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탄탄한 정치 기반을 물려줌과 동시에 세종을 ‘준비된 임금’으로 밀어올린 ‘태종의 유산’을 조명한다.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태종의 정치적 결단력과 사소취대의 리더십, 그 이면에 드리운 인간적 고뇌를 들여다본다.
〈공부의 원칙〉에서는 세종이 독서의 힘으로 운명을 바꾼 순간들을 전한다. 〈소통의 원칙〉에서는 “먼저 그대들의 의견부터 듣겠다!”라고 한 즉위 일성이 갖는 의미를 시작으로 세종이 보여준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을 들여다본다. 〈인재 등용의 원칙〉에서는 신분을 초월한 적재적소의 인사철학과 작은 허물보다는 능력을 더 높이 사는 실용적 인재관을 살핀다.
〈국가 경영의 원칙〉에서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돌본 일, 명분을 내주되 실리를 취하는 외교 원칙을 말한다. 〈훈민정음 창제의 원칙〉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과 창제 과정의 우여곡절을 알아본다. 〈인간으로서의 원칙〉에서는 천륜을 중시하는 인간 세종의 남다른 효심과 우애 그리고 부부 금슬을 조명하고, 신체 단련의 습관과 신념에 관해 살펴본다. 이리하여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기 쉬운 세종의 면모를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비로소 그 진면목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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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 서울신문 2021년 5월 21일자
최근작 :<그저 지나가게 하라> ,<오십에 읽는 노자> ,<장자, 경계와 융합에 대한 사유> … 총 33종 (모두보기) 소개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문학자.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학교 대우교수, 중부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산하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광장人’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장자, 경계와 융합에 대한 사유》, 《자존감 공부》,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세종의 원칙》, 《인문학을 부탁해》,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존재의 제자리 찾기》, 《관계의 비결》, 《퇴근길 인문학 수업》(공저), 《청소년 인문학 수업》(공저) 등이 있다.
세종이 이룬 많은 업적은 뛰어남을 넘어 경이롭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원칙’이다. 위대한 시대를 연 세종의 원칙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본다.
먼저, 성군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탄탄한 정치 기반을 물려줌과 동시에 세종을 ‘준비된 임금’으로 밀어올린 ‘태종의 유산’을 조명한다.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태종의 정치적 결단력과 사소취대의 리더십, 그 이면에 드리운 인간적 고뇌를 들여다본다. 〈공부의 원칙〉에서는 세종이 독서의 힘으로 운명을 바꾼 순간들을 전한다. 〈소통의 원칙〉에서는 “먼저 그대들의 의견부터 듣겠다!”라고 한 즉위 일성이 갖는 의미를 시작으로 세종이 보여준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을 들여다본다. 〈인재 등용의 원칙〉에서는 신분을 초월한 적재적소의 인사철학과 작은 허물보다는 능력을 더 높이 사는 실용적 인재관을 살핀다. 〈국가 경영의 원칙〉에서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돌본 일, 명분을 내주되 실리를 취하는 외교 원칙을 말한다. 〈훈민정음 창제의 원칙〉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과 창제 과정의 우여곡절을 알아본다. 〈인간으로서의 원칙〉에서는 천륜을 중시하는 인간 세종의 남다른 효심과 우애 그리고 부부 금슬을 조명하고, 신체 단련의 습관과 신념에 관해 살펴본다. 이리하여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기 쉬운 세종의 면모를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비로소 그 진면목을 본다.
“이럴 때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살다보면 길이 막혀 막다른 골목에 처하거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에서야 잦은 일이지만 대개는 무심결에 지나쳐 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늘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조직의 리더이거나 회사의 경영자이거나 정치 지도자라면 매순간 답을 구해야 하고 선택해야 하고 결단해야 하는 일이 일상이다. 그런 가운데 길이 막혀 좌절하거나 길을 잃고 헤맬 때는 누구에게 답을 구하고 길을 물어야 할까?
우리보다 앞서 살다간 역사의 인물에게 의탁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겠다. 정치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누구보다도 ‘(리더로서) 전인적 존재에 가까운’ 세종에게 길을 묻고 싶다고 한다. “이럴 때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은 무엇보다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한글 창제야 인류사적 업적이니 말할 것도 없고 눈부시게 발전시킨 과학기술, 4군6진 개척으로 상징되는 영토 확장, 민생 안정을 위한 조세 개혁, 음악의 정비 등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저자는 이런 업적들을 넘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세종의 유산에 주목해왔다.
바로 세종의 원칙이다. 그중에서도 세종의 일관된 국가 경영 원칙이 이런 모든 업적의 바탕이 되었다. 세종은 인재를 등용할 때는 출신 성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선발하는 ‘능력우선주의’를 인사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세종의 시대에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한껏 빛을 발함으로써 기라성을 이루었다. 그 덕분에 세종은 과감한 위임의 리더십을 펼칠 수 있었다.
황희, 맹사성, 김종서, 최윤덕, 조말생, 허조, 장영실, 박연 같은 명신들, 수많은 집현전 학사들이 세종 치세를 떠받친 인재들이다. 세종은 치열한 토론으로 국정의 큰 가닥을 잡고 나면 일체의 실무는 “그대들이 알아서 전장하라”라며 주무 팀장에게 내맡겼다. 그러고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작은 허물은 덮어주었다. 팀장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선까지 면책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그 결과 황희는 아흔이 다 되도록 국정에 헌신했고, 김종서는 예순이 넘도록 변방을 꿋꿋하게 지켰다. 요직을 두루 거치고 정승까지 지낸 허조가 죽으면서 남긴 말은 리더로서 세종의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임금은 내가 간하면 들어주셨다. 나는 국가의 일을 내 책임으로 여기며 살았다. 나는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세종 치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 율곡 이이가 평가한 세종의 용인(用人)에 국정 철학과 원칙이 고스란히 집약되었다.
“세종대왕은 사람을 쓰되 자기 몸과 같이 하였다. 현인과 재능 있는 이를 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임용하고 말을 채택함에 오롯이 하여 참소와 이간질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지위가 그 재능에 합당하면 종신토록 바꾸지 않았다.” 세종이 남긴 불가사의한 업적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