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조선 말기, 내방가사(영남지방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문학의 한 형태)로 전해오고 있는 《덴동어미화전가》와 1998년 출간된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두 이야기를 조합한 오동명 작가의 창작소설 《장군어미귀향가》가 멘토프레스에서 출간되었다.
200년 전 영주지역에서 태어나 네 번 결혼하여 네 남편 모두와 사별하는, 질곡 많은 삶을 살았던 덴동어미(불에 덴 아이의 엄마)와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치면서 이남자 저남자에게 전전하며 비극적 삶의 말로를 예고했던 ‘봉순이 언니’의 삶에서 작가는 단순히 태생의 비극에 순응하는 여인상이 아닌, 기필코 자신의 운명을 넘어서고 마는 인생역전 이야기를 《장군어미귀향가》에서 역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언니》를 패러디한 것으로, 기존 작품이 지나치게 개인 기준이나 가진 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이 소설은 봉순이 입장에서 1인칭 화법으로 전개하며 여기에 구전설화 《덴동어미화전가》를 적절히 배합하여 태생의 비극조차 순응하며 가족을 버리지 않고 삶을 예찬하며 고향으로 귀향, 보금자리를 꾸미는 아름다운 대서사시를 펼치고 있다.
1800년대 초 조선 말기에 구전돼 내려오던 《덴동어미 화전가》와 1997년 나온 《봉순이 언니》에서 모티브를 얻어 절묘하게 두 작품을 조합한 창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봉순이의 말로는 비참하고 남자에 환장한, 그리하여 비극적 삶을 걷는 여인으로 비치고 있지만, 결코 이후의 삶이 그렇게 펼쳐지지 않았다는 것, 온갖 세상풍파 견뎌내며 불구의 자식 장군이를 안고 고향(자라마을)으로 귀향하는 강인한 어머니 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 남자에게서 모두 아들들을 빼앗긴 봉순이. 그러나 5년이 지나 세 번째 남자에게서 아들을 데려가라는 연락이 오고 두 눈 멀쩡했던 아들이 눈 먼 장님이 되어 그녀 팔에 안긴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엄마하고.”
“장군이는 나처럼 살지 말아야 헌다.”
“예? 엄마가 어때서요?”
순간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스쳐지나가고,
‘니 꼴처럼 니 자식도 그렇게 살게 할 거냐?’
식모살이하면서 책임질 수 없던 뱃속의 아이를 죽였고 죄를 짓던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그 말은 장군어미 기억속에 평생 붙어다녔고, ‘장군이를 내 꼴처럼 살게 할 순 없다’며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열세 살 아들이 전철 동냥짓을 하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날, 장군어미는 결심한다. 아들마저 자신처럼 당하게 하며 살 순 없다며 생의 마지막, 함께 죽을 각오로 아들과의 동행길로 고향을 향한다. 일곱 살 때 떠나 사십여 년이 지나 쉰 살이 되어 아들과 고향으로 향한다.
‘자라마을’이란 이름 하나만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고향길, 고향에는 이 미천하기 그지없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만 받아온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이 지어준 이름, 봉순이로 오십 평생 살아온 여인은 고향에서 제 이름도 찾는다.
《덴동어미 화전가》에 난만한 해학과 천진한 지혜가 담겨 있듯, 《장군어미 귀향가》에도 비극을 넘어선 해학과 천진함이 담겨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또한 귀향이란 공통점, 즉 귀소에의 본능에 의하여 삶이 이끌어지고 있는 바, 이를 꼭 운명이나 숙명으로 옭아 묶지 않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덴동이를 들쳐 업고
내 고향으로 돌아오니 -《덴동어미 화전가》
그늘 찾아 깊이 드니
언덕 아래 해 그림자 《자라마을 생성가》
지난한 삶에서도 자연과 시간(계절)이 병행하는 바, 이것들은 살아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돼주기도 한다. 《봉순이 언니》에서 봉순이 삶이 비극을 예고했지만, 그건 오산이었으며 모진 풍파 견뎌내며 결...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언니》를 패러디한 것으로, 기존 작품이 지나치게 개인 기준이나 가진 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이 소설은 봉순이 입장에서 1인칭 화법으로 전개하며 여기에 구전설화 《덴동어미화전가》를 적절히 배합하여 태생의 비극조차 순응하며 가족을 버리지 않고 삶을 예찬하며 고향으로 귀향, 보금자리를 꾸미는 아름다운 대서사시를 펼치고 있다.
