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작가가 들려주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에 관한 이야기들. ‘코스트 베니핏’, 우리말로 하면 가성비. 가성비는 ‘가격대비성능’의 준말로,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제품 성능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가성비가 우리 삶에 적용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자잘한 물건을 구입하는 일부터 생사를 다투는 일까지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민은 우리 일상에 끊이지 않고 적용되고 있다.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시대가 아닌, ‘흑자’생존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우리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코스트 베니핏』의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보여주는 매우 현실감 넘치고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하게 된다.
샐러리맨과 바리스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SF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장편 소설 《기억 서점》, 《무덤 속의 죽음》, 《미스 손탁》, 《유품 정리사-연꽃 죽음의 비밀》, 《조선의 형사들》, 《코드 블루》 등이 있고, 앤솔러지 《격리된 아이》, 《기기인 도로》,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지금, 다이브》 등에 참여했다. 《무덤 속의 죽음》으로 제36회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조영주 (지은이)의 말
소설 속 주인공 재연은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기에 늘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바랍니다.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줄, 고독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요. 그런 주인공에게 ‘친구를 빌려준다’는 서비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요즘 저는 혼자 참 잘 지냅니다. 기본적으로 OTT는 끼고 살고요, 책이나 만화도 빼놓지 않고 챙겨봅니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싶으면 일부러 인터넷 강의를 수강한다든가 체력을 높이기 위해 조깅도 합니다. 이런 걸 가리켜 ‘혼자력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당신의 혼자력은 안녕하신지 궁금해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잘 못 지내고 계신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좋은 서비스를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절친 대행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 조영주
김의경 (지은이)의 말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의 준말인 ‘가성비’는 언뜻 계산적인 말 같지만 감정과 연결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감정은 정확히 가격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감정을 염두에 둔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은 음식은 맛있게 여겨지고 싫어하는 사람과 먹은 음식은 끔찍하게 느껴지듯이 감정이 상하면 가성비는 떨어진다. 제아무리 고가의 여행일지라도 불쾌하고 힘들었다면 손해를 본 느낌이 들 것이고 가성비 좋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다녀온 태국 여행을 떠올리며 소설을 썼다. 여행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고 싶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때 한 번 더 태국 땅을 밟아보고 싶다. 오랜 시간 기다려 떠나는 태국 여행은 분명 ‘가성비 갑’일 테니까.
― 김의경
이진 (지은이)의 말
결혼할 때 저의 지상 목표는 최대한 돈을 적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저희 집 화장실 싱크대는 수평이 맞지 않고 마루 장판은 고양이가 뛰어오를 때마다 훌렁훌렁 들뜨며 식탁 다리는 흔들거리고 30여 년 동안 교체한 적 없는 창틀에서는 바깥바람이 술술 새어듭니다. 당장 돈을 아끼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가격 대비 고성능’을 얻는 데는 보기 좋게 실패한 셈입니다.
오래 산 집의 장판이 들뜨고 식탁이 흔들거리는 것은 제대로 된 물건을 사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일 수도 있지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성비를 추구하지 못했을 때의 분한 마음도, 가성비를 획득할 때의 짜릿한 희열도 모두 인생을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꾸며 주는 것이라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 이 진
주원규 (지은이)의 말
가성비란 말이 생긴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거창하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우린 우리의 쓰임새를 안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각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이 가성비에 관한 개념이 우리의 인생 계획에서 최우선 목표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작품을 쓰는 내내 제법 우울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장착한 것일진대, 그게 아니라 자라면서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점점 한 개인이 상품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한 편의 소설에 담아봤습니다.
― 주원규
정명섭 (지은이)의 말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지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멸종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죽이거나 괴롭히거나 속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경찰이 등장하고, 재판을 통해 처벌을 하지만 그걸로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횟수를 줄이는 정도에 불과하겠죠. 그래서 저는 미래에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래가 무조건 낙관적이고 장밋빛일 리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