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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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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부딪히고 견뎌내며 길을 찾는 인물들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그려온 작가 심아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짧은 소설집이다. 등단 초기 10년을 해외 이주 등으로 독자 곁에서 떠나 있었던 작가는 그 시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지난 10년간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고 사이사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품집에도 신작을 발표하며 부지런히 독자를 만났다.
<무관심 연습>은 세계의 이면과 인간 심리의 뒤편을 탐구해온 작가의 날렵한 감각이 짧은 형식과 우아하게 결합한 어쩌면 가장 심아진다운 소설집이라 하겠다. 책에는 '모르는 만남', '쉬운 어긋남', '따가운 얽힘', '희미한 열림', '얕은 던져짐'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인 스물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다. 만나고 어긋나고 얽히다 열리고 던져지는 삶의 사소하고 특별한 순간순간이 그만의 개성적인 언어로 펼쳐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주제들이다. 그 예감대로 작가는 나와 우리, 우리와 세계가 맺는 관계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표정과 감정을 또렷하게 붙잡아낸다. 슬피 눈물 흘리는 인간(Homo Lacrimosus)과 웃는 인간(Homo Ridens) 사이를 가로지르는 서늘한 통찰은 좋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각각의 작품 끝에 딸려 있는 '흐르는 말'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작가가 슬그머니 건네는 단상이자 작품에 대한 열쇠말이다.
: 무어라 할까? 소설? 동화? 우화? 미니픽션? 결국 ‘짧은 소설’이라 해서 ‘짧은’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그 속뜻은 ‘응축 서사’나 ‘사이 서사’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실은 작가 심아진의 작품 자체가 이런 면이 없잖다. 허름한 땅에서 발굴해낸 고고학 유물을 부드럽고도 단호한 붓질로 밝혀가듯, 현실을 형성하는 관계의 내면을 이러저러한 세필들로 직조해 ‘진정한 현실’로 재현하는 그런 작풍, 그 곁가지 붓들이 지표에 가닿아 ‘리좀(Rhyzome)’으로 따로따로 증식 중인 듯한……. 흥미롭지만 웃음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끝없는 ‘질문쟁이 서사’들! : 기발하다가 아찔하다, 과감하다가 집요하다, 날카롭다가 서늘하다, 쓸쓸하다가 아득하다. 호모 라크리모수스(Homo Lacrimosus)와 호모 리덴스(Homo Ridens), 그 사이에서 무수히 스러져간 찰나의 표정들이 심아진의 격조 있는 문장을 통과하면 제 스스로 의연해진다. 심아진처럼 품 넓은 시야를 가졌거나 심아진처럼 균형 잡힌 호흡을 가지고도 심아진만큼 이야기를 짧고 깊게 벼리는 이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잔향 짙은 이야기들이 짧은 소설이든 ‘그 무엇이든’, 기어이 읽지 않고서야 배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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