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면서 전시내각의 총책임자로 나라를 이끌었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난 그는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집필했다.
<징비록>은 최고의 전쟁 기록물로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의 총책임자로서 여러 공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급박했던 전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서출판 더스토리는 독자들이 <징비록>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번역하였다. 나라와 백성을 전란 속으로 밀어 넣은 위정자의 통렬한 반성은 물론, 후손들이 임진왜란 같은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류성룡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의 표지디자인을 최대한 되살려 고전의 느낌과 소장 가치를 높였다.
최근작 :<징비록> ,<초판본 징비록 (패브릭 양장 에디션)> ,<류성룡, 전란을 헤치며> … 총 71종 (모두보기) 소개 :조선시대 문신
1542년(중종 37년) 경상도 의성 출생.
1607년(선조 40년) 사망.
본관은 풍산. 자는 이현, 호는 서애.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류중영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의 딸임.
이황의 문인.
1564년(명종 19년) 생원·진사가 되고, 다음 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
1566년(명종 2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공조좌랑, 부수찬, 정언, 이조정랑, 응교, 경연참찬관, 부제학,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 2등에 ... 조선시대 문신
1542년(중종 37년) 경상도 의성 출생.
1607년(선조 40년) 사망.
본관은 풍산. 자는 이현, 호는 서애.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류중영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의 딸임.
이황의 문인.
1564년(명종 19년) 생원·진사가 되고, 다음 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
1566년(명종 2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공조좌랑, 부수찬, 정언, 이조정랑, 응교, 경연참찬관, 부제학,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짐. 시호는 문충.
저서 『서애집』·『징비록』·『신종록』·『영모록』·『관화록』·『운암잡기』·『난후잡록』·『상례고증』·『무오당보』·『침경요의』 등.
편서 『대학연의초』·『황화집』·『구경연의』·『문산집』·『퇴계집』·『효경대의』·『퇴계선생연보』 등.
최근작 : … 총 14종 (모두보기) 소개 :인천 부개고등학교에서 한문,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번역한 책으로 《논어》, 《맹자》, 《대학·중용》, 《명심보감》, 《난중일기》가 있다.
국보 132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임진왜란 7년, 피와 눈물로 쓴
통렬한 반성의 기록!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
임진왜란 7년, 피와 눈물로 쓴 통렬한 반성의 기록!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면서 전시내각의 총책임자로 나라를 이끌었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난 그는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집필했다. 《징비록》은 최고의 전쟁 기록물로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의 총책임자로서 여러 공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급박했던 전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서출판 더스토리는 독자들이 《징비록》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번역하였다. 나라와 백성을 전란 속으로 밀어 넣은 위정자의 통렬한 반성은 물론, 후손들이 임진왜란 같은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류성룡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의 표지디자인을 최대한 되살려 고전의 느낌과 소장 가치를 높였다.
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
1592년 4월 13일, 18만의 일본 대군이 부산 동래로 들이닥치면서 임진왜란 7년의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순식간에 한양까지 진군했고, 선조는 전란을 수습하고 백성을 보호하기보다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백성들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몰래 도망쳤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경복궁을 불태웠고, 의주까지 도망친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류성룡은 ‘조선 땅을 벗어나는 순간, 조선은 더 이상 우리의 땅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라고 통탄하면서 무능하고 질투심 많은 군주를 대신하여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힘썼다.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을 역임했던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경계, 충고를 담아 《징비록》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징비록》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등 참혹한 전쟁과 침략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위태로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징비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