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어제 먹은 밥”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밥은 물질적인 재료(What)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밥을 어디서(Where), 누구와(Who), 어떻게(How), 언제(When), 왜(Why) 먹었는지까지 포함한다. 같은 밥이라도 집에서 먹었는지 밖에서 먹었는지, 식구들과 먹었는지 혼자 먹었는지, 제시간에 먹었는지 야식으로 먹었는지, 그 밥을 준 땅과 하늘, 농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는지 그냥 먹었는지에 따라 오늘의 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혼밥’과 ‘안전한 먹을거리’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음식 문화에는 ‘뭘 먹을까?‘만 강조되고 나머지는 빠진 느낌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질문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이 책 제목을 ‘오늘 무엇을 먹었나요?’가 아니라 ‘어제 어떻게 먹었나요?’로 지은 이유이고, ‘육하원칙으로 본 먹을거리’라는 부제를 단 이유이다. 전통농업연구소 안철환 대표는 손수 농사짓고, 거름 만들고, 전통 농업 연구하고, 농사 스승들 찾아다니며 익힌 배움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진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최근작 :<어제 어떻게 먹었나요?> ,<토종 농법의 시작> ,<지구별 생태사상가> … 총 25종 (모두보기) 소개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전통농업연구소 안철환 대표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건강하게 장수하는 건 인류의 오랜 꿈이다. 요즘에는 젊게 사는 삶이 더해졌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무엇보다 ‘먹기’가 중요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책을 비롯한 많은 콘텐츠가 ‘잘 먹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쏟아낸다. 소식해라, 채소를 먹어라, 단 음식을 삼가라 등. 이 책 또한 ‘소식해라, 채소를 먹어라, 단 음식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말한다. 하지만 건강하게는 맞지만, 젊게 오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먹을거리를 먹어서 젊어지는 게 아니라, 인생의 때에 어울리는 먹을거리를 먹어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다. ‘뭘 먹지?’ 만큼이나 ‘왜, 언제,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먹지?’에 관한 앎이 중요한 까닭이다.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 시기에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걱정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어요? 노안이 오고 기억력은 쇠해져 자꾸 까먹고 괜히 우울해집니다. 성적 ... 전통농업연구소 안철환 대표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건강하게 장수하는 건 인류의 오랜 꿈이다. 요즘에는 젊게 사는 삶이 더해졌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무엇보다 ‘먹기’가 중요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책을 비롯한 많은 콘텐츠가 ‘잘 먹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쏟아낸다. 소식해라, 채소를 먹어라, 단 음식을 삼가라 등. 이 책 또한 ‘소식해라, 채소를 먹어라, 단 음식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말한다. 하지만 건강하게는 맞지만, 젊게 오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먹을거리를 먹어서 젊어지는 게 아니라, 인생의 때에 어울리는 먹을거리를 먹어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다. ‘뭘 먹지?’ 만큼이나 ‘왜, 언제,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먹지?’에 관한 앎이 중요한 까닭이다.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 시기에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걱정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어요? 노안이 오고 기억력은 쇠해져 자꾸 까먹고 괜히 우울해집니다. 성적 능력이나 성욕은 눈에 띄게 감퇴하고요. 이럴 때 많은 사람이 보양식이나 건강식품 아니면 보약을 찾는데요,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편하게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이제 늙어가는 겁니다. 사실 갱년기(更年期)는 ‘다시(更) 세월을(年) 사는 때(期)’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가 되었는데 죽지 않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죠. 자연의 생명은 생식 능력이 떨어지면 죽는데 인간은 죽지 않고 더 삽니다. 덤으로 주어진 세월이 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늙어서 몸에 냄새나지 않게 하려면 담백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도 냄새는 납니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66~67쪽)
요즘 같은 때 이런 주장을 펼치면 “무슨 도 닦는 얘기냐”며 코웃음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까닭은 저자의 생각과 실천 때문이다. 책을 쓴 안철환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며.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온순환협동조합은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거름을 만드는 곳이고, 전통농업연구소는 전통 농업의 현대적 적용을 연구하는 곳이다. 저자는 이처럼 25년 동안 손수 농사짓고, 거름 만들고, 전통 농업 연구하고, 농사 스승들 찾아다니며 익힌 배움을 바탕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독자와 나누고 있는 셈이다.
