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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계산홈플러스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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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 목정원이 2013년부터 프랑스에서 6년, 한국에서 2년 동안 마주했던 예술과 사람, 여러 사라지는 것들에 관하여 쓴 책이다. 목정원은 사라지는 것에 관해 말하고자 하며, 오히려 자신에게조차 작품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에 쓰고자 한다. 한 시절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은 흔적들과,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을 건네주기 위하여. 이 책은 그러한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에 보내는 비평이자 편지이다.
시간예술의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회화와 같은 공간예술이 한번 완성되면 파괴되지 않는 한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얼마간 시공간 속에 발생했다가 사라진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시간예술뿐이 아니다. 인간의 생 또한 한 편의 공연처럼 세상에 머물렀다가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지만, 그 와중에 어떤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물론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다른 일이기에, 이 모두에는 근본적으로 슬픔이 있다. 뒤늦게 쓰인 비평 05 : 내게 맡겨진 일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는 것이었지만, 원고를 미리 받아 세 번째 읽을 즈음, 정직하게 토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목정원의 아름다운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 관해 내가 무엇을 쓰든 그것은 결코 추천사가 될 수는 없다고, 그것은 오히려 저자에게 돌려 전하고픈 감사의 인사에 가까울 거라고.
추천은 수행적 발화이자 공적 언술로서 특정한 맥락을 전제한다. 화자가 어떤 대상을 청자 집단에 추천할 때, 적지 않은 경우, 화자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청자 집단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소유했다고 간주된다. 추천은 화자의 지식에 청자 집단이 부여한 권위와 신뢰에 기반하여 수행된다. 그런데 화자가 자기가 말하려는 것에 앎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절감한다면? 화자와 청자 집단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는 권위를 온당하지 않다고 부인하고 그럼으로써 위계 자체를 해제하려 한다면? 게다가 무지할뿐더러 권위 없는 자기의 언술을 바로 그렇기에 비로소 신뢰해달라고 요청한다면? 한 권의 책을 경유하여, 그것의 필연적인 독서 효과로, 위계 없는 세계에 새로 그어진 미지의 지평에 누구하고든 공생하는 사건을 더 절실히 겪고 싶어졌다면? 목정원은 공연예술에 관한 깊은 사유와 고유한 체험의 글쓰기에서 관객의 지위를 철저하게 고수한다. 극장 안팎에서의 각별한 기억을 이야기할 때,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귀한 만남에 대해 들려줄 때, 작품을 서술하고 해석할 때, 목정원은 본다는 행위에 결부된 미적,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가장 명철하게 인식하고 가장 급진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주체적 관객의 이상에 가닿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목정원은 책에서 “창작자나 비평가를 변화시키는 대신 관객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희망을 보았다”면서, 언젠가 관객 학교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관객으로서의 “우리가 부끄러워 않고 스스로 느끼는 좋음과 나쁨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새로움을 요청한다면. 보다 섬세한 사유와, 대상화하지 않는 예의와, 고유한 형식미를 갖출 것을 우리가 작품들에 요구한다면.” 이 학교에서 관객은 연구자, 학자, 비평가, 전문가라기보다는 애호인(amateur)으로서의 자긍심을 함양할 것이다. 그 이름의 뿌리에 가장 가까이 닿은 뜻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로를 돌보고 길러낼 것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고 나는 목정원의 관객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졌다. 간절하게. 책이 이미 학교의 기능을 수행하여서, 무지한 자로서 어렴풋이 배운 것이 있는데, 바로 세계는, 극장은, 헤어짐을 거듭 겪고 익히는 장소라는 사실이다. 필멸자의 타고난 속성으로, 불가피한 재난으로, 증오와 폭력에 부당하게 희생되어, 죽는 존재들이 있다. 상징 체계와 시야의 바깥으로 배척되는 존재들이 있다. 극장은 세계사가 이러한 헤어짐과 멀어짐의 사건들로 점철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깨우치게 하는 학습 시설이자, 죽고, 사라지고, 밀려나고, 억눌렸던 존재들이 유령처럼 돌아와 일시적으로나마 점유하는 해방 공간이기도 하다. 작별 이후에 비로소 발생하는 이야기와 이미지가 있다. 사후의 시간에 고유한 비애와 미가 있다. 이처럼 뒤늦은 것들의 진실은 증언의 형식으로만 전할 수 있다. 우리는 극장에서 유령들이 증언하는 소리와 몸짓을 통해 근원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세계사의 슬픔과 고통을 재차 감각한다. 공연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뒤늦게. 관객은 그렇게 그 역시 증언하는 자가 된다. 유령을 닮는다. 목정원의 관객 학교에서 나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을 말하고 보여주려 가장 먼 곳으로부터 돌아오기를 체념하지 않는 자로서의 유령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삶의 어떤 국면에서 결핍했다고, 온전하지 않다고, 갖추지 못했다고 배척된 자로서, 뒤늦음을 한계이자 조건으로 인식하여, 우리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들려주고 내보이는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해방적 용기의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에 사랑이 자리함을 항변하고 싶었다. 소망을 표현하는 과거 시제의 문장들은 미래를 향해 돌아올 것임을 입증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었고, 다시 읽을 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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