1800년대 초 조선 말기에 구전돼 내려오던 《덴동어미 화전가》와 1997년 나온 《봉순이 언니》에서 모티브를 얻어 절묘하게 두 작품을 조합한 창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봉순이의 말로는 비참하고 남자에 환장한, 그리하여 비극적 삶을 걷는 여인으로 비치고 있지만, 결코 이후의 삶이 그렇게 펼쳐지지 않았다는 것, 온갖 세상풍파 견뎌내며 불구의 자식 장군이를 안고 고향(자라마을)으로 귀향하는 강인한 어머니 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 남자에게서 모두 아들들을 빼앗긴 봉순이. 그러나 5년이 지나 세 번째 남자에게서 아들을 데려가라는 연락이 오고 두 눈 멀쩡했던 아들이 눈 먼 장님이 되어 그녀 팔에 안긴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엄마하고.”
“장군이는 나처럼 살지 말아야 헌다.”
“예? 엄마가 어때서요?”
순간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스쳐지나가고,
‘니 꼴처럼 니 자식도 그렇게 살게 할 거냐?’
식모살이하면서 책임질 수 없던 뱃속의 아이를 죽였고 죄를 짓던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그 말은 장군어미 기억속에 평생 붙어다녔고, ‘장군이를 내 꼴처럼 살게 할 순 없다’며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열세 살 아들이 전철 동냥짓을 하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날, 장군어미는 결심한다. 아들마저 자신처럼 당하게 하며 살 순 없다며 생의 마지막, 함께 죽을 각오로 아들과의 동행길로 고향을 향한다. 일곱 살 때 떠나 사십여 년이 지나 쉰 살이 되어 아들과 고향으로 향한다.
‘자라마을’이란 이름 하나만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고향길, 고향에는 이 미천하기 그지없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만 받아온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이 지어준 이름, 봉순이로 오십 평생 살아온 여인은 고향에서 제 이름도 찾는다.
《덴동어미 화전가》에 난만한 해학과 천진한 지혜가 담겨 있듯, 《장군어미 귀향가》에도 비극을 넘어선 해학과 천진함이 담겨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또한 귀향이란 공통점, 즉 귀소에의 본능에 의하여 삶이 이끌어지고 있는 바, 이를 꼭 운명이나 숙명으로 옭아 묶지 않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덴동이를 들쳐 업고
내 고향으로 돌아오니 -《덴동어미 화전가》
그늘 찾아 깊이 드니
언덕 아래 해 그림자 《자라마을 생성가》
지난한 삶에서도 자연과 시간(계절)이 병행하는 바, 이것들은 살아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돼주기도 한다. 《봉순이 언니》에서 봉순이 삶이 비극을 예고했지만, 그건 오산이었으며 모진 풍파 견뎌내며 결혼까지 하며 남은 여생 행복하게 해피엔드로 결말짓는다.
최근작 :<장군어미귀향가>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불멸의 제국> … 총 25종 (모두보기) 소개 :52여 년 살아온 서울을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저기 전전했고,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전설을 품고 있는 마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설과 함께 생겨난 마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 곳에 정착지 못하고 떠돌다 우연히 머물게 된 이곳이 무조건 좋았습니다.
