에게 집 안과 집 밖의 말을 처음 알려 준, 아직도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부모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두 분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도 벙어리로 살고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눈 이야기

눈의 골짜기에 들어온 지 칠 년이 지났다. 그 칠 년의 시간 속으로 눈은 끊임없이 내렸다. 폭설의 날들이었다. 그런 날엔 으레 고립을 피해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들로 집이 북적거렸다. 가볍디가벼운 눈송이가 아름드리 소나무의 허리를 꺾어버리는 장면도 목격했다. 누군가 눈에 홀려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도 피어나는 밤이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깊은 겨울밤 방바닥에 엎드려 외양간에서 소가 숨쉬는 소리르 들으며 편지를 썼다. 천천히. 내가 만든 눈사람, 눈부처 들은 그렇게 눈의 골짜기에서 칠 년의 겨울을 보냈다.

산토끼 사냥

토끼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토끼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토끼장 앞을 떠나지 않았다. 토끼는 마치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토끼는 산에도 살았다. 사람들은 그 토끼를 산토끼라 불렀다. 토끼는 아주 멋진 이야기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어느 밤 토끼 꿈을 꾸고 나서. 토끼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토끼를 빙자한 어떤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왠지 토끼에게 농락당한 기분인데 입에서는 벙글벙글 웃음이 흘러내린다. 아, 믿을지 모르겠지만 전생이 토끼였던 사람도 있다. 나는 토끼를 쫓아다니면서 자라났다. 그런데 요즈음 드는 생각은 내가 토끼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토끼가 나를 쫓아다녔고 나는 잡히지 않으려 부지런히 도망친 것만 같다. 뭐, 그게 그거겠지만. 오늘도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서 사냥꾼을 따돌리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실 나의 첫 교내 백일장 응모 작품도 어느 학생잡지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절반쯤 훔쳐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 상을 계기로 장차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내심 꿈꾸었는데, 한편으론 도둑질이 발각될까 봐 되게 불안했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이 되자 그 글은 교지에까지 덜컥 실렸다. 전교생들이 한 권씩 가져가는 교지에. 그렇다고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칼을 들고 교지에 실린 글을 몰래 잘라낼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 많은 전교생의 집을 일일이 방문한단 말인가. 결국 나는 내가 가져온 교지의 그 부분만 잘라냈다. 일단 내 눈이라도 가려야만 했기에.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의 글 도둑질은 발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래……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나는 괴로웠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사실 살아오면서 나는 그 일을 잊으려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아무 일 아니라고, 애써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지만, 그때도 나는 뭐가 잘못된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남의 글을 훔친 사실이 들통이 나고 안 나고, 반성문을 쓰거나 벌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내가 도둑질한 글은 반성문의 울타리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을 내가 오래 공들여 가꾸지 않고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그때껏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내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않고 목청 높여 울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버릇이 됐다는 것이다. 무서웠다. 이 소설은 그러했던 내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쓴 목련꽃 반성문이다. 그리고 「진부의 송어낚시」가 있다. 나처럼 비겁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에 낚싯대를 들고 얼음구멍 앞으로 담담히 걸어간, 내 조카처럼 어여쁜 정미의 송어낚시 이야기다. 비록 그 겨울 내내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손이 시리고 발가락이 곱아오는 가운데도 송어의 마음을 얻으려는 정미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들의 송어낚시는 오래 계속될 것이다! 2010년 여름 대관령에서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보인다. 순간순간의 불꽃들은 사라지고 점멸을 거듭한 시간의 모래톱이 보인다. 오래전 치고 받으며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 아무렇지 않게 악수를 나누는 내가 보인다. 점점 구부러지는 어머니의 등이 보인다. 앙상하게 변해가는 희망과 겨울이 되었는데도 끈질기게 가지에 매달려 있는 마른 잎 같은 욕망도 보인다. 칠십이 넘으셨는데도 높은 잣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잣을 따는 아버지가 보인다. 강원도 대관령과 경기도 세마대를 오가는 직행버스 속에서 잠자는 내가 보인다. 술에 취해 한 시간 사십분 동안 마이크를 독점하였다 하여 술값 이십팔만 원을 고스란히 가난한 소설가에게 뒤집어씌운 고향 친구들이 보인다. 추석날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조카의 어린 딸이, 보인다! 이 소설을 쓰고 보듬는 동안 등을 떠밀어준 '맹점'의 선생님과 '사평역'의 선생님이 보인다. 천리포, 만리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던 '운주사 가는 길'의 선생님이 보인다. 깊은 밤 술 마시고 노래했던 떡전 거리의 당신들의 보인다. 보인다. 숱한 사랑의 맹세를 남발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린 내가 보인다. 우리 집 개, 닭, 염소가 보인다. 소가 보인다. 친구와 함께 밤의 계곡과 바다를 순례하며 낚아 올렸던 물고기들이 보인다. 또렷하게 보인다, 노심초사 이 글에게 옷을 입혀주고 기와를 올려준 세 분의 모습이. 그러나... 보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눈 비비고 들여다보니, 세존의 말이, 어느 가수의 탄식만 오롯이 떠오른다. '아무리 봐도 안 보여!' 대체... 나는 언제쯤... 눈을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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