‘혼밥’과 ‘안전한 먹을거리’의 시대, 먹는 데도 육하원칙이 필요하다
요즘 패스트푸드나 배달 음식, 혼밥이 빠르게 늘어나는 세태다. 각자의 형편에 따르겠지만, 먹는 일을 한 끼 때우기로 여기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반대로, 먹는 일을 지나치게 중시해서 안전한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먹을거리의 세계화와 관련이 깊을 테다. 안전을 믿을 수 없는 저렴한 수입 농산물이 늘어나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그에 따라 안전한 음식에 대한 집착도 커졌다. 한 끼 때우는 것이든 안전한 먹을거리에 집착하는 것이든 모두 극단적인 태도일 뿐이다. ‘뭘 먹을까?’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 먹은 밥”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밥은 물질적인 재료(What)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밥을 어디서(Where), 누구와(Who), 어떻게(How), 언제(When), 왜(Why) 먹었는지까지 포함한다. 같은 밥이라도 집에서 먹었는지 밖에서 먹었는지, 식구들과 먹었는지 혼자 먹었는지, 제시간에 먹었는지 야식으로 먹었는지, 그 밥을 준 땅과 하늘, 농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는지 그냥 먹었는지에 따라 오늘의 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혼밥’과 ‘안전한 먹을거리’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음식 문화에는 ‘뭘 먹을까?‘만 강조되고 나머지는 빠진 느낌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질문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이 책 제목을 ‘오늘 무엇을 먹었나요?’가 아니라 ‘어제 어떻게 먹었나요?’로 지은 이유이고, ‘육하원칙으로 본 먹을거리’라는 부제를 단 이유이다.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필부의 삶
먹을거리에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기운이 담겨있다. 인간의 노동뿐 아니라 토양, 기후, 다른 생명들이 먹을거리를 함께 만든다. 식사 때 우리는 단지 물질적인 재료만 먹는 게 아니다. 자연을 먹고 관계를 먹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육하원칙 가운데 흔히 떠올리는 ‘뭘 먹지?’가 아니라, ‘왜 먹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먹지?”라는 물음에 먼저 “먹긴 왜 먹겠냐? 살기 위해 먹지”라고 많이들 대답하는데, 책은 그 반대로 “먹기 위해 살지 뭐”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건강하기 위해 먹는다”는 대답이 가능할 텐데, 이에 대해서도 거꾸로 “건강을 추구하지 말자”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고, 결국 건강을 잃게 되어 있으니 건강 추구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비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거 먹는 낙으로 산다”는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무조건 단맛을 추구하는 얄팍한 입맛으로 먹지 말고, 먹을거리의 본래 맛을 추구하는 깊은 장(腸)맛으로 먹자고 제안한다.
‘왜’ 다음에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먹을지를 순서대로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먹지?’를 다시 다룬다. 결론에 해당하는 ‘다시, 왜 먹지?’에선 우리가 먹을거리를 통해 맺고자 하는 두 가지 관계를 소개한다. 하나는 횡적인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종적인 관계이다. 횡적인 관계는 먹을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곧 인간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관점이고, 종적인 관계는 먹을거리를 둘러싼 자연적 관계, 곧 대지와 우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보는 관점이다. 말하자면 횡적인 소통과 종적인 소통을 위해 먹는다는 것인데, 이 소통으로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필부의 삶’이다.
“살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생명을 먹습니다. 똥을 누면 거름을 만들어 흙을 돌봅니다. 하늘의 힘을 빌려 생명을 일구고 열매와 씨앗을 거두어서 후손을 준비합니다. 마지막에는 나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기는커녕, 죽음조차 삶의 한 과정으로 승화시키는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필부(匹夫)의 삶입니다.”(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