400여 년 전, 자라가 사라진 바위를 파다가 솟아난 샘물로 인해 척박한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동네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오촌(자라마을)입니다. 전설을 되살려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나 하나만이 아닌, 많은 분들도 전설 속에서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장군이와 그 엄마가 그 전설(고향)을 찾아가지만, 전설을 잃고 사는 우리 역시 그 전설을 찾아 떠나보는 여행 바로 우리의 귀향가입니다. 저자 오동명은 현재 이 마을, 전북 남원 이백면 오촌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선 경제학(경희대)을 전공, 하지만 사진으로 직장을 구해 광고사진가(제일기획)로, 사진기자(중앙일보)로 16년 기자팔이 돈벌이했고 약 7년 여기저기 대학(충남대, 전북대, 제주대 등)을 떠돌며 포토저널과 미디어 및 언론학 등으로 강의를 했다. 지금은 남원의 옛 시골집에서 서당(또바기학당) 같은 걸 고쳐 꾸리고 동네 꼬마녀석들과 책을 같이 읽고 대나무로 필통 등 이것저것 만들며 뒷마당 흙을 손으로 빚어 굽고 또 뒷동산 지리산을 산보하며, 글과 그림에 빠져 산다. <또바기학당>의 이름으로 유튜브에서 유일하게 소통하며 산다. 최근 한국과 일본에 관한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을 냈다.
《장군어미귀향가》는 조선 말, 여인들 사이에 구전돼온 《덴동어미화전가》와 20세기 말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봉순이 언니》의 ‘독후 후 소설’이다.
이 소설은 《덴동어미 화전가花煎歌》의 작가 무명씨와 이 화전가의 편역자인 박혜숙 님, 그리고 《봉순이 언니》의 작가 공지영 님, 세 분께 신세를 졌다. 이에 깊이 감사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 ‘봉순이’를 읽었다지? 네가 내 허락도 없이 내 이야기를 썼듯, 이제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써볼란다. 그런데 글 쓰는 기분, 참 요상하다. 너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이제 들어 볼껴? 진짜 내 얘기…….
1800년대 초 조선 말기, 규방가사로 구전돼온
《덴동어미화전가》와 1998년 출간된 《봉순이 언니》에서
모티브를 얻어 두 이야기를 조합한 창작품!
태생의 비극조차 순응하되, 기필코 운명을 넘어서고 마는
‘장군어미’의 인생역전 이야기!
■기획의도
1800년대 조선 말기, 내방가사(영남지방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문학의 한 형태)로 전해오고 있는 《덴동어미화전가》와 1998년 출간된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두 이야기를 조합한 오동명 작가의 창작소설 《장군어미귀향가》가 멘토프레스에서 출간되었다.
200년 전 영주지역에서 태어나 네 번 결혼하여 네 남편 모두와 사별하는, 질곡 많은 삶을 살았던 덴동어미(불에 덴 아이의 엄마)와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치면서 이남자 저남자에게 전전하며 비극적 삶의 말로를 예고했던 ‘봉순이 언니’의 삶에서 작가는 단순히 태생의 비극에 순응하는 여인상이 아닌, 기필코 자신의 운명을 넘어서고 마는 인생역전 이야기를 《장군어미귀향가》에서 역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200여 년의 차이가 나지만 조선 후기, 태생이 비천했던 덴동어미의 삶이나 1953년 한국동란 후 경제파탄이 난 한국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봉순이 언니’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양반·평민 계급이 아닌, 이제는 자본주의의 꽃인 ‘돈’에 의해 국민의 삶과 계급이 나눠지는, 종 대신 식모의 개념이 생겨났다. 식모란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다 봐주는 여인으로, 봉순이 언니가 그 여인 중 한 명이다. 《봉순이 언니》를 읽자마자 어린 시절 겪은 일을 떠올렸고, 봉순이 언니와 같은 식모였지만 다른 삶을 살아갔던 식모살이 여인들도 생각났다. 순간 집주인의 딸이 아닌, 식모 입장에서 다시 각색하여 글을 써보잔 생각을 했고, 여기에 조선 후기 여인들의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내방가사 《덴동어미화전가》를 가미했다. 덴동어미에 덴동이란 아들이 있듯 장군어미에 장군이란 아들이 있다, 이렇게 글의 골격을 잡아갔다.”
