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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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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설산 시리즈’ 의 두 번째 작품. 도둑맞은 생물학무기급 탄저균이 한 스키장에 묻히고, 그것을 묻은 범인이 돌연사하는 의외성 있는 전개로 시작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화이트 러시》는 탄저균을 찾는 연구원이 겪게 되는 사건을 긴장감과 속도감 있게, 때로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화이트 러시》는 작가 특유의 이과적 상상력에 비일상적 공간이 주는 해방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생물학무기 ‘K-55’의 행방을 쫓는 연구원 구리바야시 가즈유키와 그의 아들 슈토, 그들과 협력해 설산을 누비는 구조요원 네즈와 프로 스노보더 치아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K-55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충격의 레이스는 독자들을 설원의 미궁 속으로 몰아넣으며 단숨에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야말로 설산 꼭대기에서 은빛 눈을 가르며 거침없이 내려가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의 심장을 움켜쥐는 《화이트 러시》는 ‘설산 시리즈’ 최고의 ‘아찔함’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유쾌함이 완급을 조절하여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한다. 화이트 러시 : 눈 돌릴 겨를 없는 대결의 연속이다.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설원이, 시간과 인간이 팽팽하게 맞선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영문도 모르고 연루되는 이 대결의 연쇄에서는 독자도 달아날 수 없다. 이다음에 어떤 터닝 포인트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범인의 증발 이후에도 쉴 틈 없이 죄어오는 서사와 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하나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것이 관료적 편의주의와 공동체적 선의 사이의 대결을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설원 위 쾌속 질주로 벌이는 바이오 테러리즘과의 승부 속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또 한 번 독보적인 위치를 입증해낸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 끝없는 긴장감, 당장 설산을 활강하는 듯한 아찔한 사실 묘사. 책을 놓는 것이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당신은 이 책 때문에 식사를 미루게 될 것이다. 약속을 미루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정을 미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두꺼운 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놓기를 강력히 권장한다.
겨울날, 난방을 최대로 하고 이불 안에 숨어서도 피할 수 없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즐기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정답이다. 읽는 내내 게이고가 등장인물에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잠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어떻게 단 한순간의 여유도 줄 수 없었을까? 그 잔혹함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문화일보 2023년 1월 27일자 '이 책' - 국민일보 2023년 1월 26일자 '책과 길' - 동아일보 2023년 1월 28일자 '책의 향기' - 경향신문 2023년 1월 27일자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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