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이다. 2013년 독일어로 쓴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와 2015년 발표한 영어 에세이〈루트비히를 찾아서〉의 부분들을 한 데 담았다. 이 대가는 타이틀이나 왕관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연주자라면 다른 무엇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게 역할이고 사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주자로서 자신이 연주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궁구한다.
열 번의 이어지는 편지 속에 인생의 선배로서 혹은 동료 예술가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따뜻한 충고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이 담겨 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한마디로 상업주의에 물드는 예술이며,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안에서 독창적인 개성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선택한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지 않을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최고의 음반을 찾아가는 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기돈 크레머의 예술 철학이 모두 녹아 있는 글이라 볼 수 있다.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 기준 삼아 까다롭고 엄격하게 청취해나가기 시작한다. 그의 말마따나 바이올린 협주곡에 관해 그 어떤 완전무결하고도 이상적인 해석이 있을 수는 없지만, 생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추앙받는 이의 음악적 경험치와 판단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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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7년 10월 12일자
최근작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입맞춤> … 총 25종 (모두보기) 소개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예술 교육 분야에서 일했으며, 음악 서적을 꾸준히 번역,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말러를 찾아서》, 《프란츠 슈베르트》, 《베토벤》, 《젊은 예술가에게》(공역), 《음반의 역사》, 《아름다운 불협음계》, 《리트, 독일예술가곡》, 《혹등고래가 오페라극장에 간다면》, 《에트빈 피셔의 마스터 클래스》, 《그가 사랑한 클래식》, 《피아노를 듣는 시간》, 《세계의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지휘의 거장들》...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예술 교육 분야에서 일했으며, 음악 서적을 꾸준히 번역,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말러를 찾아서》, 《프란츠 슈베르트》, 《베토벤》, 《젊은 예술가에게》(공역), 《음반의 역사》, 《아름다운 불협음계》, 《리트, 독일예술가곡》, 《혹등고래가 오페라극장에 간다면》, 《에트빈 피셔의 마스터 클래스》, 《그가 사랑한 클래식》, 《피아노를 듣는 시간》, 《세계의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지휘의 거장들》, 《음악가의 탄생》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34종 (모두보기) 소개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20여 권의 음악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20여 권의 음악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BBC 뮤직 매거진〉
기돈 크레머가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주는 조언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를 책임지듯,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책임져야 합니다.”
기돈 크레머(1947- )의 연주 인생은 그가 살아온 세월과 엇비슷하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으니, ‘그가 곧 바이올린’이고 ‘바이올린이 곧 그’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지난해 가을, 영국의 음악 전문 잡지 〈BBC 뮤직 매거진〉이 1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로 꼽히는 기염을 토했다. 위대함의 기준이 비단 기술적인 연주 실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주한 세월의 총량만을 의미하는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무엇이 동료 연주자들로 하여금 그에게 이토록 큰 영예를 선사하게 했을까.
하지만 정작 이 대가는 타이틀이나 왕관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이유는 딱 하나. 연주자라면 다른 무엇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게 역할이고 사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혹은 인기를 얻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로서 자신들이 연주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궁구한다.
화려한 이력으로 따지자면 그를 따라올 자가 드물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 시절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사사한 뒤(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산 자 죽은 자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를 차지한 인물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세계적인 대회를 휩쓸었다. 유럽과 북미의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함께 거의 모든 주요 연주회 무대에 서서 최고의 지휘자들과 협연했으며,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크레메라타 발티카’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발트 3국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홀로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 DG, 텔덱, 논서치, ECM 등 세계적인 레이블과 수십 장의 음반을 녹음한 것은 물론이다.