그리하여 책의 부제가 [소설 《봉순이 언니》- ‘봉순이’로 독립선언]인 것이다. 기존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가 지나치게 작가 개인 시각에 의해서, 즉 가진 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이 《장군어미귀향가》는 ‘봉순이’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1인칭 화법으로 전개한다. 도입부 <들어가는 글>에서 앞으로 전개될 소설의 흥미와 긴장감을 다음과 같이 조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 ‘봉순이’를 읽었다지? 네가 내 허락도 없이 내 이야기를 썼듯, 이제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써볼란다. 그런데 글 쓰는 기분, 참 요상하다. 너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이제 들어 볼껴? 진짜 내 얘기…….”
또한 이야기 전개가 절대 비극이 지닌 속성인 신파조에 머물러 있지 않다. 《덴동어미화전가》에 난만한 해학과 천진한 지혜가 담겨 있듯, 《장군어미귀향가》에도 비극을 넘어선 해학과 천진함이 담겨 있다. 작가는 기존 서사문학이 지닌 넋두리, 한풀이를 뛰어넘는 해학과 신명성을 《장군어미귀향가》에도 불어넣어 주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본다.
노년에 돌아온 고향의 봄/ 까치가 희소식 알라는 봄/ 온 우주 모두가 봄/ 온갖 꽃이 만발한 봄 / 좋을시고 봄 춘자 -《덴동어미화전가》
끝도 없이 물이 솟네/ 두 손 모아 한 바가지/ 삼켜대니 맛도 좋다/ 웃는 네 놈 너도 먹게/ 물맛 한 번 끝내준다. -《장군어미귀향가》 중 〈자라마을 우물가〉
이에 관련해서 저자는 말한다. “조선 후기, 비천한 서민의 삶은 그리 달라질 게 없었고, 평생 구질한 삶이 그들을 붙어다녔다. 하지만 봄날이 오면 아낙들은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먹으며 ‘화전놀이’를 즐겼다. 서로 제 힘든 삶, 속엣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세상이 피어나는 봄이기에 가능했다. 이런 견디기 힘든 삶에서도 이를 극복하는 힘이 있었으니 그것은 노래였다. 200년 전엔 ‘화전가’요 그 200년 후인 최근엔 ‘귀향가’라고 말하고 싶다. 《장군어미귀향가》의 가사가 《덴동어미화전가》보다 더 3.4조 4.4조 판소리 운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생의 마지막, 죽음을 각오하고 열세 살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장군어미. ‘자라마을’이란 이름 하나만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고향길. 과연 고향에는 이 미천하기 그지없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만 받아온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이 아직도 존재할까. 저자는 말한다. “52여 년 살아온 서울을 떠나와 머물게 된 곳이 전북 남원 오촌리(자라마을)이다. 400여 년 전, 자라가 사라진 바위를 파다가 솟아난 샘물로 인해 척박한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동네가 생기며 마을이름도 오촌(자라마을)이 되었다는 전설에 주목했다.《덴동어미화전가》처럼 《장군어미귀향가》에서도 ‘귀향’, 이를테면 굳이 운명이나 숙명으로 옭아묶지 않고 ‘귀소에의 본능’에 의하여 삶이 이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소설은 장군이와 그 엄마가 그 전설(고향)을 찾아가지만, 전설을 잃고 사는 우리 역시 그 전설을 찾아 떠나보는 여행, 바로 우리의 귀향가이다.”
마음을 열고 나를 반겨줄 가족, 이웃이 있는 고향이 아직도 마음속에 존재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장군어미귀향가》는 자라마을의 전설, 고향을 따라가는 과정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귀소에의 본능’을 되살리며 따뜻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우리 모두의 귀향가이다.