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실험적 프로젝트로 갑자기 뉴욕 한복판에 떨어지게 된 청년백수가 뉴욕에서 좌충우돌하며 부딪히고 깨달아간 인간사의 문제들을, 자신의 뉴욕-일상과 지성인의 사유를 넘나들며 하나씩 펼쳐 보이는 독특한 책. 저자는 이런 자신의 이야기 방식을 ‘시간-지도’그리기라고 말한다.
저자가 맨해튼 5번가 명품거리의 쇼윈도에서 느꼈던 초라함은 스콧 피츠제럴드와 연결되고, MTA 지하철에서 격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뉴욕의 다문화에 대한 생각은 에드워드 사이드와 연결되었으며, 플랫 아이언 빌딩 앞 작은 공원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남자와의 마주침은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와 연결되는 식이다.
이외에도 연애, 부적응, 집-없음(home-less), 학교, 인종 등에 대한 저자의 체험과 고민은 과거 뉴욕에서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던 지성인의 사고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인 상상력이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책.
청소년 시절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연구실에서 인문학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서양 의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동의보감』을 비롯한 여러 의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 몸과 마음 사이의 다리를 놓는 공부, 생명과 치유에 대한 탐구를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쓴 책으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 『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 『쿠바와 의(醫)생활』 등이 있습니다.
김해완 (지은이)의 말
“이 책은 당연히 허구에 기반한 소설도 아니며, 유학생활을 다룬 에세이도 아니고, 뉴욕에 대한 인문학적 해설서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책을 ‘지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42개월 동안 뉴욕에 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뉴욕-시간의 지도다. 공간은 시간과 분리될 수 없다. 과거의 사건들은 한 번 벌어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공간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력의 형식은 기억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으며, 사회운동일 수도 있고, 한 가정에서 힘겹게 이어지는 세대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과거의 시간에서 달려온 별빛이 중첩되는 밤하늘처럼, 하나의 공간에는 과거에서 출발한 여러 종류의 시간이 경주를 한다. 이 공간에 살아가는 나 역시 하나의 별, 하나의 시간 선분이다. 나는 내 나름의 이야기를 들고 뉴욕에 왔고, 이곳에서의 내 삶은 미미하게나마 매일 이 도시를 바꾸고 있다. 뉴욕에 사는 팔백만 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뉴욕에 오기까지 자기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또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 꿈을 꾸고 있다. 이들의 시간이 부딪히고, 겹쳐지고, 갈라지고, 지워지면서 도시는 삐걱삐걱 굴러간다. 이 보이지 않는 운동이 바로 뉴욕의 거대한 일상이다.”
“세계 속에 나를 내던진다는(pro-ject) 것은 대의를 위해 나를 희생하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세상과 연결되라는 뜻일 것이다. 뉴욕에는 블록과 블록 사이에도 무한한 세계가 숨어 있고, 이 세계를 전부 안 후에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대신 겉으로는 쉬이 볼 수 없었던 “지각 불가능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느끼는 몸의 힘은 더 커지고,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는‘유령-언어’와 타협할 마음의 공간은 더 줄어든다. 세상을 하나의 정보로 이해하는 주체(subject)가 아니라, 나를 세상의 일부로서 개조하는 기획(project)이 되는 것이다. 이 기획력이 곧 지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지성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지성은 바로 길을 찾는 지성이다. 성별과 국적과 직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를 그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