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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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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산문집. 서른다섯의 가수 오지은은 이 책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시작은 어디였을까. 3집을 내기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무언가가 죽어가고 있었다. 앨범을 만들 때의 내 마음은 장송곡을 만드는 기분과 흡사했다. 정확하게 무엇이 나를 떠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나의 세계가 천천히 회색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회색의 세계에서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형편없었다"라고 말한다. 나이만 어른인 게 아니라, 이제를 정말 어른의 세계를 마음으로 만난 사람의 두려움에 찬 고백이다. 오지은은 이 막막함을, 보통의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체념하듯 흘려보내지 않기로 한다.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이다. "열심히 하면 돌이 없는 또는 돌이 굉장히 적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던 어른이 되지 않기로 한다. 그는 말한다. "길 앞에 놓여 있는 돌을 치우면 다른 돌이 또 나타난다." 그리고 내친 김에 더 나아간다. "그 돌은 더 크고, 더 단단히 땅에 박혀 있다." 오지은은 이 책에서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 독자라면 조금 겁이 난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삶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려 용기를 낸 것이다. 회색의 세계, 성장이 없는 세상, 단단하게 박힌 돌이 가득한 길을 그는 힘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용기 있게 바라본다. 그가 체념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힘이 되어준다. : 세상에는 나이가 차면 큰 어려움 없이 어른이 되어버리는 사람들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지은은 전형적인 후자의 인물로, 그가 고생스럽게 써낸 책속의 글들이 빛을 발하리라 짐작하는 이유는 이렇다. 세상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서점에 넘쳐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이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건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단지 성장하는 거라고. 과연, 책을 펼치니 이미 완성되어버린 사람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치열함과 막막함이, 그녀를 이렇게 어른이 아니라서 빛나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 읽다가 여러 번 놀랐다. 내가 쓴 일기인 줄 알았다. ‘오지은은 저 너머 두 세계 사이에 사는구나.’ 그 세계로 가본 사람만 감지하는 섬세한 발성의 문장들. 옆에 있었다면 지은 씨를 꼭 안아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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