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년간 수십만 독자와 울고 웃으며 한국 청소년문학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유진과 유진>의 개정판. <유진과 유진>은 국내 청소년문학 태동기라 할 2004년에 본격적인 청소년소설을 표방하며 출간된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우리 청소년의 ‘지금 여기’를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담아낸 소설로도 첫발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까지 전 세대의 사랑을 꾸준히 받으며 ‘레전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유진과 유진>은 이 시대 최고의 어린이청소년문학가로 꼽히는 이금이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이자 대표작이라는 점에 더해, 아동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함께 청소년이 겪는 일상화된 폭력과 상처를 마주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오늘날, 이 작품은 여전히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인식과 언어의 중요성을 밝히는 문학적 증거다. 또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마저 꺾이곤 하는 청소년들이 날갯짓하도록 돕는 공감 어린 응원이다. 새 얼굴과 시대감각으로 다듬어져 나온 오늘의 고전이다.
첫문장
새 학년 첫날의 복도에선 방학 내내 갇혀 있던 먼지 냄새가 난다.
한국 청소년문학의 개척자이자 시대를 넘어선 대표작
『유진과 유진』은 우리나라에 ‘청소년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인 2004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그전에 청소년들에겐 오랫동안 서양 고전이나 명작류, 또는 우리 근현대소설 등만이 주어졌다. 이 소설이 출간되면서 비로소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마음과 처지, 욕망, 아픔, 꿈, 언어, 생활 등을 대변하고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을 읽고 호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 이야기로 청소년문학의 물꼬를 튼 이 소설의 개척자적 의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아가 이 작품은 선두주자만이 아니라 대표주자로서도 빛을 발해왔다.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수십만 독자와 만나왔고, 세대를 넘어 전 연령대 독자로부터 사랑받아왔다. 어린이, 청소년, 어른 저마다의 상처와 그 상호 관계를 꿰어낸 이 작품의 남다른 통찰에 독자들이 세대별로 호응해온 것이다. 이로써 이 작품은 한국 청소년문학을 명실공히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고, 4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 이금이는 한국 어린이청소년문학 전체를 아울러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이금이는 작가의 업적 전반을 평가해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어린이청소년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2020년 한국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아동 성폭력과 청소년기의 상처를 아프게 마주한 문제작
이 작품은 아동 성폭력을 다룬 문제작으로, 출간 즉시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무거운 사회적 이슈이자 국내 어린이청소년문학계에선 유례없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두 유진은 같은 유치원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그 뒤 각자의 삶을 살다가 15살이 돼 해후한다. 같은 일을 당했지만 부모들의 다른 대처로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유진. 이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기억과 파헤쳐지는 상처, 예상치 못한 후유증을 직면하는 과정과 함께 흡인력 강하게 전개된다. 두 유진의 고통스러운 진실들이 미스터리한 서사 장치와 밀도 높은 심리 묘사 속에서 점차 드러난다.
아울러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초점화된 특정 사건과 확장된 삶 전반을 교차해가며 어린이-청소년-어른 저마다에게 ‘상처’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가야 할지에 관한 깊은 통찰을 매우 설득력 있게 형상화해낸다. 또한 소재는 무겁지만 어둡게만 그려지진 않았는데, 청소년들의 재기발랄한 일상에 밀착해 그네들의 사유와 언어를 익살스레 그리는 한편 일상에 스민 폭력과 상처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그려냄으로써 더 보편성 있는 이야기로 확장해간다. 유진과 유진이 서로를 ‘또 다른 나’로 인식하며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로 날아오르기를, 떨어지더라도 높이높이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며 다짐하는 모습에서 독자는 “슬프고 무서우면서도 달콤하게” 희망적인 시선을 품게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작가가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
출간되고서 16년 동안 독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지만 개정판을 준비하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유아동 대상 성범죄는 날로 진화하며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의 일반적인 현실 또한 나아졌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2차 가해와 폭력 또한 만연하다.
이러한 가운데 여전히 종요로운 인식과 언어는 “네 잘못이 아니야”다. 이 단순한 말이 발화되기 어려운 사회라면 이 작품은 아직도 “네 잘못이 아니야”가 갈급하다는 점을 밝히는 문학적 증거이자 개정돼 읽혀야 할 이유가 된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판 출간의 당위가 하나 더 있다. 이는 개정판에 실린 「지은이의 말」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동 성폭력 피해를 소재로 한 동기가 무엇인지 언급한 내용에 담겨 있다.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며 밝혔으니, 작가의 이 내밀한 고백을 이 작품의 주제와 연결하며 책으로 확인하길 권한다.
달라진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조응한 오늘의 고전
이 작품은 새로 시작하는 ‘이금이 청소년문학’ 시리즈의 첫 책이다. “경계에 선 청소년의 ‘지금 여기’를 살피고, 꿈과 상처가 엉킨 마음과 공명하며, 밝아야 할 미래를 응원하는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작가가 그동안 출간해온 청소년문학 작품을 새로이 갈무리하고 개정해서 내는 시리즈다.
이 개정 및 시리즈화는 단순히 책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할수록 개선되고 기준이 높아지는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조응해 달라진 시대감각을 입히는 작업이다. 『유진과 유진』 개정판 또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표현들을 예민하게 점검하고 바로잡는 데 공을 들였다. 또한 내용은 바꾸지 않는 선에서 문장을 더 쉽고 편하게 읽히도록 상당 부분 손봤고, 세부 설정이나 묘사에서 개연성을 강화하고 한층 자연스러워지도록 일부 보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이 뒤처진 시대감각을 탑재한 오래된 유명 작품이 아닌, 그야말로 나날이 거듭나는 오늘과 오늘의 고전이 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