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철 (시인) : 세계의 시간은 오래전에 멈추었다. “고장 난 시계를 보며 차”(「이상한 나라의 샐러리」)를 마시는 시 속의 화자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일상이라는 감옥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일상은 만만치 않은 시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시스템을 벗어나자마자 죽음의 세계로 입장해야 하는 하나의 통로이자 문이기도 하다. 오광석의 두 번째 시집은 일상이라는 느슨한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시를 통해 조심스럽게 보여 준다.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화자는 원룸에 주거하면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날아가는 꿈”(「KOI-406.04」)을 꾸거나 작고 어두운 벽면에서 “녹색의 풀들”(「초원의 밤」)이 자라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단단한 세계가 미세한 균열로 인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상상은 일상을 견디기 위한 환상이 아니라 일상을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보이며 조금 더 덧붙인다면 윤리적인 상상이 무엇인지 곱씹게 한다.
오광석 시인에게 시란 “없어지는 것들을 만지는 일”이자 세상에서 사라져서 흔적도 없지만 먼지와 얼룩만 남았다 하더라도 상상을 통해 “다시 무언가로 만들어”(「사라지는 것들」)야 하는 신성한 것이다. 그가 만들어 가는 균열에는 “별의 무리들”(「균열이 보인다」)이 자유롭게 흘러갈 것이며, 만만치 않은 세상의 벽 앞에서 “침몰하지 않는 미소”(「침몰하지 않는 배」)를 보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