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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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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행복한 독자로 사는 길과 책을 업으로 삼는 길이다. 책에 푹 빠진 채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책이 업이 돼 있다. 이때부터는 재밌는 책을 읽어도 이전만큼 순수하게 즐길 수 없다. 당연한 수순인 듯 책을 만들게 된 저자는 애서가와 편집자의 삶에서 오는 괴리에 방황하며 고뇌한다.
저자는 편집자의 일을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 한 권에 걸쳐 편집자라는 ‘이상한 일’을 설명해낸다. 책을 향한 지독한 사랑을 표출할 방법이 책을 만들고 책에 관해 쓰는 일뿐이었던 한 사람이 “책만은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이다. : 이 책에 담긴 몇몇 실패담과 회한의 어조로 보면 오경철 씨는 성공한 문학 편집자는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 편집자로 살아온 시간을 이처럼 섬세하게 돌아보고, 정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예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쓰라릴 정도다. “내 것이 아닌 문장들”을 읽고 또 읽으며 그는 곧잘 삶의 갈피를 놓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 헤맴의 시간 때문에도 조금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편집 후기’는 언어에 대한 집중과 헌신, 문학에 대한 애정과 이해로 조용히 술렁이는 그만의 문장으로 너무도 아름답게 도착했다. 적어도 그가 해온 “자기라는 희망”의 ‘편집’은 이 책에서 믿음직한 하나의 마침표에 이른 것 같다. : 오경철 선생이 내 첫 책을 만든 부서의 팀장이긴 했지만 그게 추천사 의뢰를 사양 못 할 정도의 인연은 아니다. 지독한 애서가의 일상, 베테랑 편집자의 노하우, 출판사 경영 실패담 등이 맵짜게 담겨 있지만, 이것들만이었다면 결국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이걸 쓰고 있는가. 마치 편집자가 주인공인 소설의 바로 그 주인공 같은, 확고한 관점과 깐깐한 음성을 가진 이 캐릭터의 이야기를 홀린 듯 끝까지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글이라고 해서 책과 필자에 대한 흠애(欽愛)로 일관할 순 없다는 듯이, 그는 이 책 곳곳에서 한숨을 쉬고 서글픔을 느끼며 짜증도 낸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모든 것에 엄격해진 사람의 어떤 정직한 사랑의 기운이 그의 글에는 있다. 이 책을 두고 동시대 지성사‧문화사의 현장에서 행해진 일종의 자문화기술지(自文化記述誌, auto-ethnography) 작업 같다고 하면 저자는 과하다고 손사래를 칠 테지만, 나의 다음과 같은 깨달음 정도는 그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편집자도 책을 쓴다는 사실은 특별하지 않다. 편집자만 쓸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이다.’
: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편집자는 없다. 이 책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발 벗고 들려주지 않았던 실패의 시간들 속에서,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책을 향한 열정의 파편들을 우리 손 위에 올려놓는다.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이 사금파리들이 책 만드는 일의 기쁨과 환희다. 편집자들의 일에 관한 이 책이 편집자들을 위한 책만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누군가에게 『편집 후기』를 소개할 때 나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 책은 가만히, 혼자서, 책 만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책이라고. 정말이지, 가장 좋은 책이라고.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SUNDAY 2023년 6월 17일자 '책꽂이' - 세계일보 2023년 6월 23일자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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