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음 (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 마치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세심하게 지켜보듯이, 나무들의 생로병사를 깊이 들여다본 독특한 시선이 돋보이는 책이다. 처음 각 장의 제목을 보면, 지나친 의인화의 위험성부터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정, 언어, 사회복지, 성격, 거리의 아이들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띈다. 나무에 그런 단어들을 갖다 붙인다는 것은 좀… 아니, 애정이 넘치면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넘기려 하면, 혹시나 객관성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마자 그런 우려는 사라진다.
저자는 오랜 세월 임업 공무원으로 일했고, 원시림 회복 운동에 앞장선 사람이다. 전문가가 쓴 글답게 이 책에는 어설픈 감상이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이 밝혀낸 과학 지식이 가득하다.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고, 때로 양분을 주고받으면서 돕고, 태풍과 곤충과 곰팡이에 시달릴 때 일어나는 일들이 정확히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이자 특징은 그런 지식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무들은 사이가 좋고 서로 잘 도와준다,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시키기 때문에 어릴 때 더디게 자라지만 그것이 장수의 조건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균형이 잘 잡힌 나무는 외부의 힘을 고루 분산시켜서 큰 충격도 잘 견뎌낸다, 나무들이 꿈꾸는 지상낙원은 어떤 것일까, 이런 구절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든다. 나무의 삶이 우리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런 비유에 힘입어서,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이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와 닿는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숲에 하는 일들이 얼마나 미숙하고, 전체와 미래를 보지 못하는 행동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오래되거나 빽빽한 나무들을 솎아내는 간벌 작업을 인간사에 적용한다면 어찌될까 하는 말까지는 저자가 차마 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 숲의 사회조직을 망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이 알아서 미기후를 조절하도록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속에 저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감하게 의인화라는 서술 방식을 택한 저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