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얀시 스타일로 풀어낸 기독교 변증.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지성, 필립 얀시가 풀어놓는 내가 믿는 이유. 과학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된 이 시대, 기독교 신앙은 과연 말이 되는 것인가? 과학자들이 세상의 모든 신비를 파헤쳤다고 하지만, 혹시 신앙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요소가 있지는 않을까?
기독교 신앙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어딘가에 영적인 세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필립 얀시가 ‘회의자의 안내자’로 나섰다. 아름다움, 사랑과 성, 고통과 욕망, 죄와 죄책감 같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다루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작 :<용서 : 은혜를 시험하는 자리> ,<빛이 드리운 자리> ,<한밤을 걷는 기도> … 총 350종 (모두보기) 소개 :영미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저술가. 기성 교회가 지닌 상투성을 예리한 문제의식과 역동적인 필치로 파헤쳐 대안을 모색하는 힘과 매력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 그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과 깊은 신비, 역설을 탐험하며 그 여정 가운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의 글은 1977년에 출간된 첫 번째 책 이후로 지금까지 전 세계 천오백만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으며 세계 2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지의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작가’에 선정되었으며,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협회(ECPA)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책에 두 권이 선정되었고, 열두 번에 걸쳐 골드메달리언 상을 받은 바 있다. 대표작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이상 IVP), 「기도」(청림), 「단단한 진리」(포이에마) 등이 있다.
‘고통’과 ‘은혜’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감동적인 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가 ‘믿음의 이유’에 대해 쓰고자 펜을 들었다.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에게 자신이 지닌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이전에, 자신이 ‘어떠한’ 신앙을 ‘왜’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얀시가 《수상한 소문》에서 시도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허블망원경과 인터넷이 주름잡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인지, 현대 문명이 삶의 근본 원리를 다 파악했는지, 아니면 뭔가 중요한 요소를 빠뜨렸는지 제대로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체계를 세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전수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작업이었고, 그 결과물을 이 책에 담았다.
그는 먼저 우리 주위의 보이는 세계, 우리 모두가 사는 세상에서 출발한다. 사실 강경한 진화생물학자들을 비롯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적 환원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이지만, 얀시는 이러한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수상쩍은 징후들을 본다. 초월적 세계의 ‘흔적’, 또는 ‘소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좋은 망원경을 가진 현대인 중에는 이를 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마치 키르케고르의 우화에 나오는 부자와도 같다. “부자는 불 켜진 마차 안에 앉아 있고, 마부는 차가운 바깥바람을 쐬며 말을 몰고 있다. 부자는 불빛 아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마부가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었던 바깥에 펼쳐진 별들의 전경, 그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지 못했다. 과학이 피조 세계에 더 많은 빛을 비추고 있는 이 시대에는 그 빛으로 인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저편의 세계가 더더욱 흐려진 것 같다”(21쪽).
혹시 지상의 모든 진리와 아름다움, 선함과 쾌락은 그 너머 영원한 무엇을 가리키는 표지가 아닐까? 얀시는 예의 그 솔직한 자세로 미(美), 사랑과 성(性), 고통과 욕구, 죄와 죄책감 같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초월 세계의 흔적을 찾아나간다. 그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물론 죄로 망가져 뒤죽박죽이고, 그다지 하나님의 세계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더욱이 그 소문은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만 들린다. 하지만 이 두 세계는 서로 연대해 하나님나라를 퍼뜨려나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두 세계를 통합시키고, 조각난 세계를 이어 거룩하게 할 것을 요구받는 존재이다.
● 얀시 스타일로 풀어낸 기독교 변증, 그가 믿는 까닭
얀시는 열성적인 복음전도자도, 진리를 수호하려는 의지에 불타는 신학교수도 아니다. 사실,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때때로 의심에 허덕이고, 어릴 때 교회에서 겪었던 나쁜 경험에서 ‘회복 중인’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다. 때문에 자칫 크리스천이 간과하기 쉬운 교회의 맹점들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저널리스트로서 일하며 잡학(雜學)과 다식(多識)을 쌓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현장에서 청취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특유의 솔직하면서도 삐딱한 태도를 모판 삼아 그 어느 것에도 구애됨 없이 자유로운 사고를 펼칠 수 있었다. 믿음의 경계지대를 오가는 회의자들이 얀시에게 열광할 법하다. 보통은 교리적 지식으로 투철하게 무장한 사람들조차 교회에서 통용되는 말이 아닌 일반인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선한 창조와 타락, 구원의 이야기를 기독교 용어를 쓰지 않고 풀어내는 얀시의 글쓰기는 기독교 변증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 선물과 우상 사이, 인간의 갈망에 관한 지혜로운 이야기
"내가 기독교로 돌아온 이유는 내게 필요했던 균형을 잡아줌으로써 주위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며 모든 사람을 높이면서도 그 형상이 손상되었다고 경고한다. 나는 이 사실을 그동안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서 확인했다. 기독교는 성, 돈, 권력을 하나님이 주신 선한 선물로 존중하면서도 그것들의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마치 방사성 물질처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간단히 말해 기독교는 혼란스러운 인간의 갈망에 현실적인 처방을 내린다"(92쪽).
이 책에서는 이 세계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얀시는 우리 앞에 존재하는 이 세계가 영원한 아름다움의 편린을 언뜻언뜻 드러내는 좋은 것들이긴 하지만, 쉽사리 왜곡되고, 신성의 자리에 오르곤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레닌 시대의 러시아가 그랬듯 때로는 이데올로기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듯 때로는 돈이, 때로는 성적 매력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른다. 달리 말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안에 자리한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모든 사람이 관심을 쏟는 돈과 권력, 섹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는 병적인 탐닉과 과도한 죄책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지혜로운 통찰을 제공해준다.
● 양서류 그리스도인,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답게 사는 법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은 '페리그리니', 즉 지상에 거주하는 이방인이며, 얀시 식으로 말하면 양서류이다. "나는 내 자신을 물질계와 영적 세계, 서로 다른 이 두 환경에서 살아가는 양서류로 생각하는 것이 열쇠임을 알게 되었다. 물질계에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숨을 쉰다. 반면, 영적 세계의 호흡인 기도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잘생긴 사람이나 이웃의 새 스포츠카는 그냥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음식을 구걸하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든 노숙자나, 길 건너 남편 없이 장애 아이와 홀로 사는 여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297쪽). 이러한 시각은 사후 세계의 천국만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부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이 담고 있는 신비와 가치를 볼 수 있는 감각을 열어줄 것이고, 이제 막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불완전한 이 세계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통합하여 사고하고 꽉 차게 살아내기 위한 균형잡힌 세계관을 제공한다. 물론 그 같은 시각을 내면화해 살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본서는 2004년에 좋은씨앗에서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