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종로점] 서가 단면도
|
홍락훈 SF·판타지 초단편집. 드래곤이 쌓아놓은 산더미 같은 금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면? 로봇이 인류를 대체한 세상, 인류는 '핸드메이드 인간'으로 불리는 소수자이자 미지의 존재? 던전이 사실은 빈곤한 오크나 코볼트의 공공복지시설이고, 모험가는 그들의 재산을 노리는 약탈자에 불과하다?
홍락훈 SF·판타지 초단편집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와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에 등장하는 드래곤이나 뱀파이어는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신비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분히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인 애환이 있다. 판타지와 SF 세계의 결점과 의문점, 애로 사항을 유머와 풍자를 버무려 재해석한 이야기는 그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법칙을 하나둘 뒤엎으며 예상치 못한 쾌감을 안겨준다. 저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이야기로 꾸며 트위터에 게시하고, 팔로워의 피드백을 반영해 '답글 타래'와 '인용'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갔다. 덕분에 SF·판타지 장르에서 익히 보아온 장면을 전복하고 재해석해 때때로 위트와 풍자까지 얹어내는 특유의 방식은 흥미로운 놀이이면서 동시에 정통 SF·판타지 장르에 대한 날카로운 도전으로 읽힌다. 초단편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기며 각각의 세계 모두가 정교하게 얽힌 ‘홍락훈 월드’는 시리즈를 통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 홍락훈의 소설은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모험인 동시에 의도적인 헛발질이다. 쓸모없지만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세상 모든 생각과 이야기를 비틀고 주석을 달고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기발하고 해학이 가득한 환상소설. 농담처럼 귓전을 스치다가 문득 그 안의 뒤틀린 뼈를 느낀달까. 신기하고, 이채롭다. : SF·판타지 장르 주변부에 흡사 소품처럼 자리하면서도 결국 장르의 핵심을 파고드는 태도는 유연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아닌 촌철활인(寸鐵活人) 소설이다. : 클리셰라는 바람 빠진 풍선에 디테일을 한계까지 불어넣고 터트린다. 마치 서프라이즈 파티 같다. 각 장르를 기교 있게 경유하면서도 헤매거나 방황하지 않고 장르 고전들이 지향한 가치를 따른다. 당연하다 생각되지만 실로 보기 드문 미덕이다. : SF 장르가 유행처럼 번짐에도 단지 소재로 이용되고 휘발되는 지금, 홍락훈 작가는 독보적인 길을 걷는 듯하다. 이토록 번뜩이는 작품을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정의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그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길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