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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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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로 큰 울림을 준 임희정 아나운서. 그녀는 오랜 시간 부모에 대해 침묵해왔다. 가정통신문 학부모 의견란에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부모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줄 수 없는 부모를, 드라이브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 일상의 여유를 함께 누릴 수 없는 부모를 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엇을 하시냐는 질문에 "건설 쪽 일을 하시는데요" 하고 운을 떼자마자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됐고, 어느 대학을 나오셨냐 물어오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은 대졸자가 됐다. 부모를 물어오는 질문 앞에서 그는 거짓과 참 그 어느 것도 아닌 대답을 했다. 그는 그 시간들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한다. 자신의 부모가 부족하지 않았음을,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들의 선명한 증거가 되고 싶었다. 이제 글로써 그 마음을 닦는다. 죄스러움도 슬픔도 원망도. 그는 말한다. "창피한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고. 이 책은 한 자식의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세상 모든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자식의 마음,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임희정 아나운서가 탈고한 후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은 자신이 쓴 책의 전문을 읽고 녹음한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부모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따뜻한 음성 편지가 될 것이다.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 임희정 아나운서의 부모는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펜을 들어 글을 쓰지는 못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모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이를 깊이 긍정하는 딸을 이 세상에 등장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본인들의 삶에 담긴 위대함을 기록하고 알리는 데 성공했다. 나는 이 책을 임희정 아나운서와 그 부모님들이 함께 쓴 글로 읽었다.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시간차를 둔 두 장의 가족사진은 ‘저자들’이 이 글을 쓴 시간들의 얼굴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동안 내 부모님의 얼굴과 삶이 떠올라 꽤 슬펐지만, ‘저자들’의 얼굴을 담은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이 글이 담고 있는 시간들과, 나와 내 부모님의 시간들이 또한 얼마나 평범하고 종종 아름다웠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 시간에서 기억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 혹은 몸에서 마음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 허망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정과 비정 사이를 오갔던 한 사람의 온전한 윤곽은 무엇일까, 떠올려 보았다. 말하자면 ‘당신이 있다’. 이 단순한 진실 말고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순간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역설적이게도, 임희정은 누구보다 행복한 성장기를 가졌다. 드디어 슬플 차례다. 그는 아름다움 운운하며 추억을 과거로 돌려세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 하지 못한 스스로를 끝없이 기억의 법정에 세울 뿐. 여기에는 이상한 인생의 윤리가 들어 있어서 슬프다. 나는 이 슬픔이 우리가 가진 최대치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 낡고 먼지 낀 ‘부모’라는 낱말의 가치를 가장 싱싱하고 진실한 언어로 복원해낸 책이다. 꿈을 품은 자식을 위해 매일 새벽 공사장으로 향한 아버지와 밥을 지은 어머니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눈물과 자부심이 동시에 차오른다. 가난해서 미안했고 원망해서 죄송했던 지난날들에 새살이 돋아난다. 여기 담긴 글들은 작지만 치열했던 당신의 삶에 보내는 위로이자, 서툴지만 억척스러운 우리의 사랑에 보내는 헌사다.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2019년 10월 19일자 '한줄읽기' - 국민일보 2019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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