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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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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가 2021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념해 새로운 재킷을 입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나름의 상처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배경인 하와이처럼 따뜻하고 명랑한 공기가 흐르는 『시선으로부터,』의 분위기를 표지에 담았다.
윤예지 작가의 화사하고 팝한 일러스트로 열대의 흥겨움이 느껴지는 새로운 표지에는 ‘하와이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일반적인 CMYK 4도가 아니라 비비드한 별색 4도로 인쇄해 컬러풀한 정세랑의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시선으로부터, ![]() : ‘정세랑, 하와이, 그리고 제사’라니, 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재미는 보장된 셈인데 이 책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귀엽고 웃기는 소재를 충분히 귀엽고 웃기게 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넓고 깊은 성찰을 푹푹 찔러넣는 정세랑 작가의 솜씨는 이제 불가사의한 경지에 올랐다. 결코 잊을 수 없을 사람,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이 강렬한 힘은 나를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마도 이 힘은 내가 살아가는 내내 태양처럼 뜨겁고 환하게 나를 비춰줄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그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겠다. : 나에게 정세랑이라는 세 글자는 청량함의 동의어이다.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정확한 온도로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일대기를 펼쳐나간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역시 마찬가지라 읽는 내내 코끝에 싱그러운 민트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옆으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쪽 팔에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저린 팔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내 생에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 책을 읽으며 무척 행복했다. 이 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고 심시선 집안 모임에 끼어 함께 팬케이크를 먹고 싶었다. 기 센 여자들이 아닌 “기세 좋은 여자들”이 멋진 여성의 제사를 준비하는 여정을 보며 이런 제사라면 얼마든지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선처럼 쓰고, 읽고, 자신의 삶을 산 할머니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더라면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내게 위로와 계보를 선사한 이 근사한 작품이 페미니즘 영화의 고전 <안토니아스 라인>처럼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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