기돈 크레머는 기본적으로 음악에 몸담은 사람이지만,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 소신껏 의견을 밝히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그의 조국이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 받았던 영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 스스로 “내가 만약 소련과 같은 희한하고 오염된 나라에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타인의 의견에 덜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 같다”고 얘기한 것처럼, 기돈 크레머는 항상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점검해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위와 같은 눈부신 이력에도 불구하고 노장의 예술가에게 ‘겸손’이라는 미덕, ‘가장 위대한 연주자’의 타이틀을 안긴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아우렐리아를 향한 거장의 따뜻한 충고와 가르침
《젊은 예술가에게》는 바로 이 거장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2013년 독일어로 쓴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Briefe an eine junge Pianistin》(홍은정 옮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저서 부분과 2015년 발표한 영어 에세이 〈루트비히를 찾아서Searching for Ludwig〉(이석호 옮김) 부분이다. 한국어판 《젊은 예술가에게》에는 저자의 요청으로 이 둘을 한데 담았다. 전자는 가상의 젊은 피아니스트인 아우렐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들을 모은 1부와, 현대 음악계의 모든 폐해를 가진 오케스트라(일명 ‘무능력자 연합 오케스트라’)를 상정해 현실을 반어적으로 꼬집은 2부 ‘악몽 교향곡’, 그리고 1부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성경의 십계명에 빗대어 ‘연주자의 십계명’이라 이름 붙인 3부로 구성된다. 한국어판에서 4부로 구성한 ‘루트비히를 찾아서’는 크레머가 프랑스 클래식 음악 전문 잡지인 〈디아파종Diapason〉의 의뢰를 받아 세계적인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한 열 장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비교 청취해, 그중 최고의 연주를 꼽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원제는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이지만, ‘예술’의 본질을 묻고 있으므로 내용은 모든 예술 분야에 대해 열려 있다. 열 번의 이어지는 편지 속에 기돈 크레머가 인생의 선배로서 혹은 동료 예술가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따뜻한 충고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이 담겨 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한마디로 상업주의에 물드는 예술이다. 가상의 후배 아우렐리아에게도 이 점을 가장 강조한다. 이제 막 날개를 달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은 수치화되는 성공, 출세에 연연하기 마련이다. 판매량, 빈번한 무대 출연,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계약, 수많은 대중의 열광은 물론 달콤한 것이지만 여기에 집착하다 보면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영혼을 잃는다는 노거장의 이야기는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 그 역시 젊은 시절 야망을 좇았음을,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공허함뿐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칭송받는 대가大家를 본받는 것은 좋지만, 그들과 똑같아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안에서 독창적인 개성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선택한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지 않을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그를 가리켜 몽상에 자주 젖는 이상주의자라 하고 그 스스로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지만, 음악이 이상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면, 예술가가 몽상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글 가운데 등장하는 숱한 예술가들의 이름도 흥미롭다. 사진가 카르티에 브레송에서부터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초월하여 지금의 자신이 되도록 이끌어준 거장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동료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비롯하여 자신이 진정 위대한 음악가라 여기는 ‘진짜’들, 유능하지만 위태롭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젊은이’들을 실명으로 언급한다.
또한 최근 세계적 콩쿠르에서 자신의 목소리 없는 연주자들이 수상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자신이 꼽은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늘 수상권을 벗어난 ‘4위’에 오르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크레머 상’ 수상자라고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이들 가운데는 젊은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강주미, 1987-)의 이름도 눈에 띈다.
3부 ‘연주자의 십계명’에 가서는 그런 그의 목소리가 더욱 단호해진다. 연주자에게 있어 신은 곧 음악이어야 하며 콩쿠르 수상, 훈장, 국내외의 상, 상금으로 대표되는 우상을 섬기거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영감이 중요한 음악가에게는 안식일이 거룩히 지켜져야 하며, 음악을 연주할 때는 작곡한 이의 심중을 충분히 읽어내고 의도와 동기를 살려 작품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살인하지 말라’). 연주자의 개성에 관한 저자의 뚜렷한 주관은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음향을 탐내지 말라’와 같은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최고의 음반을 찾아가는 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기돈 크레머의 예술 철학이 모두 녹아 있는 글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토벤의 곡을 연주한 최고의 연주자와 지휘자의 음반을 감히(!) 평가해야 한다는 부담도 잠시, 저자는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 기준 삼아 까다롭고 엄격하게 청취해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바이올린 협주곡에 관해 그 어떤 완전무결하고도 이상적인 해석이 있을 수는 없지만, 생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추앙받는 이의 음악적 경험치와 판단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가 꼽은 최고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은 무엇일까.
세상에 스타는 많다.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그들에게 쏟아지지만,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진정한’ 예술가는 드물다. 인기와 성공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성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 안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아 으레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고, 어찌 보면 그게 또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노장의 예술가는 말한다. 그런 당신의 모습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다만 그 모든 길을 먼저 걸어본 자신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 기울여달라고. 이제 세상의 모든 아우렐리아가 주의를 기울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