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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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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에 보이는 노년은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미소 짓는 고령의 부부, 생애 처음으로 패션모델이나 유튜버 같은 일에 도전하는 멋진 노년의 모습은 은퇴 후 삶의 희망 편이다. 비쩍 마른 몸으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년, 치매나 병에 걸려 요양시설이나 골방에서 고독사 하는 노년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절망 편일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사회적으로 이런저런 노후 대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계획으로도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고립감과 소외감을 막을 수는 없다.
노년기를 위한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저자는 노인복지나 심리학의 차원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노년을 더 섬세하게, 깊이 들여다본다. 저자에게 노년기는 삶을 정리하고 소멸을 기다리는 차가운 어둠의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또 다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따뜻한 빛의 시간이다. 머리말
: 김영옥은 무시와 공포에 갇혀 있는 ‘상실, 노화, 치매, 죽음…···’을 상투성에서 해방한다. 관조와 타자화가 아닌 깊고 세밀하게 관계 맺는 인식으로 노년과 여성성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체적인 몸의 자리에서 촘촘히 누빈 이야기들은 안티에이징이나 잘 늙는 법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현명한 비관” 속에서 내민 손 잡아주기의 간절함을 감각하게 만든다. 인권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는 “가슴 설레게 하는 선배”에 자주 목말랐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내 안의 할머니들”은 따라하기가 아닌 창조적인 ‘서로 닮기’를 시도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들’로 판을 뒤집으려 한다. 돌봄과 의존이 삶의 근본임을 환기하며 이 가치를 시대 정신으로 실어 나르는 ‘가슴 설레게 하는 선배들’이다. 다양한 독자들이 저마다의 할머니를 만나서 사람들 ‘사이’를 조직하고 ‘서로 응답’하며 함께 춤출 수 있기를 희망한다. : 김영옥의 글을 읽으며 오래 울었던 어느 아침을 기억한다. 조발성 치매를 주요 증상으로 하는 희귀병을 진단받은 친구의 소식에 온통 흔들릴 때였다. 그 글은 말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것도 삶이다, 삶일 수 있다. 닫히는 가능성의 목록으로만 주로 회자되는 시간을 날 선 지성과 애정 어린 탐구로 마주하여 거기서 다른 가능성의 시간을 길어 올리기. 이런 김영옥의 사유는 두려움을 도닥여주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삶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공들여 함께 묻기에 자기 기만이나 입발림하는 위로로 퇴색하지 않는다. 앞서 탐험 나간 사람이 수풀을 헤치고 잡초를 밟아 가며 어렵게 낸 작은 길 같은 글들, 이 소중한 발자국들을 같이 찬찬히 들여다보자고 권하고 싶다. 아, 그 아침의 귀한 글도 마침내 여기 묶여 실렸다는 말을 덧붙여 둔다. : 다른 사회적 모순과 달리 나이 듦은 불가역적 경험이다. 우리는 나이마다 다른 자신의 몸을 수용하기 어렵고, 타인의 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듦에 관한 글들은 큰 공부가 된다. 오랫동안 육체적 통증에 시달려 왔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믿을 수 없어서 잊었던 내게 이 책은 평화를 허락해주었다. 저자가 선사하는 위로와 안전감 앞에서 무장 해제되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리라. 《흰머리 휘날리며》는 당대 점차 사라져 가는 ‘페미니스트 지식인’의 글쓰기 임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작이다. 저자의 지성과 성찰은 우리를 돌본다. 오래도록 곁에 있을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21년 6월 11일 성과 문화 새책 - 문화일보 2021년 6월 11일자 '이 책' - 한국일보 2021년 6월 10일자 - 중앙SUNDAY 2021년 6월 12일자 - 경향신문 2021년 6월 11일자 '책과 삶' - 동아일보 2021년 6월 19일자 '새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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