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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한밤중 달빛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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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무라 가오루,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
레이디 조커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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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일상과 불투명한 미래에 지친 다섯 남자가 경마장에 모인다. 한 쪽 눈이 먼 노인, 승진 경쟁에서 밀려난 형사, 장애인 딸을 키우는 트럭 운전수, 고아 출신 선반공, 재일조선인 신용금고 직원. 원한과 동기가 제각각인 그룹 ‘레이디 조커’는 업계 1위의 대기업 히노데 맥주에서 돈을 뜯어내기로 한다. 히노데 사장이 자택에서 납치되던 밤, 형사 고다가 속한 경시청에 비상이 걸리고 각 언론사는 특종 경쟁에 돌입한다. 급변하는 히노데의 주식으로 이득을 보려는 투기꾼과 긴밀한 관계로 얽힌 대기업, 야쿠자, 정치권의 악취까지 뒤엉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1984년 일본을 휩쓴 기업 테러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카무라 가오루의 대작이 드디어 국내 출간됐다. 당시 범인은 유명 제과회사 글리코의 사장을 납치하고, 유통 상품에 독극물을 주입한 후 협박장을 보냈지만 결국 용의자 미검거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이 작품을 "소설의 형태를 취한 현대 일본사회의 르포르타주"라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냉정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차별받아야 했던 사람들, 조직의 책임을 떠맡은 사람들, 사회의 변두리로 몰린 사람들을 빈틈없이 바라본다. 199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평단과 독자들의 꾸준한 호평 속에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 소설 MD 권벼리
책 속에서
"네, 교와 신용금고의 고입니다." 경마장에서 듣던 것과 딴판으로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였다. "약국의 모노이인데"라고 말하자 고는 "늘 신세가 많습니다"라는 영업용 대사를 읊더니 "무슨일로―"하고 물었다.
"이봐, 4월에 후추에서 자네가 한 얘기 있잖아. 이 늙은이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어."
"무슨 말씀이신지―"
"대기업 돈을 뜯어내자는 얘기 말이야."
그 말만 하고 모노이는 전화를 끊었다. 이어서 세번째 전화를 걸었다. 역시 휴대전화 번호고, 상대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중팔구 일하느라 바쁜 사정은 없을 거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다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목소리 뒤로 요란한 파친코 기계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오늘 오카무라 세이지가 죽었네. 이 늙은이가 생각해본 게 있는데, 한다. 자네 히노데 맥주에서 돈 좀 뜯어낼 생각 없나?"
짤랑거리는 기계 소리 사이로 한다가 "응? 뭐라고?"하고 되물었다.
"4월에 후추에서 자네랑 고 가쓰미가 한 얘기 있잖아. 그거 말일세. 히노데 맥주를 협박해 보자고."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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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주의자의 '살아남는' 삶"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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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라는 이가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해, 일제 말 조선의용군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후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와 교사로 일했다. 이 사람의 삶은 전쟁 이후 뒤틀리고 만다. 상부의 지시로 남쪽으로 내려온 뒤, 인천상륙작전 뒤 낙오한 인민군과 함께 지리산에서 체포된 정찬우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었다. 역사 속에 놓인 인물의 삶을 소설로 옮겨온 작가 안재성은 이 정찬우라는 인물이 남긴 수기를 접한 후, 이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길 결심을 하게 된다. '소설로 각색하는 작업을 거치는 내내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진주, 광주, 대구, 목포를 거치며 겪는 한 인간주의자의 수난기.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의 힘이 묵직한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북한 엘리트에서 남한으로 전향한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의 풍경은 초국적이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잊혀진 전쟁'과 함께 잊힌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필요한 전쟁은 없다는 자명함을 새삼 곱씹게 된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최간수는 말도 채 맺지 않고 몽둥이로 등짝을 내리쳤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 통증이 밀려왔다.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살아야 하나?'
정찬우는 순간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반항심이 끓어올랐다. 곁에 있는 수정으로 그의 면상을 후려치며 마음껏 울분을 터뜨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러나 꾹 참았다. 죽음이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일개 하급 간수를 때리고 맞아 죽는다면 자신의 생명값이 지나치게 헐값인 것 같아서 스스로의 흥정을 작파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떠한 노여움이나 서러움보다도 쓸쓸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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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역사를 쓰는 새로운 출발점"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케르스틴 뤼커.우테 댄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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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미난(?) 통계 자료를 읽었다. 드라마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 가운데 여성이 54.1%, 남성이 45.9%인데, 갈등을 해결하는 인물의 성별은 여성이 39.1%, 남성이 60.9%라는 기록이다. 문득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이 떠오른다. 수십 권짜리 세트로 구성된 위인전 가운데 여성 인물은 손가락을 채우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대가 바뀌어 위인전의 구성은 달라졌겠으나,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통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과거는 어떨까.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기, 문명은 열렸으나 여전히 근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남성이 역사의 주된 역할을 맡았고 여성은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맡았으니,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한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게 온당한 걸까? 이 책은 이런 생각들이 “여성에 관한 기억을 지우려 한 남성들의 전략”이라 지적하며, 그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여성들을 최대한 살려내려고 노력한다. 그저 여성이라는 집합명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과 행위를 밝히고 기록하려 애쓴다. 덕분에 새로운 진실 위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최대한의 역사를 써나갈 넓은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바탕 위에서 훨씬 많은, 성별이 무엇이든간에 훨씬 많은 존재가 함께하는 역사가 만들어지고 쓰이길 기대한다. - 역사 MD 박태근
이 책의 첫 문장
인류의 나이에 대해선 정말로 의견이 다양하다.

이 책의 한 문장
우리는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역경을 딛고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정치가가 된 강인하고 총명하고 용감한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진짜 ‘여성 세계사’가 탄생할 것이고, 그것 역시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다시금 특수한 부분을 다룬 분야별 역사로 그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성이 모두의 역사로 존재하는 일은 또 다시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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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한밤중 달빛 식당
이분희 지음, 윤태규 그림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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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식당 밖으로 솔솔 풍겨 나온다. 따스한 불빛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한밤중 달빛 식당'에서는 앞치마를 입은 두 마리의 여우가 손님을 맞이한다. 여우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것보다 더 이상한 점은 돈이 없어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나쁜 기억'을 '맛있는 음식'과 교환해주는 독특한 계산법이다. 그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에 대해 말했을 뿐인데, 여우들은 기꺼이 초코 시럽 푸딩을 대접하거나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접시를 내준다. 이렇게 달빛 식당에 털어놓은 사연들은 주인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가진 손님들이 '한밤중 달빛 식당'으로 모여든다. 순간의 실수로 친구의 돈을 훔치게 된 연우도, 아내와 이별한 후 괴로워하던 검은 양복의 아저씨도. 그런데 나쁜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까? 삭제된 기억은 웃지 못할 소동을 일으키지만 중요한 깨달음도 준다. 어떤 기억을 간직할지, 잊고 살아갈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모든 기억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마법의 세계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 같은 '한밤중 달빛 식당'은 고단하고 지친 모두를 위해 활짝 열려 있다. 굳이 기억을 팔지 않아도, 서비스로 제공되는 향긋한 차 한 모금이면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 어린이 MD 이승혜
이 책의 첫 문장
집을 나왔어. 길은 어둡고 갈 데가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